대안공간루프
2015년 9월 24일 ~ 2015년 10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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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에게 있어 이주(移住)는 태초부터 현재까지 계속되어온 삶의 방식이며, 스스로의 현대화를 위한 필수적인 부분이다. 먼 옛날 동부 아프리카에서 탄생한 인류의 조상은 대륙을 가로지르고 바다를 건너 전 지구로 퍼져 나갔다. 무언가를 찾아 떠난 이 여정은 이제 전 지구를 넘어 우주 밖 행성에까지 그 목적지를 두고 있다. 인간은 다양한 까닭에 의해 이주를 해 왔다. 기근이나 자연재해, 전쟁이나 학살 등 생명의 위협을 피해 고향을 떠났으며 정치, 경제, 종교적 이유에 의해 국경을 넘기도 했다. 이런저런 수많은 이유야 있겠지만, 중요한건 이러한 자발적 이주에는 보다 나은 삶을 원하는 개개인의 바람이 가장 크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보다 나은 교육이나 보수를 받기 위해, 가족이나 연인 같은 사랑하는 이와 함께 살기 위해, 보다 쾌적한 자연 환경 속에서 지내기 위해, 즉 현재보다 더 나은 자신으로 살고 싶기 때문에 삶의 터전을 옮기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이러한 스스로의 결정과 단순한 물리적 이동만으로 진정한 이주가 가능해지며 보다 나은 삶을 살게 될 수 있는 것일까?
작가 최찬숙은 이주자이다. 오랜 시간 독일에서 지내며 겪은 이주자로서의 경험을 토대로 이번 프로젝트 를 진행한다. 본 전시는 이 프로젝트의 첫 번째 부분에 해당하며 ‘정신적 이주’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작가는 지난 10여 년간 독일 생활을 하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해 왔다. 독립적인 작업세계와 예술관을 가지기 위해 고뇌하는 과정에서 작가가 처한 이주자, 이방인이라는 위치가 만들어내는 영향력은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그 범위가 작지만은 않았다. 이주자로서의 삶은 사실 충돌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생경한 생활 속에서 그 삶의 요소들을 자신의 굳어진 내면에 대입시키고 풀어내야하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도 그렇게 와 닿는 것들을 쉽사리 받아들이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한편 우리가 종종 마주치는 이주자들의 모습은 어떤가? 그들은 타지에서의 삶을 향유하면서도 동시에 각자 기존의 삶을 고수하기도 한다. 사는 곳만 옮겨졌을 뿐, 삶 자체는 떠나오기 전의 모습 그대로인 경우가 많다. 또한 이 반대의 모습도 있다. 물리적 이주는 진행하지 않은 채 정신적 이주를 통해 자신의 자리에서 스스로 변화와 안정을 꾀하기도 한다. 제도나 강압, 경제적 상황 등의 현실적 제약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서 삶의 태도나 방식의 변화를 통해 자신의 주체성을 새롭게 취하는 것이다. 이들의 삶은 자신이 속한 국가나 사회의 타 구성원과는 다른 형태를 보이며 그들만의 삶을 이어나간다. 이렇게 ‘이주’의 개념은 ‘물리적 이주(Physical emigration)’와 ‘정신적 이주(Inner emigration)’라는 두 가지 양상으로 나뉜다. 본 전시에서 작가는 이 둘 사이의 간극에다 다양하고 재치 있는 방법으로 실험을 시도하며 이주의 근본적 동기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산업과 과학이 발달함에 교통수단이 등장하며 인간의 물리적 이동범위는 더욱 넓어졌고 그 규모와 속도는 점차 가속화 되어가고 있다. 과거 한 국가가 부유층의 전유물이었던 자동차의 대중화를 위해 정책적으로 지정하여 값싸고 튼튼한 자동차를 생산한 적이 있다. ‘1가정 1자동차 보급’ 이라는 이 정책은 성공적이었으며, 이 제조사는 수십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전 세계에 자동차를 보급하고 있다. 이 회사의 이름은 독일어로 ‘국민의 차’라는 뜻인 ‘폭스바겐(Volkswagen)’이다. 이 회사의 본사는 독일 볼프스부르크에 위치해 있는데, 특이한 점은 이곳 본사와 출고장을 하나의 테마파크로 조성했다는 것이다. 자동차를 뜻하는 ‘Auto’와 도시를 뜻하는 ’Stadt’를 합쳐 ‘Autostadt(아우토슈타트)’라고 부르는 이곳에는 공장, 박물관, 고객센터, 출고장이 위치해 있다. 이 첨단기술의 메카를 방문한 고객은 회사의 역사를 체험하고 자신이 구매한 차량의 제조공정을 직접 볼 수도 있으며 공장에서 직접 차를 몰고 나오기까지 한다. 이 거대한 테마파크는 인간 이동기술의 정점을 보여주기라도 하려는 듯, 자신들의 완벽함을 자랑하며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이 모습은 단순한 이동의 편리함만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 이동수단이 보여줄 수 있는 어떤 무언가를 제시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이동기술의 발전은 물리적 신체의 이주를 원활하고 신속하게 이뤄낼 수 있는 반면에 내면 본질의 이주, 즉 정신적 이주와는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인다. 앞서 언급했듯 실제로 물리적 이주가 정신적 이주를 반드시 수반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정신적 이주는 주체의 내면에서 스스로 진행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기술의 발전과는 더욱 무관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과학과 인간은 광유전학(optogenetics)을 고안해 냄으로써 기술을 통한 정신적 이주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광유전학 이란 빛(opto)과 유전학(genetics)을 결합시킨 용어이다. 말 그대로 빛과 유전공학 기술을 이용하여 뇌의 활동을 조절하는 기술이다. 뇌의 신경세포인 뉴런은 전기신호로써 정보를 주고받는다. 이 뉴런들의 주변에서 발생하는 전압의 차이는 각 뉴런을 자극하는 전류를 생성하는데, 이 전류에 의해 활성화된 뉴런은 근접한 다른 뉴런에 화학적 신호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움직인다. 이 뉴런들의 움직임을 제어할 수 있다면 뇌의 신경회로를 인위적으로 조작할 수 있게 된다. 이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과학자들은 식물에서 발견한 빛에 반응하는 단백질을 추출한 뒤, 뉴런에 옮겨 심은 후 빛을 쬐어 줌으로써 해당 뉴런들을 깨우거나 잠재우며 뇌의 신경회로를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기술은 안전성 등의 이유로 아직 인간에게 적용시키지는 못했지만, 실제로 실험용 쥐의 뇌에 광섬유를 꽃아 특정 기억을 담당하는 뉴런을 자극해 기억을 조작한 실험이 진행된 바 있다.
작가는 첨단이동기술의 상징인 아우토슈타트와 광유전학이라는 미래 기술의 모습을 작업으로 풀어내어 전시장 안에 하나의 이미지 프로그램 옵토로돕신(Opto-rhodopsin)1)을 구축한다. 전시는 매 15분마다 재생되는 아우토슈타트 투어 가이드의 안내 멘트에 따라 순차적으로 관람하도록 설계 되었다. 관객은 전시장 안에서 일상을 묘사한 빛 이미지(Lighting Image)가 중첩된 오브제를 감상하게 된다. 하지만 곧 움직이는 조명에 의해 빛 이미지는 지워지고 그 뒤에 남은 기하학적 구조물만을 마주하게 된다. 동시에 투어 가이드의 음성은 아우토슈타트의 첨단 시스템과 마케팅 전략, 자신들이 보유한 기술에 대한 목적, 동기, 효과 등에 대해 설명한다. 이렇게 전시장 안에서는 물리적 이주와 정신적 이주를 상징하는 두 기술의 모습들이 끊임없이 충돌하며 관객에게 다소 혼란스러운 상황을 던져준다. 이것은 마치 앞서 언급한 이주자들이−물리적 이주자든 정신적 이주자든 간에− 겪을법한 불편한 상황을 떠올리게 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전시장 투어가 계속될수록 이 혼란과 충돌의 골은 점점 깊어지며 각각의 형태는 서서히 극대화 된다. 일상을 묘사하던 빛 이미지는 화려한 구조적 이미지로 변모하고 그것들을 지워나가는 조명 역시 더 강렬해진다. 그리고 투어 가이드의 안내 역시 더욱 단호해진다. 점점 고조되는 이 현상은 곧 종료되며 관객은 투어의 마지막에서 잠시 빈 공간에 머물게 된다.
누구든 이렇게 물리적·정신적 이주의 두 개념이 만들어내는 간극을 직접 체험한다고 해도 어떠한 결론을 내리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과연 작가는 이 두 개념의 간극이 서로 좁혀지다가 결합되어 하나의 덩어리가 되는 지점을 찾으려는 것일까? 그렇다기보다는 두 개념의 공존을 인정하며 그 과정에서 서로의 조화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어떤 장소야말로 작가가 도달하고 싶어 하는 약속의 땅이 아닐까?
1) 옵토로돕신(Opto rhodopsins)은 빛(Opto)과 눈의 망막에 빛을 감지하는 색소 단백질(rhodopsins)의 합성어로서 즉, 눈을 통해 수용되는 빛 미립자의 전기적 자극을 통하여 기억을 이식 할 수 있는 가상 장치이다. 이는 일종의 이미지 프로그램으로서 빛(강광원)으로 빛(약광원 즉, 프로젝션으로 보여주는 이미지)이 지워지는 과정을 반복하여 보여준다. 정체성과 동일 시 되는 기억의 이동 기술은 그동안 어떠한 이동 상태로만 여겨지던 정신적 이동의 목적지에 대한 고찰을 하게 만든다. / 대안공간 루프 큐레이터 문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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