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플레이리스트
2025년 5월 31일 ~ 2025년 7월 5일
갤러리 플레이리스트는 2025년 5월 31일(토)부터 7월 5일(토)까지 박지민, 양소정, 이수빈 3인전 《The Quiet Grain of Objects: 사물의 조용한 결》 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유리, 회화, 목조각이라는 서로 다른 매체를 기반으로 작업하는 세 작가가, 일상 속 사물에 담긴 기억, 감각, 시간의 결을 섬세하게 포착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작가들은 익숙한 사물에서 낯섦을 발견하고, 사라져가는 것들을 기록하며, 생을 다한 대상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는다. 이번 전시를 통해 조용한 응시를 통한 감각의 전환을 제안하고, 사물 속에 축적된 시간과 기억의 결에 다가가는 경험을 전하고자 한다. 처음으로 부산에서 작품을 선보이는 세 작가들의 이번 그룹전에서는 신작과 전작을 포함한 작품 총 33점을 관람할 수 있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물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담고 있다. 우리는 익숙함 속에 스며든 그 형태를 무심히 지나치곤 하지만, 그것들은 기억과 감각, 시간의 결을 품은 하나의 세계일 수 있다. 이 전시는 유리, 회화, 목조각 이라는 매체로 세 작가가 각자의 방식으로 감각하고 응시한 사물의 형체, 관계, 소멸, 순환, 시간, 그리고 그 조형의 순간들을 따라간다.
박지민은 유리를 통해 사라짐과 보존, 흔적과 기억이 교차하는 지점을 탐색한다. 그녀는 일상의 경계에서 수집한 종이 조각, 낙엽, 먼지 그리고 도시의 폐허 속 사물들에 주목하며, 이를 유리 안에 봉인하듯 담아낸다. 유리는 재료를 넘어, 흔적을 고정하고 시간을 응축하는 감각을 담아내는 그릇이 된다. 작가는 사라져가는 것들의 존재를 기록하고, 잊히는 대상에 조용한 서사를 부여한다. 사물들은 두 장의 유리 사이에 배치되고, 열에 의해 형태가 소멸되며 재와 그을음의 흔적만 남는다. 이 흔적들은 시간과 물질이 만들어낸 우연의 조형이다. 박지민은 이와 같은 비 가역적인 변화와 실패의 가능성을 작업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유리를 감각과 사유의 매개체로 확장해간다. 소성 이후, 유리 안의 형체는 더 이상 구체적인 형체의 사물이 아니라, 시간의 결로 남는다.
이번 전시에서는 조선시대 철화 백자를 모티브로 한 유리 달 항아리를 선보인다. 매화, 목련, 포도 같은 전통 문양을 유리 사이에 배치해 소성한 이 작업은, 문양이 재와 그을음으로 추상화되어 유기적인 선의 흐름으로 남는다. 수묵화의 번짐처럼, 혹은 철화 백자의 자유로운 선처럼 유리 위에 스며든 자국들은 소멸 이후의 감각적 전이를 보여준다. 박지민은 이 작업을 통해 소멸이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 될 수 있음을 조형적으로 제안한다.
양소정의 회화는 정밀하게 구축된 시각적 구조 속에서 유연한 감각의 흐름을 끌어안는다. 그녀는 드로잉, 조각, 설치를 넘나드는 실험 속에서 평면 회화의 물성과 감각을 교차시키며, 익숙한 사물의 외형을 자신의 시선으로 분해하고 조각처럼 다듬는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미지들은 단순한 기호나 상징에 머물지 않고, 추상적 감각으로 엮여 유동하는 조형의 조각이 된다. 각각의 형상은 정해진 의미로 환원되지 않으며, 서로 다른 결을 지닌 채 화면 위에서 관계를 맺고, 그 자체로 감각적 구조를 형성한다. 그녀의 작업은 언제나 일상 속 사물에서 출발하며, 떠오른 형상을 천천히 포착하고, 드로잉을 통해 그 가능성과 조형의 단서를 수집해간다.
이번 전시에서 크고 작은 크기의 캔버스에 그려진 작품과 나무조각 회화를 모두 관람할 수 있는데 섬세한 붓질은 시간의 결을 따라가듯 천천히 겹겹이 쌓이며, 색과 질감, 밀도의 변화는 오래된 기억처럼 화면에 스며든다. 정지된 화면 속에는 미세한 리듬과 긴장이 감춰져 있고, 이질적인 이미지 조각들은 하나의 화면 안에서 느슨하게 연결되며 시각적 균형을 만들어낸다.
이수빈의 조각은 나무의 결을 따라간다. 그 결은 물리적인 결 이자 서사의 결이며, 나무가 살아온 시간에 대한 조용한 경청의 태도이기도 하다. 그녀가 다루는 나무는 유목이나 폐목처럼 이미 하나의 생을 지나온 존재들이다. 작가는 조각이라는 행위를 통해 그것들의 과거에 새로운 시간을 덧입힌다. “왜 이 형태여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며 그 결을 따라가는데 그 끝에 단순한 형상을 넘어, 시간과 기억, 감정과 관계로 확장된 형태를 마주하게 된다.
글을 쓰고 편집하던 경험은 작업에서 고스란히 이어진다. 작가는 문장을 다듬듯 나무를 다듬고, 이야기의 구조를 짜듯 형상을 세운다. 작품은 내밀한 감정과 삶의 순간들을 품은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된다. 그 안에는 우리가 지나온 시간, 잊고 있던 감각, 그리고 어떤 존재와의 정서적 연결이 고요히 흐른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이수빈의 조각들은 모두 고요히 서 있으면서도 서로를 향하고 있다. 둥글고 부드러운 형상들은 손바닥 안에 담길 듯한 온기를 지녔으며, 시선과 결, 숨결 같은 비가시적 매개를 통해 관객과 관계를 맺는다. 의미 이전의 감각으로 다가와, 나무와 인간, 그리고 그 사이의 시간을 보이지 않는 결로 이어준다. 살아온 나무, 조각된 형상,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 모두는 이 조용한 결로 연결된다.
세 작가의 작업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사물을 바라보지만, 모두가 사물과 감각의 관계를 섬세하게 짚어 나간다. 익숙한 대상 안에서 낯섦을 발견하고, 사라져가는 것들을 붙잡아 그 흔적을 기록하며, 생을 다한 것에 다시 연결과 포용의 숨을 불어넣는다. 이번 전시는 우리가 지나쳐온 사물들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감각의 전환을 제안하며 가만히 놓여 있는 것들을 향한 새로운 응시, 그리고 그 안에 겹겹이 쌓인 기억과 시간의 결이 관객의 내면에 조용히 닿기를 바란다.
참여 작가: 박지민, 양소정, 이수빈
전시 주최: 갤러리 플레이리스트
전시 기획: 우지영
전시 운영: 조소영
전시 전경 촬영: 임봉호
출처: 갤러리 플레이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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