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앤제이갤러리
2019년 5월 10일 ~ 2019년 6월 2일
“We Don’t Really Die”1
전시 《We Don’t Really Die》는 뤽 베송의 영화 <루시>의 주인공, 루시의 대사로부터 시작되었다. 머릿속을 맴돌던 이 대사는 물질의 비물질성에 대한 관심으로 옮겨가 이곳저곳을 떠돌다 아이러니하게도 물질을 제외하고는 상상이 어려운, 조각에 도달했다. 그리고는 기어코 조각을 조각이도록 하는 특성이 바로 그것의 비물질성에 있다는 음모론에 가까운 주장을 펼친다. 그 주장의 배경은 이렇다. 3차원에서 4차원으로, 3차원에서 5차원으로, 더 높은 차원을 이해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받아들일 수 있는 상식들을 뛰어넘어야만 가능하다. 그것은 인간의 사고와 언어를 뛰어넘는 더 많은 관념적 이해를 요구한다. 그러나 차원을 입증할 만한 이론적 근거가 있든지 없든지 간에, 우리는 차원의 찢겨진 장막 사이로 튀어나오는 ‘어떤 것’을 감지한다. 언어 안에 갇힌 우리는 그것을 해석하고 설명하는 데에 늘 실패하고, 그래서 조각을 만들었다. 조각은 3차원에서 머물지 않는다. 2차원의 장막을 찢고 3차원으로 튀어나와 더 높은 차원으로 가고자 몸부림친다. 그것이 가진 비물질성을 매개로.
하여 전시는 물질을 이루는 원자와 에너지가 확산하는 경계를 확정할 방법이 없다고 전제하며 사물의 가시적 형태를 사물의 경계와 동격화하지 않고, 경계의 미확정된 상태를 즐거이 받아들인다. 또한 작품의 맥락과 작가의 태도 역시 시간과 공간을 스쳐 간 에너지로서 작품 주변을 머문다고 전제한다. 그리고 그 에너지가 어떤 상태에서 가장 최적으로 활성화될 것인지 실험한다. 작품들이 가진 여러 겹의 층위들은 평행하거나 겹쳐지거나 또는 엇갈리면서 전시장 안에서 다시 한번 ‘입체적 짜임’이라는 조각적 특성으로 등장한다. 다른 층위로 여겨지던 조각의 물리적 조건들과 네러티브들은 이 입체적 짜임 안에서 찰나의 시간 동안 틈입하는 다른 차원의 감지와 함께 통일된 감각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최고은이 전시장으로 가져온 폐기된 상품의 미감, 유행이 지나버린 상품-형태들은 유행이 지났기 때문에 작품으로 치환될 수 있는 조건을 갖는다. 이 제품들은 유토피아적 약속들이 담긴 기술 전환의 위대한 가치를 보여줬던 것도 아니며, 또 다른 기술 전환에 의해 쇠락한 것도 아닌, 그저 유행에 따라 잠시 일상을 채웠다가 빠르게 사라진 시시콜콜한 ‘시체’들일 뿐이지만, 그렇기에 참을 수 없이 가벼운 미적 가치의 증거들이기도 하다. ‘바로 어제의 유행’을 드러내는 제품들은 다른 한켠에서 미니멀리즘 미술을 경유하게 되는데, 그 미니멀리즘 역시 ‘어제의 유행’으로 또 다른 계층의 인테리어를 장식하고 있었다는 사실들을 상기한다면, 자본주의에 의해 대중문화와 고급문화 할 것없이 뒤섞여버린 채 폐기된 가치들을 자조 섞인 유쾌함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최고은의 작품들은 연극성을 띤다. 아마도 그것의 형태와 부피감이 가진 익숙함, 그것이 놓인 공간 - 전시장에 대한 낯섦이 동시에 우리를 자극하기 때문일 것이다. <썸> 에서 작가가 차용한 가구의 형태들, 생활공간에 잘 부합하도록 제작된 이 형태들은 공간 속에 스민 듯이 존재해 있다가 시선의 방향을 바꾸는 순간 느닷없이 등장하며 익숙한 형태와 익숙한 사건을 낯선 것으로 바꾼다. 유리로 제작된 <어니스트 라페뉴> 역시, 익숙한 형태로 인해 연상되는 전혀 다른 두 감각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면서 바로 앞의 현상 해석을 교란하고 익숙하기에 더욱더 낯선 모습을 드러낸다.
오승열은 좁은 틈 사이에서 섬세하고 미세한 공간의 흐름을 발견하고 직조된 알루미늄 테이프와 콜라주 작품들로 그것을 드러낸다. 그의 작업에 공존하는 ‘이어짐/단절’, ‘매끈함/마찰감’과 같은 상반되는 감각들은 납작해 보이는 작업의 간격을 크게 벌이고 그 사이의 흐름을 직관하도록 이끈다. 예컨대 <Choreographed mass>에서 시각은 직조된 알루미늄의 모듈들이 절단된 것으로 인지하지만 논리 감각은 그 모듈이 사실은 하나의 긴 선으로 이어져 있다고 이해한다. 이 두 감각은 서로 상충하며 대립 관계에 놓이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어느 순간 두 감각이 상호보완하며 그 모든 것이 ‘옳다’라는 직관으로 이끌게 된다. 경계와 차이가 매우 명확해 보이기 때문에 이 감각의 충돌은 눈이 깜빡일 때마다 다른 장면으로 전환되는 듯한 느낌을 주지만 어느 순간 기묘한 감정과 감각으로 이 두 현상을 통일시키게 되는 것이다. 종이로 겹겹이 쌓인 <Rhythm of mass> 시리즈들은 원래 색종이로 콜라주 한 것을 다시 리소 프린트한 후 재구성한 것으로, 종이의 겹쳐진 색들이 때로는 찢겨진 입체적 감각을 사이에 두고, 또 때로는 프린트되어 명료하게 그어진 플랫한 감각을 사이의 두고 나타나면서 전혀 다른 두 개의 감각을 동시에 담는다. 작가는 이처럼 얇은 겹들 사이 공간을 주시하고 유랑하며 공간의 밀도를 한층 높인다.
윤지영의 질문은 현상의 지속적인 관찰로부터 발생한다. 관찰된 현상은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질문이 되었다가 다시 작가에 의해 물질로, 그리하여 다시 현상으로 나타나는데 처음 관찰된 현상과 작가에 의해 만들어진 현상은 같은 개념 안에 존재하면서도 차이를 보인다. 비가시적인 것을 언어화, 시각화, 물질화하는 과정으로부터 발생할 수밖에 없는 차이겠지만, 관객의 입장에서 확인 할 수 있는 것은 작가가 제시한 작품밖에 없으므로 사실 그 차이를 가늠할 수는 없다. 다만 작가의 제안을 가지고 역으로 현상을 유추하고 발견해야 하는데, 그것 역시 작가가 처음 발견한 것과는 상당한 오차를 갖게 된다. 작가는 여기서 이 ‘오차’에 대해 다시 한번 의문을 품고 오차를 줄일 수 있는 방법들을 동원하지만, 그것은 매번 실패한다. 이 시도의 반복은 베케트의 ‘더 잘 실패하라’2는 구절을 떠오르게 한다. 작가는 어쩌면 성공을 향한 반복이 아닌 더 훌륭한 실패를 위해 이 시도들을 멈추지 않는것일지 모르겠다.
이번 전시에서 보여지는 두 작품 <한 모서리의 길이가 약 15cm인 나무 입방체는 어떤 것들의 음각을 숨긴 석고가 되었다> (이하 <한 모서리>) 와 <둥근다리의순간>은 작가의 질문을 전혀 다른 태도로 보여준다. <한 모서리>가 전시되는 순간, 조각이 필연적으로 배태할 수밖에 없는 ‘보이지 않는 면’ - ‘알 수 없는 진실’ - 에 대해 ‘열심히’, ‘재차’ 설명하면서도 결국 실패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둥근다리의순간> 에서 작가는 이 모든 의문과 반복된 실패, 그리고 어느 순간 튀어 오르는 모든 생각을 충동적으로 묘사한다. 작가 스스로 전혀 다른 자소상이라 부르는 이 두 작업은 작가가 품은 조각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조각가로서의 태도를 보여준다.
조혜진은 시장의 생산-소비 체계 안에서 탄생한 필연적인 사물의 형태들을 작업의 소스로 가져온다. <구조들>에서 작가는 ‘실용신안’이라는 특허권을 기록한 데이터들을 이용해 사물들의 형태를 추적하며 다각적 사물 읽기를 시도한다. 작가는 이러한 사물 읽기의 과정 안에서 목적이나 요구에 부합하지 않고 변주되는 형태들을 발견하기도 하는데 합목적적으로 보였던 디자인들이 어느 순간 충동적 감각으로 변이된 채 고정되어 버린다는 점에서 이 사물 읽기는 필연적 형태라는 층위와 충돌하게 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해석된 실용신안의 조건들을 작업의 형태로 가져올 때, 작가는 기능 조건의 형태를 무기능의 형태로 변이시키는데, 이는 생산-소비 체계와 다시 한번 충돌한다.
한편 <이용 가능한 나무>는 일시적으로 쓰였다가 버려진 열대 식물들을 다시 깎아낸 것으로, 이를테면 리사이클의 방식을 취한다. 이때 이것의 본래 용도였던 ‘선물용 열대 식물’의 모습 - 시간, 작가가 이것을 발견한 모습 - 시간, 수집되어 깎이며 ‘작품’이 된 모습 - 시간, 그것을 ‘조각’으로 바라보게 되는 모습 - 시간들은 하나의 작품에 모두 담겨 시시각각으로 그 모습들을 상상하게 한다. 그리고 그것이 가진 사회문화적 지표들, 즉 작가가 언급한 바 있는 자본주의의 불편한 민낯을 담고 있던 ‘상품’이었던 생명이 이 모든 시간을 품은 조각들로 재탄생 할 때, 이 큰 대조는 대상으로부터 숭고함 마저 느끼게 한다.
권경환은 자신과 주변의 삶을 매개로 자본주의 제도 안에서 살아가는 삶의 소박한 형태들을 보여준다. 그는 여러 번의 이사로 인해 그때마다의 공간에 맞도록 개조되어야 하는 가구들, 그리고 그 가구들에 맞게 개조되어야 하는 삶들로부터 애틋하고 정겨운 유희의 과정을 찾아낸다. 그것은 그의 주변 사람들과 자신으로 대변되는 소박한 삶의 주체들에게서 발견된다. 예컨대 나무막대기가 다른 물건을 잘 지탱할 수 있는 다용도의 받침으로 개조될 때, 형태와 색감은 늘 진지하게 고려되는 대상들이며 그렇기에 그 과정은 놀이감각으로 전환된다. 작가는 손쉽게 조립하여 사용할 수 있는 재료인 L자 앵글로 다목적의 가구를 제작할 때 고려되는 형태와 색감의 유희적 감각들을 즐겁게 표출한다. 그것은 조각작품을 제작할 때의 감각활동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작가는 그것을 강조하기 위해 점차 그것의 쓸모를 제거해가면서 동시에 조각적인 기능을 강화시킨다. 이제 그의 L자 앵글로 만들어진 <가정식 조각 – 균형>은 온전한 작품으로 전시장에 놓인다.
작가는 이러한 놀이 감각을 <Still Life>에서도 드러낸다. <Still Life>는 대만에서 자주 사용되는 생일축하 풍선을 조립한 것으로, 평범한 삶 속에서 발견되는 우정의 물건들을 다시 작가의 의도대로 – 그것이 가진 조건을 활용하여 – 구축한 것이다. 작가는 주어진 조건으로 살아가야 하는 모습들을 ‘조건을 활용한 조립’이라는 제스쳐로서, 그리고 그 과정에 녹아있는 놀이 감각의 발견으로서 삶 속의 조각들을 재해석한다.
루시는 영화 중반부터 자신의 몸을 자유자재로 변형시키더니, 말미에는 아예 사라져버리고 “나는 어디에나 있다”라는 메시지를 남긴다. 그렇다. 보이지 않더라도 모든 것들은 사라지지 않고 늘 우리 주변에 있다. 감각과 사고가 에너지 반응인 것처럼, 내뱉어진 말들, 스쳐 간 손길들, 지나간 시간들, 바라보던 시선들까지 사라지지 않은 채 에너지의 형태로 어디에나 존재한다. 우리가 더 높은 차원을 이해하게 된다면 어쩌면 아주 손쉽게 이해할 수 있는 현상들이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다만 끊임없이 그 틈새를 찾을 뿐이다. 매체와 포스트 매체라는 기이한 갈림길에서 조각은 ‘매체 특정적’이라는 오해를 낳으면서도, 이 이름을 등에 업고 더 높은 차원으로 가려는 - 하지만 언어의 제약 안에 갇혀 매 순간 도달하지는 못하는 - 시도를 한다. 베케트의 ‘더 잘 실패하라’는 말을 여기에서 다시 한번 적용해보자. 더 나쁘게, 더 잘 실패하라. 어차피 우리는 진짜로 죽지는 않는다.
안민혜 원앤제이 갤러리 큐레이터
1 뤽 베송, <루시>, 2014. Luc Besson, LUCY, 2014
2 Samuel Beckett, <Worstward ho!>, “Try again, fail again, fail better”

최고은, <썸>, 한샘 루나 화이트, 나무, MDF, 유리, 거울, 슈퍼 미러 스테인리스 스틸, 각각 35x32x189cm, 2018

최고은, <어니스트 라페뉴>, 엘지 휘센 LSNC066BL, 유리, 75x20x10cm, 2018
오승열, <Rhythem of mass (AA)>, Risographed paper, 14.8 x 21 cm, 2019
오승열, <Rhythem of mass (AB)>, Risographed paper, 14.8 x 21 cm, 2019

윤지영, <한 모서리의 길이가 약 15cm인 나무 입방체는 어떤 것들의 음각을 숨긴 석고가 되었다>, 석고, 샤벨 나무, 사진(210g 에코 파인아트지 위에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즈, 각각 14.9 x 14.9 x 14.9 cm(석고), 145 x 145 x 15 cm(샤벨나무), 각각 64 x 49 cm (사진), 2019

윤지영, <둥근다리의 순간>, 아쿠아레진, 체리나무, 단풍나무, 호두나무, 흙, 분필, 스프레이 페인트, 페인트, 끈, 2014

조혜진, <구조들>, 종이에 에폭시 코팅, 가변크기, 2017

조혜진, <이용 가능한 나무>, 수집한 열대식물을 각목으로 조각 (행운목, 파키라, 녹보수, 고무나무), 가변크기, 2015

권경환, <Still Life>, 드로잉, 종이에 연필, 20 x 29 cm, 2018

권경환, <Still Life>, 풍선[해피 벌스데이], 금색실, 45 x 96 x 43 cm, 2018
참여작가: 권경환, 오승열, 윤지영, 조혜진, 최고은
출처: 원앤제이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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