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175
2015년 9월 25일 ~ 2015년 10월 7일
Wholly Holy Hole
어두운 전시장 한쪽 벽면에 금방이라도 몸이 빠져들 듯한 거대한 구멍이 뚫려있다. 종이로 촘촘하게 덧댄 내벽을 따라 안쪽으로 시선이 이동하면,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하얀 공간이 비춰지고 있을 뿐이다. 막힌 벽인지 빛의 덩어리인지, 왠지 익숙한 불편함이 발길을 붙든다. 기억을 샅샅이 들춰보지만 도통 알 수가 없다. 무엇인가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일반적인 감각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특수한 장치가 있는 것은 아닐까 확인해본다. 무고한 불빛이 서서히 공포로 바뀌는 순간이다.
통로를 따라 다급하게 도망친다. 처음엔 두 다리로 최선을 다해 달릴 수 있었지만 원통형의 길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좁아져서 이제 온몸이 끼어 전진하기가 수월치 않다. 무엇 때문에, 누구를 피해서 달아나는지 생각할 겨를이 없다. 짧은 신음 한번 내뱉지 못하고 사지가 불편하게 접힌 채 잠에서 깬다. 며칠째 같은 꿈인지 알 수 없다.
빛이 들지 않아 새까맣게 그늘진 구멍을 보면 몸이 기억하는 그 처절함이 떠올라 속이 불편해진다. 식도나 장 어딘가가 꽉 들어차있는 듯하다. 보잘 것 없는 몸뚱이가 막아버렸던 통로는 이 안에도 있다. 구름 가득한 하늘에 방사형으로 뻗어 나오는 경이로운 햇살도 마찬가지다. 저기 보이는 긴 터널의 끝은 결코 손에 닿지 않을 것만 같다. /작가노트
<NIGHTMARE_the white castle>(2014-15)은 별것 아닌 풍경,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무미건조한 시간이 꿈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면서 기괴하게 변형되게끔 하는 인식의 통로를 재현함으로써, 비가시적 영역이 획득하는 아우라에 의문을 제기한다. 더욱이 그다지 크지도 않은 (일종의) 원형 스크린을 만들기 위해 투입한 과잉 노동이 적나라하게 보이는 덕으로 과정과 결과의 괴리감이 강화되고 있다. 예로부터 닿을 수 없고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에 경외감을 갖고 섬겼던 초기 인류 이야기를 담은 소책자 《Wholly Holy Hole》을 곁들이면 작품의 무게는 한결 가벼워진다. ― 주술과도 같은 동심원 문양과 구멍 집착을 인간의 본능과 연관 지어 써 내려간 빈틈투성이의 페이크 다큐(Fake Documentary) 형식이다.
그간 골판지나 모형 재료 등 가벼운 소재들로 다양한 스케일의 산업 시설 시리즈를 제작해온 작가는 실재하는 대상을 재현하는 방식에서 단순한 형태로 이루어진 구조물을 조합하는 것으로 작업이 변화해왔다. 이후 단어와 문장(<STILL HERE, YOU AGAIN>(2014), <태어나서 죄송합니다>(2015))이 사용되고 짧은 글이 서사 구조를 완전히 바꾸기 시작하면서 작업 또는 전시에서 (너무 작아 보잘 것 없는) 책자가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된다. 이전과 동일한 과정으로 만들어지는 작품의 맥락 또한 전환점을 맞고 있는데, 소위 ‘불꽃 노동’으로 일컫는 예술 생산의 단계와 전시의 불편한 관계를 위시하여 경계 지점의 이야기들을 지질하게 들쑤시거나 비틀어보는 실험들이 진행 중이다. / 글 박지혜

NIGHTMARE_the white castle, 골판지, 에폭시, 합판, 각목, led조명장치, 196×196×330(cm) 가변설치, 2014-15

《Wholly Holy Hole》_부분, 갱지에 잉크젯 프린트, 95x115(mm), 2015
출처 - 갤러리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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