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토
2006년 6월 9일 ~ 2006년 8월 6일
강홍구의 디지털 사진은 작가가 보고 느낀 한국 사회의 현실을 디지털 사진의 왜곡을 통해서 일그러진 채로 보여 준다.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현실의 파편들은 견고하고 완벽한 풍경을 이루지 못하지만 실재감없이 가짜같은 현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상 이는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다. 디지털 사진이 일상의 일부가 되고 디지털 기술의 발전이 미래를 지배하는 사회에도 사람의 마음과 주변의 환경은 아직도 우리를 잡아 끄는 무게를 가지고 갑작스러운 변화의 트라우마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근대화가 아직 진행 중인 것처럼 21세기 정보화 사회라는 엄청난 변화에도 불구하고 사람과 풍경의 물리적인 실체는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으며 우리를 살고 있는 현실세계의 중요한 부분을 이룬다. 강홍구의 디지털 풍경은 디지털로 포착한 풍경일 뿐 아니라 진짜가 되기 위해 발버둥치는 우리 사회의 만화경을 보여 주는 풍경이다.
몇 년 간의 초등학교 교사생활을 정리하고 화가를 꿈꾸며 미술대학에 진학한 강홍구는 처음에는 회화를 전공했지만 곧 광고나 영화스틸 이미지를 활용한 합성 사진으로 자신만의 작업방향을 찾기 시작하였다. 작가는 위대하고 독창적인 미술을 기준으로 내세우는 기존 미술 체계에 대한 저항으로 합성 사진을 시도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스스로를 천재 작가인 A급이 아니라 한 급 떨어지는 B급 작가라고 칭하면서 그는 대중매체에서 빌어 온 이미지를 가지고 엉뚱하고 기괴한 가짜 사진을 만들었다. 현실의 갈등들을 해결할 수 없는 무력감을 표현하기에는 손으로 그린 유일무이한 회화보다는 복제가능한 대중문화의 이미지가 더 어울리고, 기계로 인화지를 출력하는 사진은 대량복제의 가볍고 일회적인 특성을 강조했다. 초고속 근대화를 이룬 한국사회의 특수한 현실을 직접 겪은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과 결합한 이 사진들은 작가의 첫 사진전시 제목처럼 '위치, 속물, 가짜'를 탐구하는 연작을 이루었다.

드라마세트 3 Drama set 3, 2002, 디지털 사진 인화 digital photo&print, 80X208cm
강홍구의 드라마 세트 연작은 ‘실제로’ 세트장을 찍은 사진들이다. 사진들에서 볼 수 있듯이, 시대극이나 무협드라마의 촬영을 위해서 만들어진 세트장은 완성된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이는 것과는 전혀 딴판이다. 고화질카메라와 편집기술, 거기에 첨단 컴퓨터그래픽까지 합쳐진 요즘 영화와 드라마의 화면에서는 현실이 틈입하는 어떤 균열이나 이음새도 좀처럼 발견하기 힘든 반면에,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강홍구의 드라마 세트에는 저 멀리 고층아파트 단지가 보이고, 허술하게 받쳐져 있는 가짜 동대문의 뒷면이나 그 앞에 버려진 쓰레기들이 부각되기도 한다. 가짜가 지배하는 한국 사회의 풍광 속에서 '진짜 가짜'인 드라마 촬영세트는 역사와 맥락을 무시하고 세워져 실체없이 허울만 존재하는 배경막으로써 현실을 일깨워 준다.

나는 누구인가 10 Who Am I 10, 1998, 디지털 사진 인화 digital photo&print, 44×63cm
초기작업에서는 영화스틸 속에 자신의 얼굴을 편집해 넣거나 대량생산된 광고와 상업사진 이미지들을 활용하는 포토몽타주식 결합이 주를 이룬다. 가장 안전하고 행복해야 할 가정이 가부장제의 억압아래 괴물이 출몰하는 장소로 변하거나, 분단상황에 대한 공포가 잠수함이나 전투기의 모습을 빌어 드러나는 스캐너 합성 사진들은 갑작스럽게 피어난 경제적 풍요에도 불구하고 사람들 마음 깊은 곳에 자리잡은 불안과 갈등을 드러내 보여 주고 있다. 한편 작가 스스로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영화스틸 시리즈들은 노골적으로 폭력과 섹스를 남용하는 영화 속 주인공으로 자신을 연출하며 나르시시즘과 자기연민이 얽힌 드라마를 펼쳐 보인다.

미키네 집-구름 Mickey's House-Clouds, 2005-2006, 디지털 사진 인화 digital photo&print, 90X250cm
강홍구의 최근작에는 초현실적인 숭고의 체험이 가능한 초고속 파괴와 초대형 건설의 현장, 꿈인지 생시인지 알기 힘든 현장의 그 미로 속으로 우리를 끌고 다니는 유인책으로 도시외곽의 재개발 현장에서 작가가 주은 장난감들이 등장한다. 미키마우스가 그려져 있어 미키네 집이라 칭한 장난감 집이 거대한 포크레인과 철골더미들 사이로 삐죽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 장난감 집은 “즐거운 나의 집”이라는 의미의 내용에서 보자면 은유적이고, 집의 부속물이라는 완구의 측면에서 보자면 환유이며, 장난감과 사진의 발생적 관계를 강조하자면 인덱스에 해당한다. 알록달록한 장난감 집의 색깔 때문에 폐허화된 무채색의 개발 현장이나 단색조의 자연 속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이 미키네 집은, 서로 다른 프레임의 각기 다른 사진 작품들을 연결해 주는 일종의 하이퍼텍스트 역할을 한다.

수련자-우탁천근右托千斤, Trainee-Keeping the Balance of Right Leg, 2005-2006, 디지털 사진 인화 digital photo&print, 100X220cm
강홍구의 강북재개발 지역 사진연작은 ‘발견된 오브제’를 가지고 주변에 적당한 장소를 찾아 거기에 오브제를 옮겨놓고 몇 가지 위트 있는 시뮬레이션을 해보는, 그 프로세스 자체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게임의 수행적 측면을 드러내 준다고 할 수 있는 이 연작사진의 특성은, 작가가 수련자라 명명한 두번째 장난감을 통해서 한 번 더 강조된다. 이 캐릭터는 일본 격투기 게임의 전사 카주야 미시마인데, 전선줄을 타고 들며 깨진 유리조각 위를 넘나들고 가파른 담을 타고 오르는 수련자의 롤플레잉을 따라 가다 보면, 이러한 시각적인 재미에 몰두하느라 우리 눈은 어느덧 그 물건이 놓여진 풍경의 맥락을 놓친 채, 장난감의 지표를 찾아내서 안심하게 된다.

오쇠리 풍경 6 Scene of Ohsoi-ri 6, 2004, 디지털 사진 인화 digital photo&print, 100X260cm
작가가 이야기한 것처럼 전근대를 배경으로 시작해서 한 세대를 지나기도 전에 곧바로 정보화 사회로 진입한 한국에는 건너뛴 시간과 공간을 반영하는 다양한 모순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김포공항 근처 소음피해 보상지역이자 주민 이주 후 폐허가 된 공간인 오쇠리에서 찍은 사진에서는 경제개발의 희생양이 된 지역공동체에서 작가가 느낀 무력감이 절실하게 드러난다. 사람들은 떠나고 쓰레기와 텃밭만 남은 동네의 지금도 진행 중인 비참한 사연을 알지 못해도, 색감를 조절하여 일부러 부조화하게 만든 풍경은 유령마을 특유의 음산함과 등골을 오싹하게 하는 과거의 유령들을 느끼게 한다. 도시의 고층건물과 고속도로 밑에 숨은 어두운 그림자처럼 오쇠리의 황량한 풍경은 우리 사회의 발전상을 위해 버린 것이 무엇인지 보여 준다.

그린벨트-세한도 Greenbelt-Sehando, 1999-2000, 디지털 사진 인화 digital photo&print, 90X260cm
디지털 카메라가 갓 상품화되어 대중에게 소개되던 시절, 부족한 용량 때문에 여러 사진을 이어 붙여서 만든 풍경들은 좌우로 긴 파노라마를 이룬다. 그러나 이 풍경들은 넓은 시야를 일관되게 포착하여 현실을 충실하게 재현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일그러진 풍광들을 조각조각 이어 붙인 조합들이다. 서울 근교 개발제한구역인 그린벨트의 풍경을 찍은 사진들은 도시에 남은 마지막 자연의 보루라기보다 갑작스러운 개발열풍 속에서 뒤쳐진 쇠락과 노후의 흔적들을 보여 준다. 촌락을 중심으로 한 농경사회는 도시화의 필연적인 과정을 거치면서 무너졌고 그 과정에 남은 잔재들은 녹색의 이상향이 아니라 회색조의 우울한 풍경을 만든다.
출처 : 플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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