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
2018년 11월 22일 ~ 2018년 11월 22일
+어디까지 다다를 수 있을까?
요구와 욕구는 결핍과 부재로부터 출발한다.
그러나 결핍과 부재의 해소가 요구와 욕구를 사라지게 하지는 않는다.
결핍과 부재의 해소를 위한 인간의 노력은 어디까지 다다를 수 있을까?
+생의 파편들, 방랑
방랑은 삶의 파편을 되돌아 보고, 자기 존재의 충만함을 실현하는 것이다.
방랑은 온전히 자신을 자각하고 수용하여 외부와 연결을 시도하고 스스로를 대면하는 것이다. 이렇듯 방랑은 알아차림이다. 알아차림으로 떠날 수 있고 머무를 수 있다.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는 담담한 걸음을 나타내는 리듬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떠나는 이의 독백이 시작된다.
“이방인으로 왔다가 이방인으로 떠난다.”
그가 시작한 방랑의 이유는 사랑의 실패와 부조리한 사회 때문만이 아니라 이미 이방인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방랑은 해소의 목적과 동시에 사라지지 않는 요구와 욕구였다.
+불안과 걱정, 위태로움과 나약함의 선물
슈베르트는 1827년 빌헬름 뮐러의 시<방랑하는 호른 주자의 유고 시집> (Gedichte aus den hinterlassenen Papieren eines reisenden Waldhornisten) 을 위한 음악적 그림을 완성한 후 1828년 11월 19일 오후 3시 매독으로 죽었다.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는 사랑의 실패에 대한 낭만주의 예술가의 자화상이라는 해석과 비더마이어 시대의 검열과 억압이 낳은 사회적 소외를 방랑의 개념으로 표현했다는 해석이 중론이다. 그러나, 시대적 배경과 이방인의 이유 없는 방랑의 시작, 방랑의 수용과 대면, 상실과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 경계성 심리 상태에 대한 작업 해독이 없더라도 <겨울나그네>에 담겨진 슈베르트의 진솔하고 사려깊은 음악적 메시지를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슈베르트는 <겨울나그네> 속 흥얼거림을 통해 시대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의 음악은 다차원적인 감각을 선물한 것이다 .
+우리의 요구와 욕망은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우리의 방랑은?
무한한 생산과 소비, 경쟁과 혁신, 다양한 이상과 평등 등은 이에 따른 결핍과 부재의 해소를 넘어 다시 해석할 여지를 준다.
우리는 수요를 창출할 수 없는 잉여적 가치와 생계형 작업 사이에서 그 균형을 유지하고자 존재와 생의 형태에 대한 끊임없는 선택을 한다. 하지만,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해 삶의 유연함을 발휘해 보는 것 뿐이다. 그리고, 붕괴하는 구조 앞에선 허망한 숭고를 쫓는 자기 배반의 이방인이 될 뿐이었다.
슈베르트가 빌헬름 뮐러의 시에서 이방인을 발견하고 그에 빗대어 슈베르트의 진아(眞我)를 전달해 주었다면, 이제 우리의 방랑을 그의 작업에 빗대어 우리의 방랑을 재현하려 한다.
김정근 곡
봄로야 글, 그림
구시연 안무, 출연
신이피 설치
최민선 아쟁
이지안 타악
구자민 바이올린
김정근 피아노
구자민 기획
일시: 2018년 11월 22일(목), 오후 8시
티켓: 전석 20,000원
웹사이트: https://www.facebook.com/MontagedesWanderns/
출처 - 겨울나그네: 방랑의 몽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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