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99
2025년 8월 1일 ~ 2025년 9월 6일
한국 동시대 미술의 비판적 리얼리즘 혹은 개념적 리얼리즘을 대표하는 중견작가 고승욱(1968 ∼ , 제주출생)의 개인전 <어떤 이야기>를 개최한다. 2011년 평화박물관 스페이스99에서 고승욱 개인전 <말더듬 두 번째>가 열렸으니 이번 개인전은 작가의 14년 만의 귀환인 셈이다. 2008년부터 최근까지의 작업을 망라하는 이번 개인전은 고승욱 작가에 대한 최초의 집중적인 작가 탐구 형식을 취한다. 30년 가까운 작가 활동 가운데 처음 선보이는 신작 유화 7점을 포함해 비디오 6점, 사진 21점, 드로잉 5점, 설치 1점, 오브제 1점 등 41점으로 구성되는 <어떤 이야기>는 지난 17년간 작가가 구축한 작업 세계의 내재적 논리와 진화 과정을 입체적으로 조망한다. 특히 근대 민족국가의 어떤 담론 구조와 서사 방식으로도 재현될 수 없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억의 소환을 위해 작가가 제안하는 독창적 이야기 형식을 부각시키는데 전시의 주안점을 둔다.
최근 한국 사회의 정치적 현실을 경험하며 역사적 감수성과 정의로운 역사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요즈음 특히 광복 80주년의 해에 열리는 고승욱 개인전은 그 의미를 더한다.
2005년 쌈지스페이스의 연례기획으로 열린 <타이틀매치 이건용 VS 고승욱> 전시는 당시 미술계의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70년대 이후 한국의 행위예술과 개념미술을 주도해 온 이건용과 ‘맞붙은’ 고승욱은 이미 <노는 땅에서 놀기>(2002)와 <엘리제를 위하여>(2005) 등의 퍼포먼스 비디오 작업을 통해 한국적 상황주의 미술을 개척한 신예로 주목받고 있었다. 그 무렵 같은 세대의 작가 박찬경, 배영환, 플라잉시티 등과 더불어 제도비판 및 사회비판을 추구하는 비판적 리얼리즘 혹은 개념적 리얼리즘을 추구한 고승욱은 ‘역사의 정의’에 대해 자각하는 결정적인 전환을 경험한다. 2005년 말부터 지역연구 공동프로젝트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탐사하기 시작한 동두천에서 방문한 상패동 공동묘지의 묘비 없는 무덤들로부터 그는 커다란 충격을 받는다. 이미 붕괴된 한국 사회의 역사적 공동체에서도 잊혀지고, 이미 도래한 개인주의 사회에서도 어떤 개인의 자격조차 획득하지 못한 무수한 망자들을 대면한 이후 고승욱은 ‘기억의 주권 회복’ 혹은 ‘기억의 정치학’과 같은 주제에 몰두한다.
지난 20년 동안 고승욱은 동두천 상패동 이후에도 고향인 제주의 4.3의 학살 현장과 노근리 쌍굴다리, 지리산 실상사, 한국전쟁의 격전지 홍천 등 한국 현대사에서 지워질 수 없는 한반도 변방에 위치한 사건의 장소들을 순례한다. 이 순례기행을 통해 작가는 역사 기록 혹은 이데올로기의 필연성과 같이 여러 형태의 폭력을 수반하는 서사가 억압하고 축출하는 미세하고 하찮은 것들, 잠시 머물다 스쳐 지나는 것들을 수집하고 채증한다. 이렇게 기억의 동굴 깊숙이 갇혀 있던 사건의 감각, 정동, 생각, 감정들이 고승욱의 이야기 장치들을 통해 소생한다.
사진 연작 <돌초>와 일종의 퍼포먼스 사진 연작 <탁영> 작업은 한국 현대사를 가로지르며 이름 없이 사라진 학살 등의 국가 폭력 희생자들을 위한 애도와 추모 방식이다. 데스 마스크와 라이프 캐스트 그 중간쯤에 해당하는 그의 돌초는 우리 산하에 널려있는 돌로부터 파라핀 왁스를 소재로 거푸집 형태로 제작된, 원한을 품고 떠도는 혼백들의 영정 초상이다. 어머니의 자궁이나 망자의 시신을 위한 집을 연상시키는 이 거푸집 초에 불을 켜면 망자의 혼을 불러들이고 영접할 채비를 갖춘다. 때로 바람 불고 파도치는 해안 절벽이나 갯바위에서 이런 제의가 펼쳐질 때 원혼이 나타나 자신의 한 맺힌 사연을 쏟아내는 울음을 작가는 ‘말더듬’이라 칭한다. 근대 민족국가의 어떤 서사 형식으로도 말해질 수 없는 그들의 이야기는 제주 무속의 심방의 역할이 그러하듯 영게울림을 통해서 살아남은 이들에게 전달된다. 고승욱의 ‘말더듬’은 이렇게 죽은 자와 산 자를 이어주어 영혼의 애달픈 가슴을 달래주는 수행적 실천이다.
작가는 지난 10여 년간 진행해 온 제주 중심의 생태학, 민속학 및 문화인류학 연구를 바탕으로 자신의 고유한 ‘돌아옴’의 주제 의식을 더 깊게 천착하고 확장시켜 왔다. 제주 학살의 현장인 동광리 무등이왓에서 조 농사를 지어 술을 빚고 희생자 영령을 위해 제사를 지내는 ‘잃어버린 마을에서 보내는 선물’은 비디오작품 <밭과 소>(2022)에서 동일본 대지진 참사의 기억과 중첩되며 공간적으로 확장된다. 살아남은 후쿠시마 농부가 목장을 다시 일으켜 소를 키우는 생명 회복의 이야기는 조 농사를 통해 죽음의 땅에서 생명의 씨앗을 틔우는 작은 공동체 집단의 협업과 연대의 체험과 접속된다.
작가의 신작 <몰래물이야기>(2025)에서 알 수 있듯이 일제강점기부터 현재까지 전쟁과 개발의 이름으로 끊임없이 국가로부터 집단 이주를 강요받았던 제주 제성마을 노인들의 왕벚나무 지키기에는 마치 현실이 꿈으로 전치되는 유사 ‘주술’ 과정이 개입되기도 한다. 베어진 왕벚나무 그루터기 가지 삽목을 통해 죽은 나무 환생시키기를 시도하는 작가는 노인들의 기대와 희망을 저버리지 않기 위해 마을 왕벚나무 이외에도 다른 왕벚나무 가지도 더하여 꺾꽂이한다. 제성마을 왕벚나무의 꺾꽂이한 가지가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만약의 경우를 대비한 것이다. 작가는 이렇게 원본의 진실성을 조금 ‘오염’시키는 일종의 선한 속임수, ‘트릭스터’의 역을 수행하기도 한다. 노근리 학살의 희생자 및 유가족과 함께한 영상작업 <북극성>(2023)의 촛불 그림자 퍼포먼스에서도 작가의 ‘주술’에 의해 희생자, 살아남은 자가 서로 손을 맞잡는 탁영(拓影)의 형상을 만들어낸다. 이는 제주 심방들이 굿놀이에 도입하는 여러 환영 장치에 빗대어 이해해 볼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작가의 2018년 작품 <∆의 풍경>에서 보여주듯 1950년 노근리 쌍굴다리 앞에서 차마 어린아이, 부녀자들에게 총구를 겨냥하지 못하고 위로 난사했던 미군 병사의 이야기와 살아남은 자들의 트라우마는 그 시간적 확장을 통해 박근혜 탄핵을 위한 촛불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의 정치적 열망과 접속된다. 냉전 이데올로기가 고도화된 자본의 이해관계와 맞물려 전개되는 국내의 지정학적 상황 속에 우리는 제주의 강정과 같은 신냉전 시대의 산물들을 목격한다. 시간과 장소를 달리하는 사건의 기억들이 이렇게 통시적∙공시적으로 연결되고 접속하는 것은 고승욱 특유의 서사 양상이다.
역사적 트라우마의 치유 없이는 그 원광경은 공동체의 부재 속에 지연되어 다시 다른 형상으로 나타난다. 작가는 촛불 시위 현장의 거리에서 또는 제주의 굿당에서 수집한 녹아버린 초를 재생하여 이름 없이 떠도는 영혼을 위해 불을 밝힌다. 민주주의의 회복을 위한 염원이건 아니면 개인의 행복을 기원하는 것이건 작가는 이렇게 가상의 발원 공동체 혹은 소망의 연대 집단을 제안한다.
매 순간 상징적으로 삶과 죽음 사이를 오가며 몸짓과 발림으로 관객을 즐겁게 하는 줄놀이 광대의 연희와 같이 고승욱의 ‘어떤 이야기’는 부단히 삶과 죽음 사이를 넘나드는 생명의 파동을 전달한다. 이렇게 살아내는 힘, 고통을 견디는 힘의 회복을 통해 애도가 저항이 되고 추모는 연대를 만들어낸다.
개념적 리얼리즘 혹은 비판적 리얼리즘 계열의 작가로서 고승욱에게 다큐멘터리 성격의 사진이나 영상 이외에 비판적 맥락을 구성하는 내러티브 텍스트의 존재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번 전시와 연계하여 고승욱이 직접 쓴 <어떤 이야기> 책자를 발간한다. 전시와 관련해 작가가 진행한 여러 프로젝트의 기록 사진들과 함께 작가가 쓴 시편들이 에세이와 결합된 작가 특유의 글쓰기 모음집이다. 이는 지난 17년간의 작가의 여정을 이해하기 위한 소중한 안내서이기도 하다.
아울러 개막식 부대행사로 8월 1일 (금) 오후 3시 고승욱 작가, 진태원 교수(성공회대 민주자료관 연구교수, 황해문화 편집주간)와 작가와의 대화 행사를 개최한다.
참여 작가: 고승욱
전시 기획: 박만우 (스페이스99 관장)
주관: (사)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 성공회대학교 민주자료관
후원: 아트스페이스‧씨, ㈜빙그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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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시간
월요일 휴관
화요일 14:00 - 17:00
수요일 14:00 - 17:00
목요일 14:00 - 17:00
금요일 14:00 - 17:00
토요일 10:00 - 17:00
일요일 휴관
휴관: 일요일, 월요일, 공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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