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식주는 인간 생활의 3대 필수요소이며, 이 중에서도 집은 심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안정감을 갖게 하는 공간적 요소이다. 작든 크든 그 크기와 관계없이 다른 이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사회적인 가면을 쓰지 않아도 되는 ‘집’은 내가 원하는 대로 혹은 나와 함께 사는 누군가가 원하는 대로 자고 먹고 놀고 쉴 수 있는, 개인의 욕망을 마음껏 풀어놓을 수 있는 공간이다. 오페라 《클라리, 밀라노의 아가씨》에서도 노래하듯 내가 쉴 곳, 내 기쁨이 쉴 곳도 ‘즐거운 나의 집(Home! Sweet Home!)’뿐이다. 현실은 어떠한가? 독립을 해야 할 시기이지만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캥거루족이 늘어나고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삼포세대’에 이어 인간관계와 내 집 마련까지 추가로 포기하는 ‘오포세대’까지 등장한 2015년을 살아가는 젊은이들 중 내 집 한 채는 고사하고 내 방 한 칸 없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이들의 마음 편히 풀어놓지 못하는 욕망과 욕구는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으레 다른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현대인의 욕망은 노래방, PC방, 찜질방, 마사지방 등 한국인에게 친숙한 공간인 ‘방’ 속으로 점철되어 거리를 빼곡히 채우고 있다. 고재욱은 욕망으로 가득한 방들을 이동식 큐브(cube)로 재현했고 사람들이 이 공간에 들어와 참여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두었다. 반(半)거울 노래방인 <Die for>(2013)는 관람객들이 큐브에 다가서면 센서가 반응하여 내부에 불이 켜지며, 그 안에서는 작가의 심정을 대변한 노래들이 선곡되어 반복 재생되었다. 일인용 동전 노래방의 문을 고의로 열어두고 노래를 부르는 이들의 모습에서 착안한 <Karaoke Box>(2013)에서도 작가가 선곡한 노래들은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위 두 프로젝트 모두 관람객들은 큐브 안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를 그들의 의지와 관계없이 들어야 했다. <Rentable Room Project>(2015)에서 작가는 서울의 유휴공간에 이동식 모텔을 설치해 거리를 떠도는 연인들을 위해 소정의 사용료만 받고 방을 대여했다. 작가는 이 프로젝트에 참가한 연인들과 몇 시간씩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 그들이 살고 싶은 방이나 집을 그리게 해 참여후기로 받기도 했다. 고재욱은 방 속으로 숨어버린 욕망을 큐브라는 매개체에 담아내는 작업 외에도 헤어진 옛 연인의 물건들을 3개월간 보관해주고 참여자의 요구대로 처리해주는 <Never Let Me Go Project>(2013)나 작가의 포트레이트 사진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내고 그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작가에게 다시 보내도록 하는 <On Your Mark Project>(2009~)와 같은 작업도 선보여왔다. 이러한 작업들을 통해 작가는 사람들의 억눌린 욕망이나 갈 곳 없이 떠도는 마음에 대한 관심이 작업의 출발점이자 과정임을 보여주었다.
이번 개인전 “Room Sweet Room”을 통해 고재욱은 처음으로 소위 화이트 큐브(white cube)로 불리는 전시장 안에서 그가 제작한 이동식 큐브들을 선보인다. 반거울 큐브인 <에릭 아서 블레어>(2015)는 소설 『1984』의 저자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본명을 빌려온 것으로 관람객들이 큐브 가까이 다가서면 내부의 불이 켜지며 평소에는 드러나지 않는 침실이 관람객들에게 공개된다. ’Pride(과시), Gluttony(폭식, 폭음), Sloth(나태)’가 부제로 붙은 <Protective Coloring>(2015)은 노래방, 주점, 게임방을 재현한 것으로, 흰색의 보호색이 칠해진 세 개의 큐브들이 흰색의 전시공간 안에 설치된다. 규격화된 공간 안에 억눌린 현대인들의 삶과 욕망을 다루는 고재욱의 작업이 미술관 안으로 들어와 전시되면서 작업의 근간이었던 관객 참여는 잠시 생략된다. 대신, 가명을 썼던 유명한 소설가의 낯선 본명과 보호색을 앞세운 3개의 죄악을 제목으로 설정함으로써 작가가 보호하려 하면서도 드러내고자 하는 그 무언가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
"효율성만을 강조한 주거 형태 덕분에, 기존의 공간이 가지고 있었던 다양한 역할들은 별도의 상업시설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게 되었습니다. 그 역할을 양도받은 상업시설들 또한 자본의 논리를 충실히 따라 가장 저렴하고 효율적인 방식을 택하기 때문에, 결국 또 다른 기형적인 기능을 가진 방들이 계속해서 만들어지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욕구와 욕구를 해소하기 위한 단편적인 기능들만이 남아있는 공간들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도 그 공간이 가지고 있는 묘한 기운을 머금게 만드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곤 합니다.”
- 작가노트 중

Protective Coloring - Sloth, 2015, mixed media, 200 x 200 x 200cm
에릭 아서 블레어, 2015, mixed media, 185 x 185 x 185cm
Protective Coloring - Pride, 2015, mixed media, 240 x 240 x 240cm
출처 - 송은아트큐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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