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표 스페이스
2020년 11월 16일 ~ 2020년 12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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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훈과 구나 작가를 살펴보는, 그리하여 잇는 작업은 요원한 세계를 겪는 일과 같았다. 가늠되지 않는 시간과 시점에서 작가들은 세계의 평면을 구성했다. 결과적으로, 존재는 형해화되어 이름(제목)으로만 남거나 기억의 어떤 흔적으로 부상하는 듯 보인다. 표면적으로, 세계는 안상훈과 구나에 의해 각각 채워져 감을 또는 비어 있음을 기록하고 있다. 동시에 회화는 각각 존재의 투여를 그리고 존재의 부재를 증명한다. 그리하여 존재는 불투명하지만 뚜렷하게 손짓한다. 마지막의 단서가 남는다. 곧 제목은 구나에게는 표면의 의미일 수도 또는 안상훈에게는 또 다른 표면일 수도 있다.
안상훈의 작품들에서 언어, 곧 제목은 작품을 설명하는 대신 가로지르거나 스치거나 허공을 맴돈다. 작업에서 여러 선분 또는 획은 조합되지만, 조합의 이상향을 꿈꾸는 대신 모인 세계의 평면이 되듯, 재현으로 수렴되지 않고 획들은 제각각의 형태 자체에 머무른다. 이들은 저마다의 운동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 조합은 신기한 광경이 된다. 이러한 선분들은 또는 색들은 어떤 것이 우위를 갖지 않고, 따라서 어떤 것도 지워지지 않는다.
이 평면은 지워지듯 새겨지고, 새겨지며 멈추게 된다. 이들은 저마다의 존재 형상으로 위치한다는 점에서만 종합을 구성한다. 그리고 여기에는 인과관계가 아닌 시간성이 존재한다. 형태의 맞물림은 불일치하는 시간의 계열을 설명하지만, 그 과정에서 색채의 조합은 미적인 판별을 따를 것이고, 배치는 시간적으로 동시에 물리적으로 앞선 것에 대한 대응이거나 조응일 것이므로, 이러한 종합은 결국 어떤 구조를 구성하는 일에 속할 것이다.
여기서 작가는 어떤 최종 형태를 재현의 목적지로 두고 있지 않은 까닭에 최종 심급의 판별자로 위치함에도 조각들을 더듬어 가는 촉수로써 그 시간성을 누벼야 하는 움직임-기계가 된다, 또는 되는 것으로 그치는 듯하다. 여기서 이를 지칭하는 언어는 이 무수한 움직임들의 운동성을 나타내거나 그것이 시작된 어떤 분위기를 설명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언어 자체가 재현의 형상을 갖지 않는 것임을 나타내는, 작품을 지칭하는 듯 보이는 맥거핀일 수도 있다. 반면, 이는 이 작업을 가로지르거나 허공에 손질하는 하나의 획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처음이거나 마지막일 수 있는 선.
구나의 작품들에서 언어, 곧 제목은 때때로 작품 그 자체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는 작품을 초과하거나 곧 설명하거나, 언어 자체에 그치기도 한다. 곧 작품에 있는 부재를 설명하지 못한다. 구나의 사물(오브제)들은 꽤 정직하다. 이는 어떤 존재의 형상을 취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사물들은 말을 걸기보다 언어의 형상으로 새겨진다. ‘그것은 거기 존재하고 있었다.’라는 사실로서. 그리고 그 각각의 사물들은 다시 한번 더 언어의 작용을 요청한다. ‘그것에 이름 붙일 것!’ 따라서 제목은 그것을 먼저 선취한 마술인 동시에 그것을 이름으로써 되살려낸다.
이러한 사물들은 보는 이를 굽어살펴 보게 하는 것이라면, 회화는 마치 보는 이의 눈을 촉수로써 더듬어 보게 만든다. 작은 조각들이 단정하게 엮이며 이루는 세계는 어떤 재현의 계열을 형성한다. 그것은 사물보다 때로 더 명확하게 존재의 형상을 취한다. 흐릿하지만 단단한 이 결정체는 세계의 보이는 바를 분쇄하고 어떤 흐릿한 기억의 정동으로 구성하고 있다고 보인다. 이 흐릿함은 명백한 하얀 구멍들에 대한 오인이다. 어떻게 보면, 구나는 세계가 아닌, 하얀색을 그리거나 하얀 세계를 구성하고 있다고도 보인다.
‘정직한 사물’이라는 것에 조응해, 우묵하게 파이며 회화는 세계를 재현하기보다 기억을 체현하려 한다. 그것은 흐릿한 사실이지만 뚜렷한 진실의 세계이다. 여기서, 구나는 조각들로 세계를 잇는다. 존재를 구성한다. 거기에는 “너”와 “나”가 또는 이름 모를 ‘그(녀)’가 있다. 맨눈으로 그들이 눈을 떴는지 알 수 없다. 구나의 사물들이 얼굴이 없는 것과 같이, 따라서 마주칠 수 없는 존재로 부유하고 있음을 보는 이에게 체현시키는 것과 같이 그들은 눈을 뜬다, 또는 감는다.
결정적으로, ‘하얀 입방체’들과 ‘총천연색 세계’의 전경은 대립하거나 조응할 것이다. 그렇지만 결국, 어떤 결정(結晶)들은 어떤 결정(決定)에 의거한다. 그것은 존재를 비켜 마주하는 구나와 물질에 존재자로 침투하는 안상훈에게 각각 윤리적이거나 수행적인 것일 수 있다. 그러나 곧 언어—제목—는 물질에 관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럼으로써 작업의 형성됨을 가시화한다는 점에서 두 작가의 작업은 명명의 변증법적 작용을 수행하며, 결정의 어떤 순간이 기입되고 있음을 증명한다.
참여작가: 구나, 안상훈
주최: 샘표 스페이스
기획: 김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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