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너아트스페이스
2016년 8월 27일 ~ 2016년 9월 13일
권민호 개인전 KWON MINHO SOLO EXHIBITION

전시 서문
몇달 전 어느 젠트리피케이션 현장에서 열린 토론회. 강연자로 나선 성공한/저명한/60대/ 남성 건축가는 역사 속의 ‘자발적 추방자들’을 열거하며 예수와 스티브 잡스를 하나로 묶었다. 그리고 덧붙여 자신도 그렇게 산다고 했다. 어설픈 지식과 자기 도취의 완벽한 결합 앞에서 장내는 평화롭기만 했다. 토론자 코멘트 시간에 짧게 말했다. “예수와 잡스가 얼마 동안 시스템에서 추방 상태에 있었던 건 사실입니다. 그들의 추방은 실은 제대로 돌아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돌아온 곳은 전혀 다릅니다. 예수는 인민 속으로, 잡스는 시장 속으로 돌아왔죠. 둘을 하나로 묶는 건 적절치 않습니다.”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 투쟁 현장에서 예수와 잡스가 평화롭게 하나로 선포되는 풍경은 우리가 어떤 세상을 살아가는지 잘 보여준다. 우리는 가장 혁신적인 기업가가 가장 위대한 예술가로 여겨지는, 나아가 지상의 신으로 여겨지는 세상을 살고 있다. 혁신은 본디 기업가의 숙제였다. 존재하지 않았던 욕구를 만들어내는 것, 전엔 없던 물건을 필수품으로 만들어 새로운 이윤을 창출함으로써 자본주의의 불꽃을 꺼트리지 않는 것은 말이다. 그러나 혁신적인 기업가는 찬탄의 대상일 뿐 존경의 대상은 아니었다. 신자유주의는 모든 걸 바꾸어냈다. 기업가의 혁신은 예술가의 창의성과 종교적 영성과 동일시되며, 포괄한다. 존경이자 감동이며 구원이다.
이런 세상에서 예술가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과연 예술가는 예술가의 명찰을 단 채 기생하라는 시스템의 명령을 거슬러, 단독자로서 세계와 대면하며 자신만의 상상력으로 새로운 세계의 형상을 그려낼 수 있는가.
권민호는 그에 답하려 분투하는 작가 중 하나다. 그로테스크하면서 기계 구조적인, 얼마간 오싹한, 치밀하고 세련된 연필 선과 흰 여백의 조화, 강렬한 사회성을 담고 있지만, 프로파간다가 아니라 프로파간다에 질문하는, 배제된 존재들에 대한 연민, 좀더 품위있는 세상에 대한 강렬한 열망, 그리고 예민한 자의식과 성찰의 흔적. 이 계보 없는 단독자가 압구정동 사거리 고급백화점 명품샵과 마주 서서 또 무엇을 그려내 보일까. 나는 즐겁게 궁금하다. / 글: 김규항
작가의 글
왜 미국에 살던 삼촌이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선물했던, 빨간색 지우개가 달린 노란색 연필을 그리도 좋아했을까? 왜 정식 발매된 일본 만화보다 엉터리 불법 복제본을 더 감명 깊게 기억하고 있을까? 왜 간판으로 뒤덮인 상가 건물에는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그 건물의 2층 카페를 뒤덮은 유럽풍 실내장식에 감탄할 수 있을까? 이 질문들을 따라가다 보니 제국주의와 함께 했던 우리 근대의 역사와 이후 반세기에 걸쳐 진행된 산업화의 역사를 만날 수 있었다.
서양의 ‘원본’에 비추어 봤을 때 ‘잘못된 복제품’인 우리의 풍경은, 이제 우리만의 새로운 미감이 되어 있다. 서양의 시선에서 ‘잘못됨’으로 인식됐던 우리의 현재는 사실 서양이 가질 수 없는 매력적인 팔레트다. 서울에 위치한 간판으로 뒤덮인 5층짜리 상가건물이 유럽의 어느 현대 미술관 메인홀에서 전시된다면, 평소 그 미감을 경멸했던 우리는 그 앞에 서서 “잘못된” 아름다움을 최선을 다해 찾을 것이다.
우리의 주변 풍경이 내재하는 특별한 힘을 발견하는 일은 중요하다. 이 발견은, 작업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어야 한다. 거기서 우리는, 각자의 팔레트를 손에 쥐고 근대적 가치가 바탕이 된 땀내 나는 노동의 과정으로 걸어가야 한다. 여기는 감각의 높고 낮음을 떠나 결정된 것을 실행에 옮기는, 머리와 손의 엄밀함이 요구되는 단계이다. / 글: 권민호
출처 - 코너아트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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