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전예술
2018년 8월 16일 ~ 2018년 8월 22일
이 전시를 만든 3인은 이화여대 조형예술학부 재학생으로, 20대 초중반의 학생들이다. 이 전시는 민족이나 국가간의 대립, 소수자 차별 등 종교적이거나 정치적인 이데올로기와 관련한 주제를 설정하고 그것에 응답하는 전시가 아니다. 이러한 기획 방식을 의도적으로 거부하지는 않았다. 단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자기에 대한 사랑, 자기 정체성에 대한 물음이 자기가 아닌 것-여러 공동체적 의제들 혹은 예술 그 자체-으로 이행하여 그것들에 대한 진정성으로 화하기에 전시 참여자들은 너무 어리다.
전시 작품들을 명료한 목적성을 띤 기획의도 아래 정리하기 무척 어렵다. 그렇게 할 필요성 역시 희미하다. 각자가 즐겁게, 무감각하게, 기적적으로, 때론 '겨우' 영위하고 있는 일상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일상적 삶)을 대할 때의 생각과 감정들이 여러 사건들과 얽혀 존재하게 된 극복에의 의지, 실존적 조건들에 대한 저항의 의지, 더 행복하고자, 더 의미있는 삶을 찾고자 하는 의지들에 의해 우발적으로 흘러나온 조형들이라 규정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전시를 하겠다' 라는 마음이 기획의도의 전부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3인의 출품자의 작업세계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아예 하지 않음은 기획자의 오만일 것이다.
전시 공간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천은 김은채 의 작품이다. 불면의 시간 동안 곡선을 긋기를 반복하여 괴로운 밤들의 흔적을 남기고 이를 작품화했다. 시작이 어디이고 끝이 어디인지, 입구는 어디이고 출구는 어디이며 이 거대한 모양의 구조는 어떻게 되는지 전혀 알 수 없다. 이러한 점에서 이 작품은 식사 준비,설겆이, 빨래 등의 가사노동으로 대표되는, 주로 여성의 몫이었던 '재생산 노동'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좀 더 넓은 시각에서 본다면 생각과 기억, 작은 살 덩어리들과 전체로서의 몸, 모으기와 흩어놓기, 축적과 붕괴 등 '제정신' 일 때에는 모두가 구별하고 있는 속성들 사이 경계를 무화시키며 관람자를 당황케 한다.
전시장을 들어오자마자 마주보게 되는, 빠른 붓질로 만든 거친 모양들로 채워진 캔버스들은 윤경원의 작품이다. 윤경원은 원초성에 대한 영감에서 출발하여 즉흥적으로 작품을 제작하였다(1). 원초성을 시각화하기 위해서는 원형적 도상(이미지)이 필요하다. 윤경원은 이 도상들에 접근하고 그것을 내면화하여 작품으로 만들어냄에 있어, 원시림이나 바다, 거대한 암석, 기이한 식물의 형태를 조사해 재현하는 대신, 즉흥적이고 그 전체가 자각되지 않는 자기 내면의 힘에 의지한다. 의식을 어지럽게 떠도는 형상들이, 짧은 순간 재편되어 구체적이거나 익숙한 사물들에 대한 지시성을 상실하고, 어쩌면 기억 속 사건들이나 감정을 표상하기 위해 존재했던 서사적 사건들의 틀, 지지체, 뼈대만이 남은 듯한 '모양' 으로 캔버스에 옮겨졌다.
입구가 있는 벽면에 설치된 권윤지의 드로잉들은 어딘가 서늘하고 외로운 느낌을 준다. 안식을 갈당하면서도 안식을 가능케 하는 마음에게 거칠게 반항하는 그림들은 공허한 방황을 언제까지나 행할 것처럼 보인다. 스틸 컷과 같은 하나의 장면이 암시하는 극적인 서사(상실, 죽음, 목숨을 건 사랑, 도피, 폭력, 질투, 유년으로의 회귀, 향수 등) 는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구체적인 인물, 지시성이 강한 공간과 사물을 통해 구현되었다는 면에서 과하게 직설적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전시를 꾸린 세 명의 출품자가 공통적으로 바라는 것이 있다면, 우리들의 행위가 따뜻한 행위였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선하고 온정적이라면 그것이 어떤 것이든 의미가 있다. 그것이'미술적'인가를 깊이 따져 묻기에 역부족일 만큼 우리는 이제 첫걸음을 뗀 초보자임을 부정할 수 없고, 부정해서도 안 된다. 이 전시의 취지를 말함에 있어 '초보자들의 것임에도 의미있는' 것이라고 주장하기 위하여 지금껏 학습한 짧은 지식들을, 형식과 상징에 대한 분석적 관점들을 동원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전시 작품들이, 주어진 삶에 대응하는 방식으로서 -우리가 가진 대응의 도구들은 미술적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앞으로 미술이 아니게 될 수도 있으며, 이미 영원히 미술일 것일수도 있다- 조심스럽게 또 가볍게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며 기획문을 마친다. 글: 권윤지
기획: 권윤지
참여작가: 권윤지,김은채,윤경원
후원: 회전예술
출처: 회전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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