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토
2004년 11월 26일 ~ 2005년 2월 6일
19세기 후반에 서구 조각은 구태의연한 전통의 답습으로 불모의 상태에 이르게 된다. 근대시민사회의 요구에 따른 공공미술의 주문으로 기념조각이 난립했지만, 조각은 아카데미의 관습에 얽매여 동시대 예술전반의 발전과 유리된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중세와 르네상스의 전통을 이어 근대조각의 새로운 가치를 세운 프랑스의 작가가 로댕(Auguste Rodin, 1840~1917)이다. 그는 아카데미의 이상화된 아름다움을 거부하고 인간의 내적 진실을 표현함으로써 진정한 인간성을 드러내고자 하였고, 이를 위하여 인물의 단순한 재현에서 벗어나 생생한 열정과 고통, 고뇌의 모습을 강렬한 인체표현으로 담아 내었다.
로댕에 의해 일보를 내딛은 근대 조각은 20세기 현대조각의 변화를 예고하는 새로운 전통을 이룬다. 근대조각의 거장 로댕의 뒤를 이은 조각가가 부르델(Antoine Bourdelle, 1861~1929)과 마이욜(Aristide Maillol, 1861~1944)이다. 로댕의 작업실 조수로 사사한 바 있는 부르델은 로댕이 이룬 조각의 혁신을 계승하면서 동시에 극복하기 위해 조각에 있어서 건축적인 양식을 추구하였다. <활을 쏘는 헤라클레스>와 같은 대형 인체상으로 부르델은 조각의 건축적인 구성과 원시적인 양식에의 복귀를 이루었다. 이같은 시도는 관학파 조각의 지배 아래 잊혀졌던 조각의 근본요소로, 조각이 가진 힘과 활력을 다시 회복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화가로서 활동을 시작하여 태피스트리와 목조등 다양한 매체를 탐구한 바 있는 마이욜은 조각에 있어서도 회화에서와 마찬가지로 종합적인 구성을 추구하게 된다. 주로 여체상을 제작한 마이욜은 여인의 아름다움을 통해 고대의 조각에서나 가능했던 충실한 양감과 생명력 넘치는 정감을 동시에 포착하였는데, 이들은 기존의 19세기 여인조각상과 차별화되는 밝고 청량한 세계를 보여 준다. 작업 초기부터 단순한 모티브를 다양한 재료로 시험하며 조금씩 변화, 발전시켜온 마이욜의 제작방식은 <드뷔시를 위한 기념비>로 대표되는 조화로운 인체상의 연작을 이룬다. 하나의 주제를 일관되게 다루며 단순한 구조를 추구하는 마이욜의 인체 조각들은 20세기 추상조각의 시조가 된다.
이렇게 근대의 조각은 로댕에 있어서 획기적인 변화를 맞게 되며 이어지는 부르델, 마이욜의 활동으로 비로소 한 시대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19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조각에 생명과 감정을 불어넣어 현대조각의 기틀을 마련한 로댕과 그의 영향을 받은 동시대 작가인 부르델과 마이욜이 함께 하는 이번 전시는 서구 근대조각의 일면을 볼 수 있는 기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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