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하미술관
2016년 6월 10일 ~ 2016년 7월 3일
김범석 개인전 : 끝없는 바람

마음이 복잡하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 깊은 산이나 끝없이 펼쳐지는 바다를 떠올린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가까운 한강이라도 가서 바람이라도 쐬고 오자! 라는 말을 한다. 왜 그럴까? 자연과의 접촉은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위로가 되고, 매번 답을 찾진 못해도 과거와 현재의 내 존재를 온전히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과거 화인(畫人)들이 자연을 물질 너머 무의 세계나 수양의 대상으로 삼은 데엔 이유가 있다.
동양화를 전공한 김범석 작가는 지난 10여 년간 자연의 풍경을 대상으로 자신이 경험하고 느낀 것을 시각화하는데 여념이 없다. 길을 걷다 마주친 산, 섬 주변의 해안가, 작업실 주변 등 모두 자신의 삶 동선에서 마주친 풍경이며 그림의 소재다. 그는 정경을 재현하기도 하지만 형태의 닮음을 구하지 않으며 자신의 감정, 과거의 기억, 작가로서의 정체성 등을 자연이 가진 기운과 생동감을 통해 형상화 시킨다. 먹과 호분을 주된 안료로 사용하는 작가는 동일단위의 점과 선을 그리고 지우고 또다시 그 위에 덧칠하는 행위를 반복하는데 이 때 한지를 세워두고 그리기에 재료의 흘러내림과 중첩으로 인해 우연성이 배가 된다. 따라서 윤곽선을 통해 사물을 판독하게 하지만 가까이에서 자세하게 보지 않는 한 형태를 구별하기 힘들다. 이러한 밋밋한 풍경은 작가 특유의 붓질을 통해 나무가 되고, 숲이 되고, 산이 되고 섬이 되어 하나의 생명체로 발화하게 한다.
2016년 작품 <섬 끝없는 바람> 시리즈는 이러한 형태의 불분명함이 한층 더 부각되며 회화의 경계를 확장시켜 나가고 있다. 이것은 작가가 작품을 밖으로 드러내는 외양적 특징 이외에도 정신적 기질을 동반하며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이어진 ‘정신적 사고의 중심’과 그에 따른 ‘지속적 인식의 진동’을 그리기의 원동력으로 삼기 때문이다. 작가노트에서 그는 “상상과 기억이 주는 파장이 훨씬 더 리얼하다”라는 말을 한다. 즉 작가는 자신의 기억장치를 통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 쌓아놓은 축적물을 작가만의 기법으로 표현해 내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베르그송 (Henri-Louis Bergson)의 시간 이론에 따르면 무수한 낱장들이 공존하고 있는 거대한 과거와 이 과거의 낱장들이 향하고 있는 응축된 점으로서의 현재가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 시간이라 한다. 즉 현재의 시점은 과거와의 급격한 단절이 아닌 개인의 기억들이라는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시간의 응축과 자신의 경험을 화면에 계속해서 중첩시켜 현재의 시간으로 다시 관통하게 한다. 근래 작가는 잠시 머물렀던 남도의 질퍽한 땅 끝 마을 해남 작업실에서 섬을 배경으로 작업을 진행했다. 흥미롭게도 섬의 어원은 ‘isole’ 격리와 고립의 뜻을 가지고 있다. 작가는 어쩌면 섬이라는 외로운 공간에서 공간의 개념보다는 내면의 공간에 집중하여 고독을 터득한 듯하다.
금번 자하미술관에서는 <산전수전>展 이후 약 4년 만의 개인전 <섬, 끝없는 바람>展을 기획했다. 이번 전시를 통해 끝없는 바람처럼 밀려오는 작가의 관념이 모여 만든 섬을 감상하는 기회를 갖길 바란다.
출처 - 자하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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