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밈
2016년 12월 7일 ~ 2017년 1월 8일
김봄, 2209 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2×162cm_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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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그 곳’, 시선과 기억의 자유로움에 관하여
김진우
‘어떤 곳’과 ‘그 곳’은 개념적으로 대립한다. 시선과 기억에서 벗어난, 특정하지 않은 ‘어떤 곳’은 시선에 포착되고 기억에 각인된, 특정한 ‘그 곳’과 상반된다. ‘어떤 곳’은 경험의 영역을 피하여 추상의 차원에 자리하지만, ’그 곳’은 경험을 벗어난 추상적 상상을 외면한다. 하지만 인간의 의식 속에서 ‘어떤 곳’과 ‘그 곳’은 서로를 포용한다. 불확정적이며 추상적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곳’은 상상의 영역에서 부유하지 아니하고 실존의 차원에 발디디고 있다. ‘어떤 곳’은 끊임없는 의문과 상상을 자아내어, 마침내 시선 속에, 기억 속에 포획되어 경험의 영역으로 인도된다. 그리하여 ‘어떤 곳’은 ‘그 곳’이 된다. 또한, 추상적 상상을 불허하고 경험적 기억만을 용인하던 ‘그 곳’은 인간의 지각과 기억에 의해 재편 된다. 경험적 기억에 의해 변형된 ‘그 곳’은 추상의 차원으로 귀착한다. 그렇게 ‘그 곳’ 은 다시 ‘어떤 곳’이 된다.
김봄의 개인전 <어떤, 그 곳>의 작품들은 ‘어떤 곳’과 ‘그 곳’의 경계를 넘나든다. 그녀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공간들은 ‘어떤 곳’도, ‘그 곳’도 아니지만, 동시에 ‘어떤 곳’이기도, ‘그 곳’이기도 하다. 그들은 ‘어떤’이라는 불확정성과 추상성, 그리고 ’그’라는 확정성과 구체성을 동시에 지닌 ‘어떤, 그 곳’들이다. 주로 익숙한 장소들을 다루었던 작가는 이제 낯설은 풍경들과 마주섰다. 익숙한 도시인 서울을 떠나 런던, 이스트본, 에딘버러, 더블린, 프라하, 그리고 부산을 거닐며 자신만의 시선으로 추상적이었던 ‘어떤 곳’들을 구체적인 ‘그 곳’들로 하나하나 바꾸어 갔다. 그렇게 모여진 ‘그 곳’들에 대한 기억의 조각들은 작가의 의식 속에서 뒤섞이고 변형된 채 캔버스 위에 투영되었다. 하지만 캔버스에 펼쳐진 풍경들은 하나의 시선과 시점에서 포착되어 객관적 또는 주관적으로 ‘재현’되어진 것들이 아니다. 작가는 전통적인 ‘재현’의 문법을 따르지 않는다. 대신에 캔버스 위의 ‘그 곳’들은 작가의 의식과 기억이라는 필터를 거친 ‘발현’의 결과물들이라 하겠다. 그렇게 ‘그 곳’들은 ‘어떤, 그 곳’들로 재탄생하였다.
김봄의 작품들에 있어 절대적인, 객관적인 시간성과 공간성은 무의미하다. 작품의 풍경들을 구성하는 대상들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시공에 객관적으로 존재하지만, 완성된 풍경은 그때, 거기에 존재했던 ‘그 곳’들이 아니다. 한 도시의 여러 공간, 그리고 그 도시에서 흘러갔던 시간의 혼합을 통해 대상들은 재배열, 재배치된다. 그 대상들은 객관적 시간과 공간의 맥락을 이탈하여 그녀의 기억 속에서 새로운 맥락을 창조한다. 그렇게 탄생한 풍경들은 결코 정적이지 않다. 그들은 다양한 시간과 공간이 뒤섞이고 맥락을 이탈한 대상들이 어우러진 ‘역동적 풍경’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한 풍경들은 통시적이며 다원적이다. 하나의 상 속에 다양한 시간과 공간이 녹여져 있다. 그 속에는 작가 자신의, 그리고 그 도시의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는 듯 하다. 작가는 ‘어떤, 그 곳’이라는 단일한 상을 통해 다원적이며 다층적인 도시를 느끼고 기억한다.
이러한 작가의 독특한 작법은 에딘버러를 배경으로한 이번 전시의 대표적인 작품, “2209 E”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산과 언덕들을 중심으로 도시에 뿔뿔히 흩어져 있던 대상들이 비례성과 균등성을 무시한 채 자유로이 위치한다. 도시의 어딘가에 있을 미술관은 산과 언덕 사이로 옮겨졌다. 있을 법 하지 않은 집들이 흩뿌려져 있는 산너머로는 성곽이 모습을 드리우고, 유람선이 떠다니는 강가에는 맥락을 상실한 고풍스런 건물들이 자유로이 위치한다. 하지만 이러한 맥락의 상실은 구도의 파괴로 연결되지 않는다. 맥락을 이탈한 대상들은 또 다른 맥락을 형성하며 잘 짜여진 구도를 완성하고 있다. 그렇게 창조된 구도와 맥락을 통해 그녀는 ‘어떤, 그 곳’, 에딘버러를 느끼고 기억한다. 또한, 작품, “1707 P”는 부산에서의 따뜻했던 기억들을 담고 있다. 작가의 시선에 포착되고 기억에 각인 되었던 대상들이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한 채 자유로이 포개지고 겹쳐지며 환영적인 풍광을 연출한다. 맥락을 이탈한 대상들이 꼴라주적인 방식으로 자유로이 배열된다. 이처럼 작가는 자신의 자유로운 시선과 기억을 통해 ‘그 곳’, 부산을 추억한다. 추상적이며 경험적이고, 환영적이며 실존적인 ‘어떤, 그 곳’들은 자유로운 시선과 기억, 그리고 그들의 소중함을 말하고 있는 듯 하다.
자유로움은 필시 주체의 확립을 전제한다. 하지만 자유로움은 객체에 대한 포용 또한 요구한다. 객체에 압도되는 주체가 자유로울 수 없으며, 객체에서 이탈하여 방황하는 주체 또한 자유롭다 말할 순 없을 게다. 시선과 기억의 자유로움은 대상의 엄밀한 수용으로부터 출발하여 자아의 깊이있는 성찰로 마무리된다. 이런 의미에서 작가 김봄은 시선과 기억의 자유로움은 ‘어떤 곳’과 ‘그 곳’ 사이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말하는 듯 하다. 그녀는 ‘그 곳’들과 ‘어떤 곳’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자신의 경험과 기억에 자유를 부여한다. 자유로이 완성된 ‘어떤, 그 곳’들은 그녀에게 있어서 사색과 성찰, 그리고 성장을 뜻한다.

김봄, 0912 L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1×61cm_2015

김봄, 1606 P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0×60cm_2016

1707 P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31.8×40.9cm_2016

김봄, 1803 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194cm_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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