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갤러리
2018년 3월 20일 ~ 2018년 4월 22일
김용익 (b.1947) 1983-2012 1983-2012 Drawing on paper, wooden box wrapped in silk 106.5 x 140 cm 사진: 박준형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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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는 드로잉 작품이란
1. 낡고 허름하고 값싼 재료를 사용한 작품
2. 별다른 노동이나 테크닉 등 공을 별로 들이지 않은 작품
3. 완성되어 고정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진행되는 작품
4. 좀 부서지거나 더럽혀지거나 곰팡이가 나도 상관없는 작품
5. 작업 도중 발생한 의도치 않은 얼룩 등 실수를 감추지 않는 작품
6. 만들다 중간에 그쳐서 더 손을 대할 것 같은 작품
7. 손상되기 쉬운 작품
8. 기존의 작품을 지우거나 포장해버리거나 훼손시킨 작품 등등이다.
- 2017.11.27. 작가의 말
국제갤러리는 3월 20일부터 4월 22일까지 김용익의 개인전 《엔드리스 드로잉(Endless Drawing)》을 개최한다. 작가의 최신 회화 작품을 선보인 지난 2016년 국제갤러리에서의 첫 개인전에 이은 두 번째 개인전으로, 이번 전시에서는 198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40여년 간 작가 작업의 근간을 이룬 다양한 드로잉 작업 40여 점을 처음으로 소개한다.
재료에 따라 회화와 드로잉을 구분하는 미술계의 관행과는 달리 김용익은 내부적으로 닫혀진 자기완결적 완성태를 ‘회화’로, 외부적으로 열린 과정적 지속태를 ‘드로잉’으로 일컫는다. 완성된 ‘회화’에는 어떠한 첨가도 용인되지 않지만, ‘드로잉’에는 지속적인 덧칠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김용익은 1970년대 작업 초기부터 순수미술이라는 범주 안에서 모더니즘적 관행의 지배적 특성에 균열을 내는 작업을 지속해 왔다. 예컨대 조형적인 완성태로서의 그의 작업은 문화, 경제적 가치를 부여 받는 전통적 예술 작품의 특성 혹은 태도와 교묘하게 어긋난다. ‘모더니즘과 에코 아나키즘(eco-anarchism) 사이를 오가는’ 일련의 작업군은 작품의 보존과 안치라는 기존 개념과 거리를 두며, 자의적 훼손과 방치뿐 아니라 낡고 허름한 재료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그러므로 70년대의 평면 오브제, 80년대의 기하학적 추상, 90년대의 땡땡이 회화 그리고 2000년대 자신의 과거 작업을 ‘관’ 속에 안치시킨 관 작업과 허름한 포장재로 캔버스를 둘둘 싸맨 후 무심히 방치하는 최근작까지, 작가의 대표적 작업은 모두 ‘드로잉적’인 작업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김용익의 작업은 작품에 고정된 형태와 해석을 지연시키고 방해한다. 시간이 만들어낸 곰팡이나 먼지, 운송과 설치 과정에서 더해지는 흠을 작업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조형적 균형을 갖춘 모더니즘적 회화 표면에 주기적으로 글을 써넣거나, 과거 작업이 30년 후 새롭게 제작되는 작품 안에 봉인되기도 하며, 낡은 가방 속 허름한 스케치북에 담겨 있던 드로잉이 후일 설치 작업으로 전환되는 등의 흥미로운 사건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는 현 미술제도 내에서 작동하는 보존·수복, 기록·보관, 포장, 운송 그리고 유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관행과도 불균형적이지만 흥미로운 이해관계를 형성한다.
〈엔드리스 드로잉(Endless Drawing)에 대하여〉
이번에 전시되는 작품들은 이전의 내 작품들이 그렇듯이 모더니즘과 에코 아나키즘(eco-anarchism)이라는 두 극점(極點) 사이를 오가는 작품들이되 에코 아나키즘에 조금 더 기운 모양새다.
내가 생각하는 내 작품에 있어서의 에코 아나키즘은 작품이 썩든지 말든지 그냥 내버려 두거나 적극적으로 썩게 만들거나 일부러 훼손하는 행위를 포함하여 낡고 허름한 재료들, 쓰레기로 버려질 쓰고 남은 재료들을 찾아내어 사용하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에코 아나키즘적 작품을 페인팅의 타자로서의 드로잉이라고 부른다. 드로잉이라는 말에는 이미 완성태가 아닌 지속태라는 의미가 함축되어있지만 그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엔드리스(endless)란 형용사를 붙였다.
에코 아나키즘은 2009년 12월에서 2010년 1월에 걸쳐 인도에서 한 달 동안 지내며 확고하게 내 안에 자리잡게 된 듯하다. 그 때의 일기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은 “나는 이미 자본주의의 독배를 마셨다"라는 구절이다.
그렇다. 내가 지금 에코 아나키즘을 입에 올리며 쓰레기 발생을 최소화하는 ‘저(低) 엔트로피 작업’을 하고 있지만 내가 에코 아나키즘을 내 삶과 예술로 수행하기엔 이미 나는 자본이 제공하는 삶의 안락함에 깊숙이 중독되어 있어서 에코 아나키즘을 주장할 토대를 상실하였다. 따라서 이런 작업을 하고 발표를 한다는 것은 자기 기만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렇게 제작하고 발표한다. 그 이유는 오로지 자기위안 때문이다. 자기위안이라도 하지 않고는 이 파국의 시대를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구라는 유기적 생명체 위에 살고 있는 인간의 역사가 그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지만, 그래서 어떻게든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서 그 파국을 저지해야 함을 알면서도 자본주의의 유혹과 겁박 때문에 어쩌지 못하는 나와 동류의 사람들에게 나의 작품은 조그만 자기위안 거리를 주려는 것이다. 이렇게 에코 아나키즘을 주장함으로써, 그리고 거기에 동조 함으로써 뭔가 이 파국을 지연시키는데 일조라도 하는 게 아니겠느냐는 위안 말이다.
혹자는 이러한 에코 아나키즘적 저(低) 엔트로피 작업이 미래에 대한 희망의 씨앗을 품고 있기에 의미 있지 않냐는 말로 나를 위로해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막연해 보이는 그 말에서 위안을 찾기보다는 “자기위안”이란 말에서 위안을 찾으련다.
또 혹자는 예술이 사회를 바꿀 수 있는 힘을 믿으며 이러한 작업이 갖는 정치적 힘을 입에 올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 역시 이 말에 힘을 더러 얻어보기도 했었으나 예술은 역시 정치적인 힘을 따르기보다는 그 힘을 벗어난 곳에서 “위로하는 역할”을 자임할 때 그 힘을 제대로 낼 수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때 그 힘의 정체는 희미한 힘이되 자기 부정을 거쳐 나온 힘이며 “죽음의 보증”을 거친 힘이리라.
- 2018.3.5. 작가의 말
김용익은 페인팅과 드로잉에 대한 이분법적인 구분에 저항한다. 이런 태도는 ‘페인팅 – 완성태 – 닫힌 구조 – 주체 – 분리와 배제의 미학 – 모더니즘’과 ‘드로잉 – 지속태 – 열린 구조 – 타자 – 연대와 의존의 미학 – 탈모더니즘’이라는 의미의 연쇄고리를 형성하며 작업에 내재된 정치적인 해석을 가능케 한다. 이를 위해 작가는 19세기 조선의 철학 사상인 정역(正易)의 우주론을 차용한다. 이제 우주는 새로운 것의 창작이 가능했던 시대를 지나 후천개벽(後天開闢)의 시대를 맞이했고, 그리하여 현 시대의 예술가는 기존의 것을 재전유 및 재배치하는 에디터로서의 역할만 한다고 읽는다. 이는 곧 페인팅의 미학이 그 의미를 상실한 채 드로잉의 미학으로 대체되는 패러다임으로서의 변화를 상징한다.
《엔드리스 드로잉(Endless Drawing)》 전은 종이라는 매체에 국한되어 있던 드로잉이라는 주체의 틀에서 벗어나 보다 자유롭고 열린 ‘드로잉적’ 개념으로 단단히 연결된 다양한 작업을 펼쳐 보인다. 이번 전시는 ‘드로잉 개념 작가’의 김용익의 에코 아나키즘적 작업의 기저에 흐르는 ‘회화의 타자로서의 드로잉’에 대한 정의를 재고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나는 ‘거룩함’을 가난한 인간, 오래된 것, 굶주리고 병든 동물, 버려진 장소에서 찾는다.
나에게 있어 드로잉과 글쓰기는 이런 거룩한 것들에게 경배하는 방법이다.
- 작가의 말
작가소개
김용익은 “물감 잔뜩 묻은 작업복을 걸치고 캔버스 앞에서 물감칠을 하기보다는 깨끗한 옷을 입고 책상 앞에 앉아서 컴퍼스와 자로 작도하기를 선호하는 드로잉 개념 미술가”이다. 1947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91년부터 2012년까지 가천대학교(구 경원대학교) 미술디자인대학 회화과 교수를 역임하였고 1999년 대안공간 풀의 창립에 참여하였으며 2004년부터 2006년까지 대표로 재직했다. 한국의 대표적인 중견 작가로서 모더니즘 미술, 민중미술, 공공미술, 자연미술 등 다양한 맥락 속에서 작업을 전개해오며 지속적으로 문제의식을 제기하는 작업을 전개해왔다.
1974년 홍익대학교 서양화과 재학시절 천으로 제작된 <평면 오브제>시리즈를 발표하였다. 이를 통해 본격적으로 등단, 화단으로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으나, 1981년 작업을 박스에 ‘매장’시켜 전시에 출품하며 모더니즘 주류에서 벗어난 독자적인 노선을 선언했다. 이후 80, 90년 민중미술과 모더니즘의 과도기적 양극화에 대한 국내 화단의 풍토를 지양하며 공공미술, 글쓰기 및 저서활동, 지역기반의 환경미술 운동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는 미술을 둘러싼 생태와 제도, 공공의 영역에서 미술의 역할을 고민해왔다. 2016년 일민미술관 회고전, 2017년 영국 스파이크아일랜드 및 주영한국문화원 전시의 성공적인 개최를 통해 국내외 주목을 받고 있으며, 다가오는 3월 29일부터 31일까지 개최되는 아트바젤 홍콩의 캐비닛 섹터에서도 조명될 예정이다.
주요 개인전으로는 2017년 《나는 아직 나의 작품을 유효하다고 믿는다》 스파이크아일랜드 및 주영한국문화원, 2016년 《가까이... 더 가까이...》 일민 미술관, 2011년 《무통문명無痛文明에 소심하게 저항하기》 아트 스페이스 풀, 1997년 금호미술관 개인전이 있다. 주요 단체전으로는 2014년 제 5회 요코하마 트리엔날레, 2012년 《SeMA 중간허리 2012: 히든 트랙》 서울시립미술관, 2010년 《자연과 평화》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2002년 《그리드를 넘어서》 부산시립미술관, 1981년 《제1회 청년작가전》 국립현대미술관, 1975년 제13회 상파울루 비엔날레, 1974과 77-79년에 걸쳐 참여한 《앙데빵당》 국립현대미술관 등이 있다. 경기도미술관, 금호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일민미술관, 도쿄도 미술관, 미국 로스엔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 로스엔젤레스 현대 미술관(LAMOCA) 등 다수의 주요 기관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출처 : 국제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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