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아갤러리
2022년 9월 30일 ~ 2022년 11월 4일
최정아갤러리의 기획전 《Matters & its Conclusion》은 김이수 · 박현주 · 지근욱 세 작가가 다루는 작업의 재료와 그 재료를 다루는 과정을 통해 회화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면서 특히 작품 창작과정의 이면에 가려진 예술노동의 가치에 주목했다. 이들의 작품에서는 모두 정해진 범위 안에서의 질서와 규칙, 그리고 작업과정이 드러나는 행위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데, 수많은 실험과 반복을 거쳐 각자의 회화적 결론에 도달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들이 다루는 재료와 작업의 행위만을 봤을 때 이것이 나중에 어떻게 드러나 보일지 직관적으로 유추할 수 없다는 점에서 작업의 과정은 매우 추상적이다. 다만 목적하던 결론에 닿기 위한 작가들의 끈질긴 반복 작업과 축적된 시간은 장인적 노력에 견줄 만하다. 이들에게는 최종적인 작업의 실체가 드러나도록 기술적으로 재료를 연마하는 행위와 그것을 구현하는 방식 자체가 중요하다. 시간을 켜켜이 쌓아 올리며 재료와 표현방식을 연구하고 화면 안에 질서와 규칙을 부여하기 위해 손을 이용한 아날로그 방식의 공예적인 작업을 반복하는데, 이는 곧 수행적 개념과도 같다. 단순히 재료를 다루는 지식과 기능뿐 아니라 무엇보다 긴 시간 인내와 작가의 능동적 의지를 담보로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의 작업에 필수적으로 동반되는 예술노동은 가치 있는 개념적 행위로 인정받는다.
다양한 물질과 매체가 넘쳐나는 지금, 자신만의 조형 언어로 소통하는 세 작가의 작품을 재료적 측면에서 새롭게 감각해보고, 하나의 재료가 유의미한 작업으로 귀결되기까지 작가로서 수행해야 할 노동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 생각하는 자리가 되길 기대한다.
김이수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감각하기 어려운 미세한 차이를 의미하는 <앵프라맹스-풍경 Inframince-Landscape>이라 부른다. 무의식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던 이미지의 파편들을 미세하게 감각하기 위해 작가는 수고로운 과정을 거듭 반복하여 작품을 선보인다. 형광 낚시줄로 선의 간격을 조정하며 쌓아 올려 그라데이션을 완성한 후 전면부에 반투명 아크릴을 덧씌우는데 관람자의 시선은 흐릿하고 모호한 한 면을 바라보게 되어 있어 내부의 재료를 쉽게 인지할 수 없다. 이전 작업에서는 반투명테이프에 물감을 올려 색을 입히고 그 색 테이프를 겹쳐 색의 밀도를 조절하는 방식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반복 작업을 통해 선의 경계를 무디게 하고 색조를 흐려 또렷한 이미지를 배제했으며 빛을 반사하거나 굴절시키는 방식으로 직접적인 의미 전달을 피했다. 자유롭게 각자의 감성이 지지하는 풍경을 떠올리거나 틀에 갇히지 않는 확장된 이미지를 경험할 수 있게 만드는 김이수의 추상회화는 그 절제된 표현에서 작가 내면의 공력이 느껴진다.
박현주 작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빛의 세계를 물질로써 재현하여 시각적 환영을 만들어낸다. 일종의 회화적 오브제라 할 수 있는 박현주의 작업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재료의 성질을 이해하고 결국 재료 자체의 성질을 고스란히 작업에 투영하는 것이다. 빛을 재현하기 위해 정방형 나무상자의 네 측면에 일일이 정교하게 금박을 붙이고, 템페라 물감의 빠른 건조속도로 인해 얇고 규칙적으로 반복해서 덧칠해야 하는 부단한 손의 놀림과 지루한 노동의 과정으로 집약된다. 일본 동경예술대학에서 유화재료기법을 전공하던 작가는 재학 시절 중세 성화를 모사하는 수업을 통해 선명한 색채의 템페라 물감과 눈부신 금박이 서로 강하게 대비되면서도 훌륭한 균형을 이루는 것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기하학적 규칙성과 반복적인 입방체로 대변되는 박현주의 설치작업은 언뜻 미니멀리즘의 맥락으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실상 그 작업 과정은 매우 세밀하며 거의 모든 것이 작가의 손에 의해 이루어진다. ‘마침내 화면 속에서 빛을 좇아가는 작업이 결국은 나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임을 깨닫게 되었다’고 작가는 말한다.
지근욱 작가는 일정한 간격과 반복적인 형태의 무수한 선으로 화면을 채우며 긴장감을 자극한다. 알 수 없는 지점으로의 방향성만 가진 채 선들은 규칙적으로 배열되어 있다. 그러나 정교하게 계산된 차가운 느낌의 옵아트와 달리 지근욱의 작업은 그 결과가 매우 우연적이며 작가의 사고와 정서가 깊숙이 개입되어 있다. 여러 차례 젯소를 바르고 갈아낸 매끈한 화면 위에 곡선 모양의 자를 사용해 겹겹이 선을 쌓아가지만 색연필이라는 도구는 매번 완벽하고 매끈한 선의 표현을 방해한다. 손과 마음의 떨림을 떨쳐버리기 위해 작가는 반복해서 수련할 뿐이다. 과거가 쌓여 현재가 되듯 긴 시간 인내로 그어 내린 선들이 모여 보이지 않던 형태를 구성하고 파동을 일으키며 비로소 눈에 드러나는 실체로 다가온다. 꽤 오랜 시간 근원적인 물리적 현상에 관심을 가져왔다고 말하는 작가는 그러한 관심을 자신만의 시각언어로 구현하기 위해 불완전한 선의 반복을 택했다. 완벽하지 않기에 가능성과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며 작가는 불완전한 선 하나하나를 또다시 그러모아 그만의 세계를 끊임없이 창조한다.
참여작가: 김이수 박현주 지근욱
출처: 최정아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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