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밈
2019년 6월 19일 ~ 2019년 7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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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노트
오빈(吳彬)과 레베카, 기암(奇巖) 기인(奇人) 기연(奇緣)
김지평
기암
‘괴석도(怪石圖)’는 기이한 모양의 돌을 그린 그림으로 조선시대에 널리 그려졌다. 괴석도의 괴석은 거대한 산수, 자연과 우주까지 함축하는 경우가 많다. 관점에 따라서는 산수화에서 산과 바위의 가장 작은 단위가 되는 그림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돌에서 추출한 안료인 석채(石彩)로 기암괴석을 그렸다. 자연 광물이 안료가 되고, 그 안료로 다시 원래의 광물을 그린 셈이다. 괴석의 모양은 다양한 산수화에서 선택했다. 중국 북송 때의 거비파(巨碑波) 산수화부터 조선시대 민화, 근대 화가인 변관식의 그림까지 여러 시대의 그림을 참고했다. 그 중 명나라 때 화가인 ‘오빈(吳彬, Wu bin, 1573-1620?)’의 산수화는 마치 판타지 소설과 영화에서 상상한 외계 같기도 하고, 신선과 선녀가 날아다닐 것만 같은 이계의 풍경으로 시대의 화풍도 이론도 훌쩍 넘어서 있어 특히 좋았다. 산의 무게와 돌의 단단함, 높이 솟은 바위와 가파른 비탈의 거칠한 표면의 점과 주름을, 굵은 돌가루 안료와 붓의 마찰을 이용해 그렸다.
기인
이번 전시엔 족자를 이용한 몇 개의 작업도 있다. 족자의 각 부분에는 이름이 있는데, 아랫부분을 치마. 윗부분을 저고리, 양 쪽에 있는 띠를 소매라 부르는 관습이 있다. 그림의 프레임에 여성의 옷을 비유했다는 것이 흥미롭다. 이 작업에서는 여성의 옷(신체의 연장)이라는 관념을 더 밀고 나가면서도,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감상을 교란하는 이미지를 생각했다. 기암절벽, 오래된 성과 미로 등을 배경으로 하는 고딕 소설에 등장하는 세 명의 여주인공을 골라, 이야기 속에서 묘사된 그들의 외모와 옷을 참고해 각각의 족자를 만들었다. 레베카(Rebecca,1938년)는 다중적인 인격으로 묘사되는 미녀이며, 카르밀라(Carmilla,1872년)는 분방한 뱀파이어 소녀고, 오들리(Lady Audley’s Secret, 1862년)는 ‘선정소설’의 주인공으로 이중혼을 감행하는 등 모두 당시 규범을 뒤흔든 여성들이다. 이들은 아름답고 매력적이지만 비밀스럽고 복잡하며 ‘음란하고 요상한 광인’들이다. 레베카의 계단, 카르밀라의 검정 벨벳 느낌, 오들리의 금발과 진홍색 드레스를 표현한 족자는 소설 속에 나오는 ‘초상화’의 다른 버전이기도 하다.
기연
‘기(奇)’ 라는 글자는 ‘踦(절음발이 기)’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다. 대(大)자가 사람이 팔을 벌리고 서 있는 모양이라면 기는 구부리고 선 사람이라는 뜻이다. 우리와 다른 이, 낯선 이 등의 의미를 갖고 있다. 괴석도와 오빈의 산수화, 빅토리안 고딕 여성들의 서사는 모두 뭔가 다른 것이면서도 나에게 드물게 선명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규율, 논리, 세속적인 규범을 따르지 않으며 앎의 한계에 도전해 온 어떤 것들이다. 이번 전시는 그림 형식과 그 재료에 대한 것인 한편, 자연과 그림, 실제와 허구의 인물, 서로 다른 시간대가 모여 기이한 인연을 만들어내는 세계에 대한 것일 수도 있다. 벽사진경(辟邪進慶)이란 ‘귀신과 요괴, 호랑이와 늑대, 독충, 지네 등 요사한 것을 물리쳐 경사스러운 일을 맞이한다’는 부적의 뜻인데, 실은 이들 뿐만 아니라 기암괴석, 마녀들과도 친구가 되는 편이 더 기쁜 일이겠다.
출처: 갤러리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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