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빗앤타이거
2025년 8월 8일 ~ 2025년 8월 24일
《큰-손 컬렉션》은 인간 손영이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 김한솔의 할머니라고 표현하기보다 그의 이름을 직접 언급한 것은, 작가가 그를 할머니라는 역할로만 이해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작업은 30 여 년간 고착되어 있던 손녀와 할머니의 관계에서 시작되긴 했지만, 그 관계의 고질적인 문제인 ‘사랑하지만 서로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를 탈피하여 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번 전시를 구성하는 두 작업〈K-BOB STAR〉에는 손영이가 직접 발화한 목소리와 몸짓이, 〈SEMI-SU〉에는 그의 정성스러운 손길이 깃들어 있다. 또한 손영이라는 인물을 전면에 드러내고, 그의 삶을 함께 노래하는 일은 작가의 경험과 생각이 그 안에 스며들게 한다. 김한솔은 이렇게 가족 구성원의 참여로 그를 ‘알아가는’ 작업을 통해, 자신이 내면화해 온 정체성과 그로 인한 복잡한 감정의 기원을 찾아 나선다.
손영이의 발화를 통해 드러난, 그의 삶을 중요하게 관통하는 단어는 ‘밥’과 ‘김치’이다. 이 단어들은 ‘밥 먹었니?’라는 한국인 특유의 인사에서 드러나는 따스함과, 한평생 가정에서 밥을 하는 여성으로 존재해야 했던 삶의 무게를 동시에 느끼게 한다. 작가는 “김치가 할머니의 삶을 압축하는 느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했는데, 그래서인지 ‘Big Hand’라는 랩 네임으로 발매한 앨범 〈K-BOB STAR〉(2024)의 타이틀곡도 〈김치 KIMCHI〉다. 손영이에게 김치란 “꼭 반드시 필히”1 준비되어야만 하는 것, 그의 ‘큰 손’이 가진 노하우의 집약체이자 소중한 가족에게 베풀 수 있는 것이며, 김장은 그의 일 년 중 가장 큰 행사로 자리한다. 여기서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할 지점은 이것이 스스로 선택한 길이라기보다는 그의 인생에 그저 주어진 무엇이라는 점이다. 사실 김한솔도, 손영이도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김치를 선호하지 않는다. 손영이는 “나는 김치를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다. 그냥 그렇다”고 하면서도 “집에 김치가 없으면 반찬이 없는 것 같다”고 한다.2 한편, 독일에 살면서 김치를 따로 사 본 적이 없다는 김한솔에게 김치는 더 이상 필수품이 아니다. 90 년대생에게 김장은 간접적으로만 경험했던 무엇일 수 있기에, 언뜻 나의 삶과는 단절된 과거로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뮤직비디오에 퍼포머로 등장한 김한솔은 김장에 참여하는 여성 가족 구성원의 행위를 상징적으로 ‘수행’한다.) 그러나 이는 여전히 가까운 곳에서 나의 시간과 함께 흐르고 있는 누군가의 삶이며, 지나갔다고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 부메랑처럼 돌아오기도 하는 내면화된 기억의 편린 같은 것이다. 결국 〈K-BOB STAR〉는 개인의 서사인 동시에 한국 여성의 집단적 역사이기도 한, “세대를 거쳐 축적된 여성의 노동과 감정”3을 다룬다.
한편, 〈SEMI-SU〉(2025)는 손영이의 일상적인 노동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하이패션 브랜드이다. 손영이는 집에서 자주 수세미를 떠서 가족 중 여성들에게 나누어주었는데, 김한솔은 결국 더러운 그릇을 닦게 될 수세미 실이 지나치게 화려하다는 점을 이상하게 여겼다. 혹시 수세미 실이 지나치게 반짝이는 이유가 가사 노동의 주체는 어차피 여성이라는 상정과 함께 여성의 기호를 반영한 ‘불편한 배려’는 아닌가? 이렇게 당연히 여겨졌던 일상이 의심의 대상으로 전환되었고, 이것이 은유의 방법론을 갖추면 곧 작업이 된다. 작가는 수세미 실로 아름답지만 입은 사람을 힘들게 하는 옷들을 만드는 방법을 떠올렸다. 실용성과는 무관하며 가학적이기까지 한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그가 참고한 것은 오뜨 꾸뛰르(haute couture, 예술성에 중점을 두는 고급 맞춤 의복)의 문법이다. 여기서 손영이는 컬렉션을 구성하는 7 벌의 옷을 직접 제작하며 숙련된 장인의 포지션을 취한다. 또한 김한솔은 디자이너이자 모델이자 퍼포머의 역할을 수행하며, 가사 노동의 상징물과 하이패션의 문법을 결합하는 방식으로 일종의 블랙 유머를 던진다. 수세미는 〈SEMI-SU〉 컬렉션 웹사이트에서 구매할 수 있는 고급 상품의 구색을 갖추는 한편, 영상 작품 〈김아무개씨 이야기〉(2025)에서는 퍼포머를 ‘남용하는’ 예술 행위의 매개체로 등장한다. 여기서는 김아무개씨의 선택과 관련 없이 수세미가 그에게 입혀지며, 이는 열렸했던 움직임을 축소하다 못해 불가능하게 만들고 결국 그의 존재를 집어삼킨다. 그렇게 수세미는 가사 노동을 하는 ‘아무개씨’로 존재해온 숱한 여성들의 삶을 상징하는 동시에 이를 드러내어 고발하는 매개물이 된다.
여기까지 읽었을 때 아마 당신은 전시에서 여러 방면의 메시지, 즉 손영이와 김한솔의 서로 다른 관점이 교차한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큰-손 컬렉션》은 결국 기록하는 김한솔의 생각과 기록되는 손영이의 생각 사이 어딘가에서 작동한다고 볼 수 있다. 김한솔에게 중요한 것이 비주류의 삶과 여성 정체성의 문제였다면, 손영이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사실 손녀를 사랑하는 마음이었다. 손녀를 돕고자 하는 마음이 그를 즐겁게 작업에 참여하도록, 나아가 적극적으로 다음에 할 일을 묻도록 만들었다. 작가는 ‘도대체 이 무한한 사랑이 무엇인지, 이 사랑을 왜 받는지’ 궁금해 할머니에 관한 작업을 시작했으며, 작업을 진행하면서도 계속 그 사랑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 마음이 관람자에게도 전달된다면 이 작업은 비로소 사랑에 관한 이야기로 읽힐 수 있다.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은 이 사랑 이야기는 두 사람이 말과 행위로 이루어낸 협력, 주고받은 대화가 그 자체로 ‘사회적 사유’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한다. 그리고 이 대화가 전달하는 다층적인 메시지는 한 세대의 기억을 다른 세대의 매체로 재현하는 방법, 작가가 블랙 유머를 제기하는 방식 등이 정교화됨에 따라 앞으로 더 세공되어 갈 것이다.
1 Big Hand, 〈KIMCHI〉(2024) 가사 중 일부.
2 손영이의 손글씨 노트(2024) 참고.
3 김한솔 작업 노트(2025) 발췌.
참여작가: 김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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