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장의 이미지가 순서에 따라 영사되고 있다. 언제부터 필름이 돌아가고 있었는지, 앞으로 얼마나 많은 필름이 남아있는지, 지금 막 전시장에 들어선 사람은 알 길이 없다. 주어진 선택지는 하나, 원형으로 돌고 도는 환등기의 타임라인에 승차해 날렵한 사냥꾼처럼 이미지를 쫓는 것이다. 차례차례 지나되는 장면들은 총 80장의 드로잉으로 구성된 다섯 개의 이야기다. 등장하는 인물의 생김새/배경이 조금씩 다른 각 장면들은 때로는 자연스레, 때로는 거칠게 접붙어 이어진다. 작가가 세계를 대하는 방식은 어쩌면 우리의 인내를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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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허앵은 평소 생활에서 불가피하게 마주치는 것들-사람 혹은 사건들을 재료로 이야기를 짓는다. 각각의 이야기는 적게는 8장에서 많게는 27장까지로 구성되었다. (만화처럼 컷이 이어지는 방식으로) 나름의 서사를 전개하는 다섯 개의 이야기는 각각 독립적인 단편이지만, 작가가 즐겨쓰는 도상이나 상징들이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 반짝이는 인형, 눈처럼 생긴 렌즈, 입과 귀가 없는 사람들, 식칼과 담배, 작은 식물 등. 이러한 도상들은 <선량한 사람들의 세계>(2013)로 그기원을 거슬러오른다. 이 작업은 대형 캔버스에 직관적인 붓질로 화면을 채우던 작가가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작업의 형식을 전환하게 된 시발점이기도 하다.
<선량한 사람들의 세계>는 렌즈를 낀 수많은 사람들이 같은 일을 반복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중 불현듯 입이 생겨버린 한 사람은, 안구를 끼는 대신 망태기를 쓰고 다니며 유별난 행동을 일삼는다. (그는 결국 모종의 사람들에게 붙잡히고, 개조당함으로써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쉽게 조지 오웰나 올더스 헉슬리를 떠올리게 하는 이런 전개는 너무 ‘안온’하고 ‘자유’롭게 통제되는 사회, 그 안의 권태로운 개인, 이어지는 몇 가지 시도와 실패로 귀결되는 디스토피아 소설의 서사다.
한편, 배경과 인물을 설정하고 주인공에게 적당한 위기와 기회를 제공하는 김허앵의 전개는 <심즈> 같은 시뮬레이션 게임과도 닮아있다. 모니터 화면 속에 견고한 가상의 삶을 구현하는 <심즈>는 유저에게 두 개의 입장을 동시에 제공한다. 첫째는 신적인 관찰자의 입장에서 심SIM들을 조종하는 것, 둘째는 1인칭의 욕망을 심SIM에게 이입하는 것이다. (<심즈>, <문명> 같은 시뮬레이션 게임의 광적인 마니아인) 김허앵은 스스로 분명한 자각 속에 이 두 개의 입장을 모호하게 뒤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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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은 도처에 있다. 희망이 손에 넣자마자 빛이 바래는 새장 속의 파랑새라면, 불행은 “절망이 앉아있는 벤치”(자크 프레베르) 위를 어슬렁거리는 비둘기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정말로 비극적인 것은 입버릇처럼 모두가 ‘납작’하다고 굳게 믿는 세계에서, 관찰자의 세계와 수행자의 세계가 드러내는 아찔한 깊이의 차이다. - 세종대로를 걸으며 앞에 ‘글로벌’이 붙는 부스축제를 감상하고, 일민미술관의 재기발랄한 전시를 지나쳐, ‘예수천국 불신지옥’의 소란과 난민구호를 위한 서명운동 틈에서, 죽은 눈의 항의자들과 젊고 건강한 경찰들의 형광색 반짝임을 마주할 때의 어지럼증 같은 것들. 무력감은 그런 곳에서 온다.
김허앵의 불행은 (언급한 소설과 게임의 교차점에서, 실은 그 두 가지 모두가 선취하지 못한) 현재적인 감각으로 쪼개지고 나열되어 있다. 다섯 개의 서사와 즉석 사진 같은 페인팅은 작가가 오랫동안 골똘히 상상해왔던 불행의 퍼즐 조각들이다. 퍼즐이 맞춰졌을 때 드러날, 당신의 ‘배드 엔딩’은 무엇인가?
글 이미정, 윤율리
횡단보도를 건널 때 문득 덤프트럭에 잔인하게 치이는 상상을 한다. 그대로 죽지 못하고 불구가 되어 의식만 또렷이 남은 나의 모습을 본다. 그러다 신호가 바뀌면 아무 일도 없이, 유유히 길을 건넌다. 나는 습관적으로 나의 불행한 미래를 자주 상상하곤 한다. 마치 온 세계가 나를 향해 불행해지라고 기도라도 하는 것처럼 늘 어두운 미래만을 떠올린다.
그래서 나는 실제로 불행한 일이 벌어지지 않게 꽤 노력하는 편이다. 대단한 노력이라기보단, (무단횡단을 전혀 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 치이더라도 보상금을 받을 수 있게 흰색 선을 따라 걷는, 그런 작고 사소한 행위들을 신경 쓰며 살아간다. 이러한 노력에는 “이렇게 하면 불행을 피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과,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사건이 터진다면 역시 이 세계는 나를 불행하게 하도록 설계되어 있을 것이다”라는 양가적인 생각이 전제되어 있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개 권태로운 일상에 질려 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거나,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생활로 나아가지만 어느덧 원점으로 다시 돌아온다. 이야기를 구성하는 상황이나 사건, 상징들은 내가 살아가는 이 세계에 대한 나의 물음이면서 스스로가 내린 답이기도 하다. (…) 결국 모든 것이 잘 되지 않을 거야, 라고 생각하면서도, 이야기 속 주인공은 망태를 만들고 칼을 간다. 과연 자신이 상상한 결말이 다가올 것인지 기대하면서. 물론 잘 되든 그렇지 않든, 그 둘 모두가 예측된 미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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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노트 김허앵
편집 윤율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