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층갤러리
2024년 3월 28일 ~ 2024년 4월 25일
가난하여 더 정신적인
정현아
이층갤러리+디아건축
작가에게 작업실은 어떤 공간인가. 세상과 한 발 떨어져 오롯이 자신으로 회귀하는 은둔의 공간이고, 자신의 고유한 세계를 찾는 사유의 공간이다.
노경조는 오래전 번잡한 일상의 도시를 벗어나 양평에 터를 마련하고, 숲을 다듬어 작업 공간을 만들었다. 수집한 부도와 석탑, 손수 심은 자작나무와 꽃들로 주변을 가꾸었고, 세월이 지나 그것들은 자연과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그 자연은 다시 그의 화폭과 도자기에 색과 질감으로 스며들었다.
우리의 산과 꽃, 주변을 담고 있기에 그러한가. 노경조의 작업은 단연 한국적이다. 하지만 전통적이라고 하기엔 현대적이고 세련되다. 오히려 초기작 <북한산> <집으로 가는 길>에서는 서늘한 색채와 겹쳐진 질감에서 북유럽의 분위기가 연상된다. 단순한 화면 구성에 나이프로 물감을 두껍게 입혀 만든 도자기 실금 같은 표면 텍스쳐와 미묘한 색조의 차이가 은은하고 담백하다.
흙을 빚고 다듬어 가마에서 굽기까지, 긴 기다림의 시간이 있는 도자 작업과 비교하여, 물감이 채 마르기 전 붓 터치로 빠르게 그려지는 회화는 거침이 없다. 도자기가 은근하고 정교하다면, 일필휘지로 그려지는 회화는 시원하고 호방하다.
노경조는 자작나무 숲의 계절 변화를 화면에 담으며, 실내와 외부를 구분없이 하나에 놓기도 하고, 낮과 밤의 시간을 모두 보여주기도 한다. 그의 화면은 얽매이기보다 담대히 열려있다. 그가 바라본 장면은 ‘멀티패널’로, 마치 병풍이나 서책처럼, 세 개에서 많게는 열 개의 패널로 펼쳐진다.
노경조는 서양의 재료로 동양화 같이 표현하는 것을 자신 그림의 목표로 삼았다고 말한다. 그가 캔버스를 바닥에 놓고 작업하는 이유다. 수묵화의 화선지가 먹을 머금듯, 물감이 바닥의 캔버스에 배어드는 것을 의도하였다. 옅게 쓴 물감은 수채처럼 묽어 때 묻고 퇴색할지언정, 편안하고 자연스럽다.
그는 때로는 두꺼운 화면 질감, 마띠에르를 사용하기도 한다. <양평작업실 자작나무 숲-짙은 겨울>의 검고 힘찬 나무 줄기나 <양평작업실 자작나무 숲-진달래가 피어있는 봄>의 진달래 꽃잎 하나하나의 터치가 그러하다. 배경을 이루는 맑은 여백과 대조적으로, 질감이 풍부하게 살아 있는 터치로 화면에 강한 생명력을 부여한다.
징크-화이트 기조의 색으로 담백하게 화면을 구성하고 힘차고 올곧은 기상을 담아낸 노경조의 그림은 희고 옅어 가난하나, 정신적 가치를 전달한다.
겨울 나목의 줄기 사이로 산수유와 진달래의 고운 빛깔이 스며들었다. 어느덧 우리 곁에 찾아온 계절처럼, 긴 터널의 겨울 숲을 지나, 새로운 생명의 기운이 명랑하게 피어난다.
봄, 마침내 봄 이다.
참여작가: 노경조
출처: 이층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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