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산아가든
2025년 4월 25일 ~ 2025년 5월 17일
일상 속에서 창작을 지속하는 것은 여러 개의 공을 번갈아 던지고 받는 저글링(juggling)을 떠올리게 한다. 허공에 던진 공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부지런히 눈과 손을 놀리며, 붙잡았던 것을 재빨리 던지는 행위를 반복한다. 어느 순간, 무엇을 먼저 던지기 시작했는지는 더 이상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눈앞에 스쳐지나가는 것들을 리듬감 있게 던지고 받는 것만이 목표가 된다. 우리는 일상에서 감각하는 것을 작업으로 만들고, 작업을 위해 필요한 재화를 모으며, 이 일련의 노력은 다시 일상의 일부가 된다. 예술과 노동, 그리고 일상은 중첩되고 섞이며 느슨한 순환을 반복한다.
여기, 한때 음식점으로 기능했던 산아가든이 있다.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반들반들해진 마루, 손때 묻은 스위치, 페인트가 벗겨진 미닫이문의 손잡이 등은 이 공간에서 분주하게 움직였던 누군가의 노동 시간과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끊임없이 만들고, 늘어놓고, 치우는 것을 반복했을 모습은 일곱 작가가 마주해온 노동과 닮아있다. 전시 《노동, 새로고침》은 오랜 세월동안 쌓인 공간의 흔적을 받침대 삼아, 개인의 삶과 맞닿아있는 ‘노동’의 모습을 조명하고 그 가능성을 확장한다. 이는 무용하다고 여겨지는 행위가 계속되는 세계, 그림자노동의 세계, 멋진 결과를 위해 말없이 희생되는 존재들을 위한 세계이다.
고보연은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산아가든에서 분주하게 젊은 날을 보내고 휴식을 취하는 촌로를 떠올린다. 품과 시간을 들여 살림을 해왔던 시간이 휘발되고 지친 몸만 남은 모습이다. ‘남은 것’이 없기에 허무한 듯하지만, 정성을 들여 의미를 찾았던 그 순간을 기억하며 이 공간을 오갔을 물건들을 모아, 쓸모없지만 유의미한 탑을 쌓는다.
김영란은 제 역할을 다한 살림살이를 한지로 본뜨고 조합하여 이를 사용했던 이들에 대한 단상을 무대처럼 구현한다. 작가는 부모세대의 끊임없는 노동과 삶,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모습과 중첩되는 지점을 마주하며, 각자의 시간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온 이들을 위한 아름답고 안락한 ‘자리’를 만들어낸다.
정하영은 산아가든의 주방에서 이루어졌을 여성의 노동을 매개로 어린 시절 목격했던 ‘식재료’의 형상을 떠올린다. 책임과 역할이라는 관습 아래 여러 갈래로 나눠져야 했던 여성의 몸과 마음은, 마치 진열된 식재료같이 무심하게 노동의 현장에 놓인다.
김영봉은 한국 사회의 모순된 개발 논리 속에서 ‘책임 있는 예술’에 대해 고민한다. 주방 뒤편 가건물에 설치된 <고인목>은 분주한 노동 이면에서 묵묵히 희생되었던 닭과 오리의 넋을 기리는 헌정물이다. 작은 기념비들은 인간의 요구에 의해 삶과 죽음이 교차했던 공간에 놓여, 말없이 동물들의 영혼을 달랜다.
노진아는 인간이 추구하는 편리함의 이면을 드러내기 위해, 절대적인 시간과 노력을 요구하는 작업 방식을 택한다. 부탁과 발품으로 모은 플라스틱 병뚜껑들은 반복적인 열과 압력으로 가공되어, 납작하거나 뾰족한 모양으로 변형된다. 공간 곳곳에 자생하듯 놓인 <모으기>와 외부공간의 <구기기>는 작가의, 그리고 이 공간에서의 행해졌을 노동의 ‘부피’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박마리아는 수많은 단기 노동의 산물일 빠른 배송, 그리고 이 서비스를 소비하며 간접적인 접촉에 익숙해져가는 우리를 목격한다. 어제 주문한 물건이 오늘 아침 도착하는 세계에서, 물질은 감정보다 빨리 상대에게 도달한다. 풍선처럼 떠오른 택배상자와 손에 닿지 않는 선물은 점점 가벼워지는 관계를 상징한다.
여은희는 일을 훌륭히 해내려는 욕망을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욕구로 보는 리처드 세넷의 어조를 빌려, 창작과 노동을 해석한다. 식재료로 소비한 것들의 껍데기를 모아 그물을 엮듯 반복적으로 꿰매고 이어가는 작업 방식은 ‘일 자체를 잘 하기 위해 일에 매진’하는 장인의 행위를 떠올리게 한다.
혹자는 예술을 노동의 범주로 볼 수 있는지를 묻는다. 노동의 사전적 정의는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하여 육체적 노력이나 정신적 노력을 들이는 행위’이고, 많은 경우 ‘물자’는 임금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다만 무엇을 노동이라 정의할지 그 경계는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 고정된 근무시간이나 업무 범위 없이 수요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화하는, 파편화된 현대의 노동은 이제 그다지 낯선 모습이 아니다. 예술을 업으로 삼는 이들은 이 반투명하고 불안정한 경계를 적극적으로 넘나든다. 우리는 고용주이자 노동자, 선택하는 사람이자 선택받는 사람, 소비자이자 생산자다. 다시 한 번, 예술과 노동 그리고 일상은 중첩된 원을 그린다.
전시 제목인 ‘새로고침(refresh)’은 원래 물리적 재정비나 다시 채우는 행위를 뜻하지만, 컴퓨터 용어로 편입된 이후로는 웹페이지를 다시 불러오거나 최신 상태로 갱신하는 행위를 의미하게 되었다. ‘새로고침’을 선택하는 순간 우리는 눈앞의 화면을 넘어, 곧 나타날 변화와 갱신을 기대한다. 이 전시 역시 하나의 현재로서, 언젠가 마무리될 노동의 장면이다. 전시가 끝나면 작업들은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고, 공간은 다시 일상의 풍경으로 되돌아간다. 그러나 이곳에서 교차한 노동의 감각은 사라지지 않는다. 작가들은 또 다른 공간에서, 또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흐름을 이어간다. 그렇게 예술은, 언제나 새로 고쳐진다.
*2023년까지 식당으로 기능했던 산아가든은 새로운 용도가 결정될 때까지 임시적 전시공간으로 활용된다.
참여 작가: 고보연, 김영란, 김영봉, 노진아, 여은희, 정하영, 박마리아 작가
글: 문채원
기획: 김영란, 문채원
* 아트바바에 등록된 모든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
운영시간
월요일 휴관
화요일 12:30 - 19:30
수요일 12:30 - 19:30
목요일 12:30 - 19:30
금요일 12:30 - 19:30
토요일 12:30 - 19:30
일요일 12:30 - 19:30
휴관: 월요일
모든 프로그램은 주최측의 사정으로 변경될 수 있으니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