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수공간
2024년 3월 1일 ~ 2024년 3월 14일
너무나 익숙해서 감각하고 있음을 잊어버릴 때가 있다. 뜨겁고 긴장되던 처음 맞잡은 손의 감각이 익숙하고 따뜻한 온기로 변화하는 순간들, 따뜻한 온기로 빚어낸 것들이 상쾌하고 시원한 살랑 바람처럼 불어와 선사하는 시원함까지. 따뜻하고 시원한 것은 뜨겁고 차가운 것만큼 자극적이진 않겠으나 일상에서 언제든 느끼고 있으면서도 익숙해져 잊기 쉬운 감각이다.
작업의 시간을 일상처럼 보내는 작가에게 뜨겁고 차가운 순간과 따뜻하고 시원한 순간을 나누자면 작품을 공개하고 프로젝트를 발표하는 전시의 시간과 그 순간을 위해서 부단하고 지난하게 창작을 이어가는 작업실의 일상이 있겠다.
가능성이란 미숙할지라도 앞으로가 상상되는 아주 매력적인 상태이다. 완숙한 상태에서 뿜어져 나오는 깊이가 있다면,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가능성의 상태는 보는 이로 하여금 산뜻하며 설레는 순간을, 그리고 기대와 상상을 불러 일으킨다. 여기 8명의 작가가 준비한 전시는 따뜻하고 시원한 일상이 켜켜이 쌓여 가능성을 보여주는 자리로서 준비하게 되었다. 이들은 작업이란 무엇인지 고민하고 자신의 언어를 찾고자 일상에서 발견한 각자의 고유한 시선을 시각적인 결과물로 실험한다. 따뜻했거나 시원했던 순간들을 계속해서 감지하고 찾아내며 기록하고 응축한다. 따뜻하게 바라보고 담아 관객에게 전하는 이들의 선물은 시원한 바람과 같은 환기의 시선과 감각을 선사한다.
강서우는 ‘나’를 ‘나’라고 말할 수 있는 범위를 고찰한다. 그 범위는 세상을 감각하는 신체부터 자신을 둘러싼 추상적인 관계와 상황까지 확장되며 이를 음각 부조의 형식으로 표현한다. 골판지나 나무 합판을 켜켜이 쌓아 올려 신체의 형상이 나타나는 음각의 공간을 만들어내는데, 이는 신체의 형태가 있지만 사실은 없는 상태를 보여준다. 눈앞에 보이는 것만이 존재가 아니라 시각으로 인지되지 않더라도 존재는 지속됨을 조각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최승연은 유동적이고 입체적인 인간의 모습을 탐구한다. 그 여정의 시작으로 자신의 의식을 벗어난 무의식의 순간을 시각화한다. 꿈속에서 보았던 단상을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하는데, 영상에서 등장하는 존재는 오토마티즘 드로잉과 조각의 형태로 다시 제시된다. 인지하지 못하거나 숨기고 싶어 하는 자신을 직면하는 것으로 시작해 다양한 인간의 모습들을 긍정해 나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안세진은 도심 속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느껴지던 풍경에서 낯설거나 이질적인 부분을 관찰한다. 그중에서도 조경된 자연 안에 홀로 300년 이상의 시간을 견뎌낸 보호수에서 느낀 부자연스러움과 동시에 도시 계획을 통해 조경된 인공적인 자연의 형태에서 드디어 느낀 이질감을 회상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느낀 자연과 인공의 유동하는 경계를 회화, 사진, 조각의 형태로 표현한다.
나하윤은 유한한 삶과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놓칠 수 있는 소중한 순간을 포착한다. 그 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우연적인 존재의 순간을 형상화하는 과정을 통해 주변 세계를 대면하고 끊임없이 변화와 생성을 거치는 시간의 흐름을 붙잡는다. 조각, 회화, 설치 등 다매체를 활용하며 추상적인 현상의 단편을 펼쳐내는 그의 작품은 소박하지만 따뜻하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이서원은 우리 주변에 늘 함께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고 숨어있는 틈새의 공간이나 습기, 어둠, 습관이란 행위 등의 추상적인 상태를 조각한다. 피부에 느껴지지만 만질 수 없는 습기, 빛을 통해 인지되지만 시각 외에는 감각할 수 없는 어둠,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는 행위를 물질로써 느낄 수 있도록 실재하는 덩어리의 형태로 표현한다. 주로 도자기, 흙, 석고를 사용하며 캐스팅 기법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시각적, 촉각적으로 느끼는 경험을 제시한다.
도정윤은 버려져 방치된 사물을 가져와 변형과 재조합의 과정을 거친다. 사물이 오브제로 변환되어 작품으로 탄생하는 가치의 전환을 설치, 콜라주, 회화의 방식으로 표현한다. 작가는 실제로 존재하진 않지만 설치의 방식을 통해 해석할 수 있는 시각적 이미지 제시한다. 관객이 그 이미지를 도출하도록 유도하는 과정을 통해 현시대를 아우르는 가치에 대해 질문한다.
주형지는 자신을 미술을 통해 품을 나누는 행위자이자 미술가로 상정한다. 개인적이고 친밀한 관계에서 느꼈던 긍정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가까운 지인과 낯선 타인 모두를 포함해 미술을 통한 관계 맺기를 시도한다. 주로 참여미술과 설치의 형태로 창작하며 프로젝트 진행 과정을 기록해 아카이빙의 형식으로 제시한다. 예술가의 사회적인 역할을 주목하고 이를 지속해서 실험해 오고 있다.
이사빈은 일상 속 내밀한 개인의 경험을 간단하고 유쾌한 참여 형태 작품으로 표현한다. 주로 조각과 설치의 형식을 활용하며 작가의 경험과 참여자의 경험은 작품을 매개로 연결되어 새로운 경험으로 변화되고 확장된다.
너무나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 속에서 일상을 천천히 살펴보고 감각하며 소화해 내는 과정은 사치처럼 느껴질지 모르겠다. 하지만 낯섦에서 익숙함으로, 그리고 다시 낯설게 보는 과정은 무한하면서 유한한 우리의 시간을 다채롭게 음미할 수 있는 기회이자 행운이라 생각한다. 이들이 펼쳐내는 감각을 통해 따뜻하고 시원한 봄의 시작을 함께하길 바란다.
김진선
따뜻한 손, 시원한 바람, 우리가 일상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아주 흔한 촉각인 온기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존재함을 알고 있는 공기의 흐름이다. 우리는 가볍고 편안하게 가족이나 친구, 연인의 손을 맞잡고 그들의 따스함을 느낄 수 있고, 한걸음 한걸음 이동을 하는 순간에는 머리가 바람에 흩날리거나 살랑거리는 볼에 닿는 바람을 느낄 수 있다. 이렇듯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는 사람 한명이 독립적으로 살고있는 공간이 아닌 사람과 사람의 관계, 그리고 그들이 이루고 있는 공간과 무수히 많은 물질이 존재하며 이루어져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나’와 나의 주변, 그리고 '나'와 가까운 일상 속에서 익숙하지만 신경쓰거나 인지하지 않으면 잊기 쉬우며, 존재하는지에 대한 시간과 장면, 공간과 감각에 대한 생각을 하며 그를 각자의 방식으로 작업을 보여주고 있는 작가들을 마주할 수 있다.
전시장에서 만나 볼 수 있는 8인의 작가들은 자신과 자신의 주변을 시작으로 각자만의 방향성을 가지고 확장해나가는 작업들을 내보이고 있다.
'나'라는 존재를 통해 세상을 인지하며 경험한다고 말하는 강서우는 '나'의 존재의 명명을 위해 주변 사물과 공간들과의 관계를 통해 단독적인 개체가 아닌 자신을 인지하고 상황을 인식하고 있다. 작가의 조각에서는 그의 몸을 통하여 감각하고 경험하며 신체의 노동력과 감각을 요구하는 행위가 이뤄진 것을 볼 수 있는데 골판지와 종이를 손으로 자르고 쌓아올린 작업들은 음각 표현으로 비어있음에도 불구하고 있음으로 인식되도록 존재감을 보여준다. 재료 본연의 색감으로 마무리 된 표현마저도 그의 작업의 형상 자체에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를 가중하는 듯 하다.
자신이 살고있는 세계의 모든 것은 시간의 흐름에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나하윤은 시간이 흐르는 것은 무덤덤하고 무심할 수도 있으나 한편으로는 모두에게 적용되기 때문에 각자의 삶의 목적이나 이유를 찾기보다는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움직이는 생명체와 움직이지 못하는 사물, 그 밖에 모든 요소들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계속해서 변한다. 그는 변화하는 그 순간들을 기록해 존재하지만 가시화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하게 하며 이러한 삶에 있어서의 장면과 순간들을 서사적이고 자신만의 형상화된 존재의 이미지들로 회화와 조각을 통해 나타내고 있다.
자신의 주변에서 마주하는 ‘대비되는 관계’들에 대해 유사점을 찾으며 작업하는 도정윤은 모든 사물들은 독립적인 것이 아닌 주고받는 것, 즉 관계를 통해 새로운 의미가 생겨난다고 본다. 자연적인 것과 인공적인 것, 그 사이의 공백은 이것들의 의미와 존재의 의미를 강화시키기도 한다. 특히 인공적인 오브제들로 그 반대선상에 있는 자연을 표현하는 것을 포착할 수 있다. 그가 사용하는 다양한 오브제들 간의 해체 및 재조립의 과정과 그로 인해 생긴 관계들로 인해 그의 작업에서 여백과 구조를 통한 시각적 조형미를 엿볼 수 있으며 사물과 공간, 건축 그 어딘가에 위치하게 됨을 발견 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주변에서 늘 볼 수 있는 ‘다듬어진’ 자연에 주목하여 인공 자연(者然)을 조경하는 안세진은 일상 속에서 자연은 늘 존재하고 다양한 종류의 나무와 꽃, 풀들이 있으나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특별하게 인식하며 지내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허나 ‘자연스러운 자연‘이라는 모순적인 말처럼 그에게는 인공적으로 조경되어있는 자연이 갑작스레 어색함을 주었을 것이다. 따라서 그는 사람의 힘이 더해지지 않고 스스로 존재하는 자연이 아닌 규율과 규칙으로 통제되며 관리되고 있는 ’인공 자연’을 가지고 그에 대한 이질감과 경계의 모호함을 회화와 조각으로 표현하고 있다.
자신의 일상 속에서 경험한 본인만의 고유한 사건이나 시간들을 관람자가 참여하여 느끼거나 생각해 볼 수 있는 형태의 작품으로 표현하고, 그를 퍼포먼스의 형식이나 참여를 위한 조각과 설치의 방법들을 이용하고 있는 이사빈은 아슬아슬하고 발랄하기까지 해 보이는 작품들을 진행하고있다. 그만의 유쾌한 해석적 능력으로 작업들이 표현되기에 텍스트로 쓰여있는 설명들을 이해하고, 충분히 즐기는 시간과 공간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우리의 일상과 주변에 함께하고 존재하지만 인식하지 못하는 공간, 상태 등을 지각하게끔 작업을 하는 이서원은 공간 인식뿐만 아니라 자신의 무의식적인 습관을 기록하기도 하는데 그러한 행동들 또한 행위의 자국들을 가시화하는 과정을 거친다. 지각하지 못했던 쓰이지 않는 공간과 상태도 가시화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양의 공간이 아닌 음의 공간을 인식하여 그 공간과 상태를 흙이나 석고, 도자 등 견고한 재료를 사용해 본을 떠낸다. 그는 인식하지 않았던 것들을 일부러 인식하는 행위를 통해 일상과 주변 삶 속 신경 쓰지 않았던 사소한 부분들에 대해 재고하게 만드는 것이다.
미술을 통해 주변 사람들과 감정적이고 깊은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는 작가인 주형지는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가족, 친구, 그리고 낯선 사람들과의 소중한 순간들을 예술을 통해 나누고자 하며 주로 사람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상호작용을 위해 참여미술과 설치 미술의 형식을 활용한다. 이를 통해 작품의 진행 과정을 기록하고, 참여자들의 의견과 감정을 아카이빙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한, 예술가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인식하며, 예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한다. 이를 통해 예술이 사회적 변화와 발전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를 해 나가며 지속적인 작업을 해오고 있다.
자신의 꿈, 스스로의 무의식을 통해 우리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탐구하며, 그 다양성과 유동성을 표현하는 최승연은 자아의 의식을 벗어나 무의식적인 내면의 순간을 시각적으로 담아내는 것으로부터 작업을 시작한다. 본인의 꿈에서 느꼈던 감정과 상상을 수면 중의 경험인 꿈을 기록하고 분석한 후, 초현실주의의 오토마티즘 기법을 사용하여 추상적 애니메이션으로 구현되며, 작품 속 존재인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은 입체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내면의 복잡성과 다양성을 시각화했다. 영상 속의 캐릭터 외에도 꿈과 무의식 속의 이미지들은 자동기술적 드로잉과 추상적인 도자 조각의 형태로 다시 나타난다. 자신으로부터 시작했지만 더 나아가 인간 내면의 무의식을 탐구하고 시각화하는 작업을 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1년 365일 24시간 1분 1초도 쉬지 않고 숨을 쉬는 것을 평소에는 인지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 행위를 깨닫게 되면 그 순간이 선명하고 극명히 다가오고 그것이 소중하고 필수적인 것임을 알게 되듯이 이번 전시에서 8인 작가들의 작업을 통해 주변의 일상과 너무나도 익숙한 세상살이를 인지하는 것을 시작으로 우리에게 소중한 시간과 공간, 그리고 감각을 살피게 하는 기회를 가지게 할 것이다. 이번 전시를 앞으로 작업의 도약으로 삼아 더욱 확장되고 다양한 작업 세계를 보여줄 것이 기대되는 바이다.
김보경
오프닝 2024.03.01.(금) 16:30 ~ 19:00
야간개장 2024.03.08.(금) 11:00 ~ 21:00
참여작가: 강서우, 나하윤, 도정윤, 안세진, 이사빈, 이서원, 주형지, 최승연
기획/글: 김보경, 김진선
포스터디자인: 최승연
사진: studio 18
후원: ESAarts
출처: 온수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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