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공간
2020년 10월 13일 ~ 2020년 10월 31일
존재하는 모든 것은 사실 완전히 소멸되지 않는다. 생명을 다 하더라도 이전의 형태와 같지 않을 뿐, 그것을 이루는 가장 작은 단위는 공기 중에 떠다니다가 어딘가에서 또 다른 형태로 존재한다. <떠다니는 것은 결국 발밑의 무언가가 되어>는 이러한 물리학적 접근에서 비롯한다.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모양은 ‘있음’에 있어서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물리학의 언어. 이것이 요란하지 않게 힘이 된다. 여기에 인간적 사유가 만나면서 더 이상 실존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어떤 대상은 그것 자체로 현존한다. 어떤 대상의 생을 추적하고, 그 위에 새로운 것을 쌓으면서 우리는 그 나름대로의 농밀한 존재를 만나는 것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김문기, 김윤하, 오윤 작가는 시간이 지나 사라졌고 사라질 것이라 여겼던 존재를 다시 보고 다룬다. 세 작가에 의해 정처는 알 수 없지만 어떤 존재의 파편은 새로운 변주곡을 만들어 ‘있음’을 증명한다.
‘있음’을 의미하는 존재가 반드시 커다란 질량을 갖고 무거울 필요는 없다. 김문기가 생각하는 존재도 군더더기 없고 가볍다. 종이와 그 종이를 겨우 세울 수 있는 투명 접착테이프로 만드는 그의 조각을 존재에 대입시키면 알 수 있다. 그는 하루에도 십수 번 떠오르는 기억을 조각으로 남겨왔다. 조각 표면에는 그 조각과 관련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는 그가 떠낸 몇 장면이 붙기도 하는데, 그것은 감상자 각각의 기억들을 소환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어떤 존재의 파편들이 조각에 옮겨지면서, 속이 텅 빈 그 조각에 또 다른 의미를 채우며 새로운 조각으로 탄생시키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스파게티 웨스턴Spaghetti Western’이라는 영화 장르의 특성과 분위기를 차용한다. 스토리의 빠른 전개는 작가의 작업 방식과 퍽 닮았고, 모뉴먼트 밸리Monument Valley나 텐갤런 해트ten-gallon hat, 박차拍車, 담배 등의 오브제 역시 크게 설명적이지 않으면서 그 핵심을 제시한다. <Chapter>(2020)시리즈처럼 어떤 존재를 설명하는 데는 그 안에서 각자의 방향과 속도의 전개 정도면 충분하고, 혹시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다. 그도 그럴 것이 누구에게나 스스로 바짝 서 있을 수 있도록 하는 자신만의 투명 접착테이프 정도는 있을 테니 말이다.
지금, 여기를 바라보면 물질적이지 않은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많다. 김윤하는 비물질처럼 느껴지는 수 겹의 일상을 수집, 분석하는 행위를 반복하며 구조화한다. 이것은 보통 미시적인 감각의 인식이고, 상호작용하며 변화한다. 그는 그 맥락 안에서 존재를 조금은 다르게 마주한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인식 이전에 이미 있던 존재에 대해 두 가지 물음을 갖고 예술적 변주로 드러낸다. 하나는 잊었던 장면을 다시 떠올리는 데 당시의 확실한 기억이 꼭 필요한가이고, 다른 하나는 본다는 것이 반드시 눈을 먼저 통해야하는가이다. 그는 감상자에게 감각의 전이를 제시하며 답을 내린다.
<Variation 080318(Little Star)>(2020)은 두 화면에서 반짝이는 별의 장면으로, 대화 소리와 함께 정방향과 역방향으로 동시에 재생하게 두었다. 감상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자막으로 나타나는 이 대화를 어느 순간 듣기보다 보는 것으로 인식한다. 그 과정에서 감상자에게 인식의 불확실한 상태를 불러와 각각의 경험으로 다시 구성하도록 한다. <Eyes in the sky with diamonds>(2020)는 감상자가 내는 소리를 즉각적으로 화면에서 보여준다. 소리에 따라 화면에 떠 있는 물체가 퍼지고 모이기를 반복하며, 보이지 않는 형태가 보이는 형태로 구현되는 것이다. 이렇게 어떤 존재가 이미 갖고 있는 영원성은 이 공간 너머로 확장한다. 그리고 동시에 그 존재는 작가의 방식으로 더 오래 기념된다.
자주 변화하는 주변 풍경을 만나왔던 오윤은 곧 사라질지도 모르는 장면을 기록한다. 그래서 그의 회화는 어떤 존재의 잔상이다. 하나의 잔상을 얇은 종이에 색면을 쌓아 완성하는 그의 수행으로, 대상이 설사 그 자리에서 사라지더라도 그에게는 여전히 ‘있는 것’이 된다. 그것은 사물, 동물 등 존재하는 모든 것을 아우른다. 그는 역할을 잠시 상실했거나 소진된 상태의 어떤 것을 화면에 표현하면서 대상을 향한 일종의 애도 작업을 한다. 이번 전시에서 <필멸자>(2020), <엠버>(2020)를 전시장 바닥에 두지 않고 감상자의 시선을 위로 두고 설치한 것도 그 일환이다.
이따금씩 전시장 창으로 들어오는 볕은 잔상의 자취를 섬세하게 알린다. <허수아비>(2020)의 붓이 지나간 흔적은 종이를 지나 그 다음 잔상 <구원을 위한 믿음의 증명>(2020)에 다시 얹힌다. 이렇게 서로 축적을 반복하고, 마지막에는 처음 비췄던 같은 온도로 감상자를 감싼다. 하나의 잔상은 작가만의 잔상으로 머물지 않고, 감상자에게 다른 사유를 시도하도록 건네는 것이다. 그 의미들은 그렇게 한 공간에서 포개진다. 그리고 다시 다른 어딘가에서 영속하여 무언가로 남아 있는다.
방법이 다를지라도 세 작가에 의해 흩어진 것은 다시 남아 있는 존재에게 옮겨져 뿌리내리고, 그 자리에서 또 다른 무언가가 되었다. 그래서, <떠다니는 것은 결국 발밑의 무언가가 되어>가 존재를 떠올리는 누군가에게 뭉근한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존재가 잔 모양으로 오롯하지 않다고 해서 ‘있다’는 사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므로. / 정다운
참여작가: 김문기, 김윤하, 오윤
기획: 정다운
주최: 임시공간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시각예술 창작산실 공간지원
포스터디자인: 고등어디자인
출처: 임시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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