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갤러리
2016년 6월 23일 ~ 2016년 7월 22일
1 / 2

욕망의 재배열 그리고 개인
1
유백색 도자기로 구운 약 500~600점의 우아한 드레스를 입은 여인들이 전시장 바닥에 놓여있다. 하나의 원본에서 복제된 또는 서로가 서로를 모방하는 동일한 형태의 여성들이다. 그녀들은 동화 속 해피앤딩의 주인공 신데렐라를 연상시키는 드레스를 입고 뭔가를 향해 뛰어가려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 여성들의 포즈는 실제 눈앞에 보이지는 않지만 무언가가 그녀들 앞에 구체적인 사실로서 존재한다는 것과 그것이 한 명의 예외 없이 그녀들 모두의 관심을 끌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보이는 존재와 보이지 않는 존재 사이의 어떤 힘의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 전시장 뒤편에는 복제되지 않은 원본성을 유지하는 목조각의 여성이 홀로 서있다. 인류의 초기 태모신을 상징하는 비너스일지 모른다. 거친 자연에서 태어난 원초적인 형상을 유지하는 여인이다. 수백 명의 복제되어 재배열된 여성들과 원시인류의 유일한 여성은 상호 대척점으로 존재한다.
문명화 이전의 욕망과 문명화단계를 거치면 변형되고 분화된 욕망이 한 개인(여성) 안에 공존한다. 하나의 개인으로부터 복제된 개인들 속에서 우리는 일종의 욕망들의 원형을 발견할 수 있다. 사회적 관계를 통해 드러나는 욕망이란 무정형의 무분별한 욕망의 세계에서 추출된 문명화된 욕망일 것이다. 사회적 동의를 획득한 욕망 말이다. 반면 사회적 용인을 쟁취하지 못한 욕망 나머지는 말 그대로 나머지로 남는다. 그것은 망각되어버린다. 사회인으로서 어른의 욕망이란 경쟁에서 살아남은 강한 욕망이며 여타 약한 욕망 또는 사회적 가치에 위배되는 광기의 욕망은 배제되고 망각된다. 그런 욕망은 망각되어야만 한다. 사회는 개인의 욕망을 분류하고 관리하고 배제하는 과정에 따라 진화하고 지속한다. 개인의 욕망은 분열되어버린다. 개인은 독자적인 존재에서 이탈해 사회적 관계 속에서 권리와 의무가 작동하는 세계의 일원이 된다.
사회의 욕망과 완전히 일치하는 개인의 욕망이란 가능할까? 사용가치에서 교환가치로 전도된 오늘날 자본주의 시스템의 존재방식은 무의식의 수준으로 내재화되어 의식의 합리적 판단 과정을 개인으로서 자신의 현재를 희생함으로써 성공적으로 그 희생을 보상해줄 미래의 사회의 영속성이라는 희망이자 동시에 개인에게는 실존적으로는 기만(欺瞞)적이고 경제적으로는 기생(寄生)적이다. 욕망과 환상의 경계가 흐릿해지고 개인의 추락이 반복된다.
동시대를 사는 같은 나이대의 개인들이라 해서 반드시 동일한 세계관과 인생관을 지닌 것은 아니다. 다문화, 다원가치 사회에서는 더더욱 개인은 개인 내부로 침잠하고 환원하는 힘을 갖고 있다. 외부로 발산하는 것만큼이나 동일한 또는 그 이상의 내부를 향하는 힘이 작용한다. 그러나 내부를 향하며 작동하는 힘은 어떤 형태로든 외부로 그 힘이 작동하고 있다는 흔적 또는 증거를 표현하게 된다. 철저하게 고립적이며 내부로 침잠하는 개인도 분명 개인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들이 있는 것이다. 이론적으로 완전히 내부로 침잠하는 힘이 가능한 어떤 개인이 있다하더라도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것이다.
개인은 분명 개인들의 집합 속의 개인이다. 그러나 철저하게 홀로 존재하는 개인들이 있다. 그들의 시선은 너무 멀리보거나 너무 높이 보기에 신체적으로 가까이 있어도 그들의 정신세계는 전혀 다른 차원과 경계에 홀로 있는 것이다. 그것은 예술가들이 흔히 공감하는 세계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개인도 반드시 사회화를 거쳐야하기 때문에 개인의 신화는 반드시 비극을 반복한다. 어찌되었든 정도의 차가 아무리 크다하더라도 개인은 사회적 힘과 긴장을 유지하며 존재하는 것이다. 사회적 힘과 관계에 휩쓸리지 않는 개인은 매우 특별한 개인이며 일종의 특권을 향유하는 존재일지 모른다.
인류는 자기복제를 통해 진화해왔다. 그 과정에 세계와 현실은 해석되고 변형된다. 혼자서는 생존할 수 없는 현실에서 개인은 불가능하다. 오직 개인들의 집합적 관계만이 존재할 수 있다. 홀로 높이 나는 리빙스턴은 상상의 세계에서나 존재한다. 잘 발달된 사회의 우아한 사교 모임에서도 냉철한 사회관계와 약육강식이 잠재한다. 사람들이 가까이 있다고 해서 그들의 사회적 관계가 밀접하다거나 뭔가 논리적 상관관계를 맺는다고 볼 수도 없다.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 자연다큐멘터리나 생뚱한 외계의 모험담을 담은 영화도 지금 현실의 사람과 삶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다. 그 반대로 수많은 사람이 등장하면서도 어느 누구에 대해서도 깊이 다루지 않는 경우도 있다. 사람들이 단지 풍경으로 존재하고 사물처럼 다뤄지며 결국엔 어느 한 개인에 대해서도 결코 이야기하지 않기도 한다.
그러므로 예술가들은 반드시 계급(階級)이나 성차(性差)와 별개로 개인의 문제를 다루게 된다. 나 개인의 문제는 각자 그 시기와 조건이 다르지만 항상 발생하기 마련이다. 라선영이 말하는 개인은 어떤 개인들인가?
2
오늘날 예술은 결코 예술 그 자체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예술 보다는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라선영은 이러한 생각에 동의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불가피하게도 사람들의 관계 속에서, 사회 속에서 태어나고 살아간다. 대다수의 개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선택권 없는 삶과 숙명을 견뎌야한다. 개인의 욕망을 반복하고 재배열하는 과정을 통한 미적 표현은 단순히 사회학이나 심리학에 머물지 않는다. 이러한 숙명을 벗어나는 길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인류의 역사는 종교적 체험과 자각 속에 자신의 운명을 벗어나는 길이 있다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지 않은가. 예술과 신화의 세계를 떠올려보라.
상투적인 대중적 설화 이면에는 신화와 은유가 자리한다. 환상과 현실의 혼재 속에 갇힌 처녀들, 그러므로 익명성으로 개별성이 사라진 처녀들. 그리고 기념비적으로 존재하는 유일한 원본성의 여신, 마지막으로 전시장을 방문한 관객의 작품구입이라는 교환가치의 등장으로 단순화할 수 있다. 신데렐라의 신분상승 신화와 그 신화를 반복하는 욕망, 구원이자 현실의 탈출구인 배우자 찾기 또는 신경쇠약 직전의 처녀가 느끼는 영혼을 잠식하는 불안과 욕망, 학습된 사랑의 구원, 기계화된 욕망의 출현.
인간의 욕망은 빈곤과 풍요 사이의 운동을 반복 순환한다. 욕망은 마치 양파껍질처럼 표면으로만 존재한다. 표층과 심층이 긴장상태를 유지하며 공존한다. 욕망의 운동은 외부로 또는 내부로 회전하며 겹치는 파동의 형태로 작동한다. 전시장의 수 백 명의 여성들은 욕망의 실체를 찾는 과정에 나타나는 분할된 형태 또는 무한한 파동의 은유를 떠올린다. 욕망이자 욕망들이 동시에 구현된다.
사람들의 삶이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단지 보는 것에 머물지 않고 그 속에 온몸을 던져 뛰어든 사람에게는 삶은 희극과 비극을 구별할 수 없이 공존하기 마련이다. 예술에서 표현형식과 주제의식 사이에 차이를 발견하게 되는데, 이러한 불균형은 그러므로 본질적이다. 미적 대상이라면 복합적인 삶에 대해 조금은 다른 가치, 다른 관점, 다른 출구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람들의 구체적인 형상이 등장하면서 사람과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 있고, 사람이 결코 등장하지 않은 채 말거는 작품이 있다. 구체적인 표정을 표현한 작품이나 표정이 모호해 그 사람이 지금 어떤 상태이지 불명료한 상태의 작품이나 그 작품이 지시하는 길은 사람에 대한 것들이고 삶에 관한 것들이다. 예술은 사람과 사람의 삶의 뒤에 가려져 있고 아주 긴 시간 속에 드러난다. 진실한 환영이거나 위악적인 현실성으로.
이런 것들이 전시의 큰 줄기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우리는 많은 미세하고 다양한 갈래의 해석의 길을 모색할 수도 있다. 한 사람의 에고는 성장과정에 형성된 상상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엎질러진 물을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는 것처럼 한 개인의 삶은 단 한번만 가능하며 지나간 시간은 되돌리지 못하다. 우리는 이 행복이 꿈이 아닐까, 또는 이 비극적 처지가 꿈이었으면 하고 희망한다. 전시장은 정신분석과 메타심리학의 전장(戰場)이 된다.
김노암(대안공간 아트스페이스 휴 대표)
출처 - 카이스갤러리
* 아트바바에 등록된 모든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
운영시간
월요일 10:00 - 18:30
화요일 10:00 - 18:30
수요일 10:00 - 18:30
목요일 10:00 - 18:30
금요일 10:00 - 18:30
토요일 10:30 - 18:00
일요일 휴관
휴관: 일요일
모든 프로그램은 주최측의 사정으로 변경될 수 있으니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를 확인하시기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