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프랑스문화원
2018년 8월 16일 ~ 2018년 9월 11일
(c) Léa Habourd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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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개관한 부산 프랑스문화원 ART SPACE는 맞은편에 있는 고은사진미술관과 긴밀한 협조 하에 운영되고 있다. 매년 20여 차례의 전시에 2만 명 이상의 관람객들이 다녀간다. 한국의 젊은 작가들은 물론, 프랑스 유명 사진가들의 작품을 매년 수차례 소개하고 있다. 2017년부터는 독창적인 전시 관련 인쇄물을 제작하여 오브제로서의 책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드높이고 있다.
레아 아부르댕의 사진 작업은 패러다임의 전환을 보여준다. 작가는 책을 먼저 만들고, 그 이후에 전시를 연다. 이번 전시도 마찬가지다. 『서바이벌리스트』는 2017년 7월, 푸에고 북스(Fuego Books)에서 출판되었다. 고은사진미술관과 부산 프랑스문화원의 초대로 ART SPACE에서 《서바이벌리스트》 첫 전시가 열린다. 작가는 책이 전시의 중심이 되도록 전시공간을 연출한다. 특별히 한국에서의 전시를 위해 작가는 새로운 논리로 새로운 이미지들을 선택하고 독창적인 북바인딩을 통해 『서바이벌리스트』의 새 버전을 만들어냈다. 프랑스어판과 한국어판이 나란히 묶여 『서바이벌리스트』 1, 2권이 될 것이다.
〈서바이벌리스트〉는 여섯 번째 대멸종의 시대에 영감을 얻어 찍은 사진이다. 작가는 영속적인 원소들이 보여주는 거대하고 고요한 힘과 몸과 사물들이 보여주는 현기증 나는 저속함 사이를 오가며, 서바이벌리스트가 가지는 환상을 부조리하게 보여준다. 작가는 인간에게 남은 유일한 미래로서의 초인에 대한 환상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파비앙 리베리에 따르면 “『서바이벌리스트』는 북-오브제(objet-livre)의 풍부한 다의성을 바탕으로 독특한 내러티브를 보여준다. 이는 모든 생물이 사라지는 시대에는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경이로운 것이 될 수 있다는 일종의 블랙콩트다.
작가노트
저는 책과 (늘) 잘 맞았습니다. 책과 관련된 일을 배우는 에콜 에스티엔느에서 공부를 하면서 더욱더 책이 좋아졌습니다. 제본, 금장, 납 활자 작업실, 그리고 석판 프레스 기계 앞에서 무수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어느새 책을 만드는 일이 쉽게 느껴졌습니다… 제가 (동호인 잡지를 비롯해 책-조각작품에 이르기까지 마흔 개의 인쇄된 북 오브제와 함께) 네 권의 책을 만들게 된 이유도 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기술적으로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를 보았습니다. 저의 작업에서 내레이션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다 보니 아주 자연스럽게 책을 고안하게 되었습니다. 질감이 두드러지는 판화를 공부하면서 액자 틀에 담기는 매끈하고 만질 수 없는 사진이 불편했습니다. 하지만 책은 아주 쉽게 그 액자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해줍니다.
제가 서바이벌리스트들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2012년이었습니다. 프랑스 언론이 끊임없이 마야달력과 지구 종말론을 떠들어대고, (영미권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서바이벌리스트들이 프랑스에도 등장하기 시작한 때였습니다. 그들의 생각을 간단하게 옮기자면, 그들은 지구 종말이 임박했다고 믿습니다. 우리 모두보다 더 영리한 몇몇 사람들이 그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동물들과 달리, 인간은 자신의 죽음을 의식합니다. 언젠가는 죽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인간이 허구에 지나지 않는 불멸을 준비하려 하는 최고도의 역설적 행태가 저를 매혹시켰습니다. 서바이벌리스트는 지구 종말의 재난에도 쉽게 죽지 않는 초인적 인간을 말합니다. 무엇보다도 흥미로웠던 것은 그들이 세상과 맺는 관계였습니다. 그들은 인간의 생존을 가능하게 해주었던 기본적 관계로 되돌아가고 있었습니다.말하자면 체온 유지(다시 말해, 불을 피우고, 은신처를 만들고, 자신을 보호하는 일), 영양 섭취(사냥, 낚시, 채집, 저장), 그리고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거실의 폭신한 양탄자 위에 늘어놓은 생존가방, 멋진 전투복을 입고서 진흙탕에 뛰어드는 테스토스테론이 폭발하는 생존교육 광고를 볼 때만 해도 미소가 절로 나왔습니다. 하지만, 그들 가운데 상당수가 신나치주의 혹은 우생학을 따르는 단체의 회원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저는 경악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의 반대편에는 자연으로의 회귀와 에너지 자급을 주장하는 뉴히피들이 있습니다. 물론, 이들 양극단 사이에는 과격함과는 거리가 먼 서바이벌리스트들도 많습니다.
서바이벌리스트라는 이름은 하나의 생각만을 포함하고 있지 않습니다. 무장한 편집광에서부터 숲 속의 로빈후드까지 많은 사람들을 아우르는 말입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제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그 사람들의 개인적인 면면이나 일상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우리 사회에 팽배한 보편적인 죽음의 공포, 재난을 기다리고 있는 듯한 분위기를 보여주고 싶습니다. 대멸종, 기상 이변, 정치 게임 등 수많은 요인들이 그 같은 공포를 부채질합니다. 그렇게 보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우리 모두는 서바이벌리스트입니다.
『서바이벌리스트』 출판 이후에도 저는 계속해서 그 주제를 생각했습니다. 부산 프랑스문화원 ART SPACE와 의견을 나누면서 『폐허 위에서』라는 전시 기획을 하던 과정에서 새로운 책을 제작할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미 작업해 놓은 이미지들을 책을 위해 배열하면서 새로운 텍스트를 넣고 싶어졌습니다.2018년 1월부터 3개월에 걸쳐, 생존에 필요한 매듭 만들기를 설명하는 소책자, 오두막과 은신처에서 영감을 얻은 20여 점의 데생을 완성했습니다. 저는 그 데생들이 책 속에서 일종의 구두점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급한” 메모를 할 수 있는 페이지들이 포함된 오브제를 구상했습니다. 또한 서로 붙은 두 페이지 안에 하나의 이미지를 숨겨놓았습니다. 보이지 않지만 25번이나 인쇄되어 있으니 그 존재가치는 굉장히 큰 셈입니다.
북한과 미국의 첨예한 대립 속에 불안감이 날로 커져만 가고 있던 시기에 『폐허 위에서』를 완성했습니다. 프랑스 언론들은 핵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아주 이상한 분위기였습니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매듭 만들기, 나무로 은신처 만들기와 같은 단순한 일에 몰두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었습니다. 남과 북을 제대로 가리키지 못하는 나침반도 때때로 등장시키면서요. 살아남기 위한 인간의 준비가 너무나 단순해서 애처로웠습니다.
부산에서 이 작업을 처음으로 소개하게 되어 행복합니다. 그리고 책이 무료로 배포될 수 있어 기쁩니다. 그 덕분에 오브제와 그 형태만 오롯이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있는 곳에서 멀리, 세상의 반대편에서 저의 책이 쌓여 만든 벽의 높이가 나날이 낮아지는 것을 상상해봅니다. 기분 좋은 일입니다.
출처: 부산알리앙스프랑세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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