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
2025년 3월 8일 ~ 2025년 3월 23일
사동사 ‘웃다’와 형용사 ‘슬프다’가 합성된 신조어, ‘웃프다’는 그 유래가 명료하지 않다. 2010년대 들어서 인터넷 커뮤니티에 출범했다고 알려진 이 말은 웃을 법하지만 마냥 웃을 수 없을 상황, 혹은 허탈한 슬픔 등을 표현할 때 쓰인다. 어느 시점부터 ‘웃프다’는 웹 밖에서도 흔하게 들려오지만, 한국어 어법에 어긋나 표준어로 등재되지 못하는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 이 오류의 단어가 일상 언어처럼 보편화 된 이유는 어그러진 현실 속에서 현대인들이 느끼는 복잡하고 미묘한 심정을 전달해서가 아닐까? 류민수의 작품은 ‘웃프다’의 단어처럼 양가적이고 오류적이다. 사회의 표준에서 일탈하려는 그의 유머는 미술계 안팎의 불편한 현실을 환기시키면서도 기저에 깔려 있는 휴머니즘(humanism)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시장 가치가 낮거나 시장으로부터 밀려난 사물 및 노동을 통해 ‘미술 같지 않은 미술’을 구현해 왔다. 일전에 그는 특수한 악기케이스를 만들어 생활에 쓰인 도구들을 작품처럼 보존하였고, 길거리에 방치된 사물을 3D 스캐너로 기록하여 조각으로 복구하였다. 이외에 퍼포먼스라는 명목으로 전시장에서 수행한 다림질, VR 영상을 통해 관객에게 노출한 집들이 모습 등, 그는 일상의 몸짓을 창작의 몸짓으로 전환하였다. 이처럼 생활의 양상이 양식으로 작동하는 그의 작품은 미술의 중심과 변두리를 서성이는 존재사유로부터 비롯되었다. 작가는 미술을 둘러싼 시장 생태계와 미술인이 되기 위한 제도적 절차를 직면해오며 작품을 선행하는 존재를 반추해 왔다. 그 존재는 미술인이기에 앞서 시민이자 사회화 이전의 원초적 현존재로, 창작을 뒷받침하기 위한 생계 활동을 영위하는 노동자였다. 작가는 미술 종사를 위한 기술 단련과 미술 밖의 노동을 넘나들며, 작품 생산에 직간접적으로 연계된 몸짓들의 관계를 조망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미술의 표면에 가시화되지 않는 움직임들, 즉 미술을 지탱하는 몸과 시간, 그리고 제도를 의식하고 이를 조명하는 시각언어를 구축하고자 했다. 이렇듯 자기 성찰로 작품을 일상 및 노동으로 환원하는 그의 작업 태도는 자기비판적(Self-criticism)이다. 그러나 류민수의 자기비판은 모더니즘 미술의 경향처럼 매체의 물리적 바탕을 실재적 본질로 지시하지 않는 듯하다. 온전한 자율성과 독립성에 대해 회의적인 그에게 자기비판은 매체와 주체, 더 나아가 제도 너머에 잔존할 무형의 미술에 이르려는 자기부정으로 비추어진다.
그의 자전적인 작업관은 이번 전시의 제목에서도 살필 수가 있다. 《그리기 위한 조각》은 “미술을 위한 미술”을 뜻하면서도 “미술을 위한 생산품”, 혹은 “노동을 위한 미술”로 환원이 된다. 전자의 의미에서 ‘그리기 위한 조각’은 미술의 순수성을 모색하려는 형식적 접근을 보여준다. 다른 한편, 후자의 의미로 해석한다면 ‘그리기 위한 조각’은 미술을 위해 한쪽을 수단화 하는 모순으로 읽힌다. 전시 제목의 의미는 그림을 위한 조각인지, 조각을 위한 그리기인지, 아니면 미술이자 미술이 아닌 미술인지 구체적으로 짚어주지 않는다. 이와 같은 의미의 혼선은 전시장에서 조각, 데생, 영상, 설치, 퍼포먼스가 서로를 연계하며 보이지 않는 미술을 향해 전진해 나가는 시스템으로 표현된다.
《그리기 위한 조각》에서 작가는 전시 공간에 다양한 기능을 갖춘 복합공간을 연출한다. 일제시대에 상가주택으로 지어진 공-원은 상가였던 1층의 공간을 쇼윈도 전시장으로 활용하고 있는데, 이곳에는 수십장의 데생들로 구성된 <아무도 아닌, 동시에 십만명인 어떤 사람>(2024)이 벽면을 뒤덮고 있다. 단일한 석고상을 일관된 양식으로 그려낸 대량의 데생들은 한국 입시미술을 치렀을 이들에겐 낯설지 않은 광경이다. 한국의 미술학원들이 학부모들과 수험생들을 호객하기위해 건물 입구에서부터 그림들을 펼쳐 놓는 것처럼, <아무도 아닌, 동시에 십만명인 어떤 사람>은 창을 통해 외부인들에게 노출된다. 쇼윈도 전시장을 지나 공-원의 정문으로 들어서게 되면 아늑한 주거공간이 방문자들을 맞이한다. 집의 출입구에는 익숙하지 않은 가수의 사인이 새겨진 티셔츠와 한 장의 엔화가 전시되고 있다. 거실로 들어서면 가수와 악수를 나누는 기념사진, 그리고 단채널 비디오 <To You>(2025)를 관람할 수가 있는데, 영상에는 과거 속에 잊힌 가수를 만나러 가는 한 청년의 여정과 그의 몸을 조각으로 복구하는 과정이 상영된다. 비디오를 시청하다 보면 관객들은 현관에 진열된 오브제들이 가수와의 만남 중에 획득했던 기념품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영상 속 복원된 가수의 몸이 쇼윈도에서 본 그림 속의 얼굴과 동일한 인물임을 발견할 수 있다. 집안과 밖으로 곳곳에 자취를 둔 ‘아무도 아닌’ 사람은 1998년 음반 시장에 소개가 되었다가 대중에게서 멀어진 사이버 가수로, 작품에서 그는 시장으로부터 소외된 익명의 존재들을 상징하는 아바타로 등장한다. 누군가에게 서신을 보내는 듯한 ‘To You’의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작가는 역사의 뒷전에 있던 존재를 전시하여 현대 사회에 가리워진 타자들을 기리고자 한다.
주거 공간 옆의 대청마루와 마당에는 아바타를 위해 설립한 임시 독립 총판이 운영 중이다. 이곳에서 작가는 정해진 업무 일정에 따라서 틈틈이 사이버 가수의 석고상을 주조한다. 전시장에서 조각을 만드는 행위는 관객들에게 퍼포먼스로 공개가 되지만, 생산품을 화방으로 유통하는 기업 체계에서 창작은 생산노동으로 전락한다. 이처럼 전시의 연출과 공방의 업무가 버무려진 상황은 작가와 노동직 사이의 인지적 부조화를 야기한다. 한편, 독립 총판에서 출고되는 조각의 쓰임은 2층에 마련된 제품 시연 현장에서 간접체험 할 수 있다. 아뜰리에(atelier)가 펼쳐진 2층 방에는 조각으로 복구된 전신크기의 사이버 가수와 석고상을 에워싸는 미술공구들이 놓여 있다. 이곳은 입시 미술학원을 재현한 <Radius>(2024)로 전시에 초청받은 회화 작가, 미대 학생, 일반인 등, 미술 안팎의 관계자들이 석고 데생을 그릴 수 있도록 조성되었다. 엄수된 시간 없이 자율적으로 방문하는 이들은 전시장의 퍼포머이자 관객, 혹은 아뜰리에 수강생으로 각자의 목표에 따라서 그림 연습과 취미 활동 등의 그리기를 수행한다. 하지만 각자의 의중과 무관하게 아바타 그림으로 귀결되는 그리기는 가수를 홍보하는 단순 복제 행위로 정착한다. 작가는 이웃들의 손길을 빌려 제한된 규칙을 통해 시장에서 물러난 아바타를 추념해보지만, 역사화도, 초상화도 아닌 데생은 얇은 물성과 빈약한 상징으로 인해 비기념적(Unmonumental)이다. <Radius>를 지나 아뜰리에의 가장자리로 시선을 돌리면 이 전시의 중심 인물인 <그림이 된 남자>(2024)를 만날 수 있다. 관객으로부터 뒤 돌아서 있는 아바타는 용도가 불분명한 다리미를 한 손으로 쥐고 있는데, 해당 사물은 조각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보완한 지지대로 보이면서도 벽의 이면을 살피기 위한 탐기지처럼 벽을 맞대고 있다. 앞에 가로막힌 벽 때문인지 그의 몸짓은 덧없어 보인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허공을 마주한 조각의 점진적인 방향성은 몸을 제약하는 공간에 맞대응 하고 있어 정처 없는 몸짓을 이념적인 몸짓처럼 비유한다.
이처럼 하나의 전시 공간 안에 네 가지의 기능을 도입한 류민수의 개인전은 엉뚱하지만 현실적이다. 이는 작가가 살아온 경험에서 차용한 장소들이 한국의 미술인들과 일상인들에게 낯설지 않은 쓸쓸함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미술계의 진입을 위해 입시와 아르바이트, 그리고 작업 연구를 거쳐야 했던 한 사람의 서사는 코로나 팬데믹 시절에 검색했던 소외된 가수의 이야기와 맞물리며 독립된 조각으로 형태를 이루었다. 그 조각은 사교육 카르텔 속에 억압받는 학생, 자본주의에 착취 받는 노동자, 시장 경쟁에서 도외시된 이웃, 세상 밖을 나가지 못하는 은둔형 외톨이의 얼굴을 숨긴 아바타다. 그에게 붙여진 이름들 중에는 ‘아무도 아닌, 동시에 십만명인 어떤 사람’이자 ‘그림이 된 남자’, ‘그리기 위한 조각’ 외에도 한 가지가 더 남아있다. 미술의 언어를 빌려 미술을 부정한 자리에 세워진 존재의 다른 이름은 ‘잊혀진 이들을 위한 조각상(Statue for Missing)’이다.
글 양기찬
참여작가: 류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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