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갤러리
2017년 5월 26일 ~ 2017년 6월 16일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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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서문
‘물오라기'라는 단어가 맴돌았는데 그런 단어는 없다고 한다. 축축하게 젖은 해오라기 깃털은 축축하게 젖은 해오라기 깃털일 뿐 물오라기라 부르지 않는다. 지금 본 것이 갯벌레인지 먹구렁이인지 모르겠고 해양생물이든 육지생물이든 그들의 타고난 위장술에 대해 생각하다가 공중⌢ 부유⌢ 생물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는데 공중⌢떠돌이⌢생물이라고도 불리는 그것이 우리를 지칭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단어를 쉴 새 없이 떠올리면서도, 물기 머금은 신체를 지표면으로부터 조금이라도 떼어놓으려 애쓰는 몸짓은 결국, 제 몸집을 부풀려 다른 개체들과 스스로를 구별짓는 구애행위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머쓱해지기도 했다. 그러다가 숨거나 드러내거나 숨겨지거나 드러내지거나 잡아먹거나 사랑을 하거나 잡아먹히거나 사랑을 나누거나하는 일은 의지와 상관없이 그저 운의 궤도를 따라 일어나는 것이거나 벌어질 일이 벌어지는 것일 뿐이라는 생각에 초조해졌다. 보다 크고 깊고 빠르게 뜨거워지거나 때로는 식어가기도 하는 어떤 흐름에 대해 생각이 미치게 될 때 쯤 눈으로 목격하고 손으로 움켜쥘 수 있는 것들을 찾아 발길을 재촉하는 수 밖에 없다고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다.
전시 기획안
지금까지 무화과가 제작한 작업의 성격과 방침에 따르면, 복수 제작이 가능한 창작물을 정기적으로 출간 및 배포하는 것이 주된 활동 방식이다. 정기 간행물이라고 명명하는 것에서, 일정한 기간 내에 판매가 가능한 창작물이 발행되고 그 창작물은 가상의 공간(인터넷) 혹은 우편을 통해서 그 종착지에 가닿게 되어 있다는 본질적인 특성을 예감할 수 있을 것이다. 무화과는 이러한 일방적이면서 평면적인 성격이 3차원의 실제하는 공간에서 보여졌을 때의 새로운 가능성을 ‘전시' 라는 수단을 통해 탐색해보고자 한다.
전시의 형태로 목소리를 낼 작품 -무화과 4호(제목 미정)- 은 서해의 수많은 섬들 중 하나인 굴업도를 배경으로 진행 된다. 우리는 이전의 작업을 진행해오면서 스스로 낯설고 고립된 장소에 처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고, 그곳에서 도시에서는 일상적으로 감각할 수 없는 차원의 감각을 한층 예리한 시선으로 체험/체감하고자 하는 막연한 속마음을 가지고 있다. 이 막연함, 불확실함, 계획없음의 상태는 여행지를 임의적이고 즉흥적으로 선정하고, 벌어질 일들이 벌어지도록 내버려두는 식의 여행 방식과 긴밀하게 연관된다. 더불어 무화과가 작업 활동을 통해 지향하는 태도, 이를테면 ‘의도적으로 막연함을 유지하는 것', ‘단정짓지 않는 것', ‘자연스러울 것', ‘뜻밖의 사건에 주의를 모을 것' 과도 연결된다. 자칫 수동적으로 보일 법한 이러한 자세는 이를 통해 세계를 인위적으로, 억지스럽거나 피상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내밀하고 예민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믿음을 적극적으로 표방하고 있다.
무화과는 굴업도, 크게는 섬이라는 장소가 지니고 있는 지형학적, 지리학적, 생태학적, 역사적 특성을 충분히 숙지하고 여행을 진행하게 된다. 이러한 선행 조사는 작업의 소재로써 직접적으로 반영될 목적에 있다기보다 내면에서 벌어질 복합적인 풍경이 실제적인 차원의 환경 및 정보와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고 반응하는지를 치밀하게 보려는 의도를 가진다. 이로써 내부와 외부 간의 활발한 상호작용을 이루고 여행지를 몸과 마음으로 충분히 만끽하려 한다.
무화과가 섬에서 무위(無爲)하며 얻은 ‘무엇’은 여행 후에 이루어질 예술 행위를 통해 작품의 형태로 변모하게 된다. 작업물은 ‘전시'가 창작 행위와 확연하게 구별되는 지점, 즉 ‘작품이 보여지는 방식'이라는 새로운 층위의 고민을 충분히 고려하여 설치될 예정이다. 작품을 하나씩 늘어놓고 선보이는 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시 공간의 구조와 특성을 섬세하게 살펴 작품과 공간이 흥미로운 대화를 이루도록 한다. 더 나아가 이 전시가 감상자와 독자들에게 물리적으로 가깝게 다가갈 수 있을 하나의 장으로서, 퍼블리싱을 기반으로 한다는 무화과의 본성이 그 한계를 능가하는 차원에서 획기적인 방식으로 실현되길 기대한다.
작가소개
무화과에 대하여
무화과는 현재 2인으로 구성된 공동체이다. 비슷한 관심사와 불만사항을 공유하면서 이어진 다년간의 교류를 단순한 친목으로 설명하기에는 어딘지 충분치 않은 구석이 있었고, 이를 감지한 2인은 보다 적극적으로 관심사와 불만사항을 지속해나가기 위하여 모임을 만들었다. 모임의 명칭은 향긋하고 달콤하며 이국적인 정취를 불러 일으키는 과일, 무화과에서 비롯하였다. 무, 화, 과, 3음절을 발음하기 위해서 입술을 오므렸다 벌리고 숨을 내뱉고 들이마시는 것을 반복하며 입 주변의 근육을 부지런히 놀리다 보면 부드러운 과육을 입에 베어 물었을 때 배어나오는 진득한 과즙과, 오래전 펼쳐보았던 두꺼운 성경책 속 어떤 구절에 등장하는 여러 겹의 비유와 상징으로 둘러싸인 신비로운 열매의 작고 동그란 형태가 떠오르는 것이었다. 예술 창작을 위한 공동체라는 형태에 대해 여러가지 의문이 앞선 것도 사실이었지만, 첫 모임 이있던 날 상수동 골목 어귀에서 한창 쌀쌀한 늦가을임에도 불구하고 푸른 잎을 매달고 있는 무화과 나무 한 그루를 발견한 순간 이건 무조건 해야되는 일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무화과의 방침
<60일의 간격을 두고 정기적으로 창작물을 생산한다.>
2016년 11월 1일부터 활동하기 시작하여 12월 20일 창간호를 발행했다. 짝수 달 20일에 완결되며, 순서에 따라 번호를 매겨 현재까지 3호를 완성하였다.
<전통판화를 비롯하여 현대의 디지털 인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식의 인쇄 기법을 동원하여 복수 원본을 만든다.>
서로 상이한 형태의 제작물이 서로 모종의 연관성과 흐름을 지니고 있기를 기대하고 있으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를 규정하는 단어의 경계를 최대한 느슨하게 열어둘 수 있는 여유이다. 수집한 이미지들과 실험적인 글쓰기 방식을 이용하여 과거의 예술가들과 그들의 작품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글과 이미지, 과거와 현재, 작품과 또 다른 작품 등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형식의 발화를 실험 한다. 더불어, 작업이 취하는 형식을 엄밀하게 조율하여 완결된 시각예술 작품으로서의 탁월한 미적 성취를 갖추고자 한다.
<무화과는 제 3의 주체이다.>
무화과의 구성원들은 서로의 창작 활동을 지지하며 각자의 활동에 대해 최대한 성실하게 반응하는 개인임과 동시에 ‘무화과’라 이름 붙여진 공동체 또한 별도의 독자적이고 고유한 노선을 갖는다. 무화과는 전에 마주친 적 없는 질문을 접할 수 있는 공간이며 보다 너른 생각과 활동의 반경을 가능케 한다. 다수의 개인이 참여하는 공동체 안에서 창작 - 해석을 지속하는 것은 꿈꿔 왔던 예술적 이상을 현실화하는 좋은 방법이다. 이는 단순히 구성원 사이의 심리적인 차원의 지지에 그치지 않고 제작과정에 있어 필요한 실질적인 협업을 제공하며 예술가에게 비호의적인 사회적 조건 아래에서 자생력을 갖추게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와 뜻이 맞는 동료라면 얼마든지 우리의 우정에 동참 할 수 있는 열린 공동체를 지향한다.
출처 : 그리고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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