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아트스페이스
2015년 6월 22일 ~ 2015년 6월 28일
The Cover Story, 2012, multi-plates etching, aluminium plates, vinyl papers, and an inkjet printer, 3.65x3.65 me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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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바랜 책 표지에 담긴 이야기들
박양빈 작가가 이번 전시에서 제시한 주제는 “The Cover Story”이다. 이와 관련한 작업을 작가는 알루미늄 판 위에 에칭과 같은 판화적 방식으로 책 표지의 이미지를 인쇄하여 보여주게 된다. 그런데 책 표지 이미지는 상당히 큰 크기로 확대되어 있으며 흑백으로 변환시켜 마치 오래되어 탈색된 책과 같은 느낌을 만들어 낸다. 작품이 설치된 방식은 책이 일반적으로 놓여진 것처럼 세워놓지 않고 카펫이나 장판을 바닥에 깔 듯 열을 맞춰 펼쳐놓은 상태이다. 전시방식을 볼 때 회화나 평면 작품이 전시되는 방식에서 벗어나 있으며 공간 설치작업으로 보기에는 바닥에 놓여 있을 뿐 지극히 평면적인 작업이다.
작가는 먼저 그의 작업에서 책에 대한 시점을 바꿔보고 싶다고 하였다. 그래서 두꺼운 책을 얇은 표지의 이미지만으로 표현하였고 세워서 보관하는 책을 바닥에 깔아 놓게 되었다고 한다. 두꺼운 책은 작가에게 있어서는 지식과 권위의 상징으로 다가왔었는데 그 책의 두께를 제거하게 되자 책의 표지 이미지만 남게 되었고, 책꽂이에 두툼한 볼륨을 차지하며 나열되어 있기에 쳐다 볼 수 밖에 없었던 책들은 이제 바닥에 내려놓고 관조할 수 있는 대상으로 변화 되어 있다.
작가에게 있어서 책은 지식의 보고(寶庫)이고 정보와 교양을 가져다 준 통로이었다. 그러나 이 책이라는 것은 타자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작가는 어느 순간 간과했었음을 자각하면서 작가 스스로 돌이켜 볼 때 깊이 있는 검증 없이 책의 권위를 인정해 버리고 순응해 왔다는 점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번 작업을 통하여 책이라는 대상의 의미를 읽어내는 작업을 하게 되었는데 여기서 작가는 책에 있어서 텍스트에 대한 깊이 있는 고찰을 시도하게 되었다고 한다.
책이라는 도구는 그 책을 쓴 저자와 그 책에 담겨진 지식과 내용을 더욱 강력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파피루스나 양피지와 같은 재료의 발명에 의해 요즈음의 책과 유사한 형식이 나타나면서 텍스트를 이전 보다 더 오랜 시간 동안 더 넓은 지역의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게 되었고 이에 따라 국가 권력과 통치 범위가 넓어지고 사상과 문명이 더욱 발전할 수 있었다. 이후 인쇄술의 발달과 사진술의 발달로 인해 책과 문서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다채로운 내용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신속하게 전달 되어 대중과 문화를 만들었고 이와 함께 학문과 지식은 기하급수적으로 발전되어 현대 문명을 낳게 되었음을 역사 속에서 확인하게 된다.
그런데 작가는 인류 문명에서 이러한 책의 위치와 관련하여 인터넷과 같은 디지털 혁명의 시대가 되면서 저자 중심의 권위와 일방향적 지식 전달방식에 있어서 커다란 변화가 오게 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디지털시대가 되면서 인터넷 등 쌍방향 매체가 저자의 중심적 권위에서 정보 공유의 시대로 이행하도록 만들고 있는 현재의 시대 상황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이와 관련하여 작가는 네이버 지식인이나 위키디피아(WIKIPEDIA) 등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면서 책에 대한 시각에 변화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는 집단지성의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저자와 중심에 대한 기존의 시각에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고 책과 텍스트에 대한 관점에도 변화가 필요한 상황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작가는 그의 작업에서 책의 표지를 다루면서 화석처럼 무채색의 빛 바랜 이미지로 표현하게 되었던 것 같다. 책에 함몰되어 지식을 섭취하던 시대는 지나갔고 이제 책의 표지에 권력으로 군림하는 것처럼 보이던 저자 중심적 텍스트의 힘은 그 한계점도 분명하게 노출되고 있음을 작가는 그의 작업을 통해 거론하고자 하는 것이다.
책의 저자만이 독점하였던 지식의 생산과 유통에 관한 권력은 이제 디지털 기반의 인터넷 매체의 등장으로 전혀 다른 국면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박양빈 작가의 작업에서 거대해 보이는 책 표지의 이미지는 화석처럼 회색 빛의 표지만을 드러내고 죽은 듯이 바닥에 누워있다. ‘Cover Story’라는 말에는 ‘표지 이야기’라는 의미와 함께 ‘꾸며낸 이야기’라는 의미가 있듯이 역사를 돌이켜 보면 권력의 은폐를 위해 만들어냈던 이야기가 책과 같은 많은 인쇄 매체를 통하여 전달되어 대중을 현혹하거나 오판에 빠지도록 했었던 예가 많았었음을 작가는 작업을 통하여 상징적으로 드러내 보이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그의 작업에서 표지의 텍스트가 가졌던 권력을 박물관 속 유물의 위치에 가져다 놓고 텍스트를 바라보는 통념적 시각에 균열을 가함으로써 이제 다른 차원의 시각을 제안하는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다.
사이미술연구소 이승훈



출처 - 사이아트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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