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공간 길담
2022년 9월 25일 ~ 2022년 10월 8일
박정원 작가는 동시대에 일어난 사건들을 마주하며, 구조적인 폭력과 그에 대한 저항의 장면을 풍경으로 기록한다. 한국 사회의 재개발과 젠트리피케이션은 자본을 좇기 위해 원주민들의 권리를 무시하는 방식으로 반복되어 왔다. 이는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의 생계 수단과 주거지를 빼앗고 있으며, 몇십 년 동안 지역을 유지하고 지탱해 온 문화와 개개인에게 스며든 추억마저 잊혀지게 만든다. 한편, 한국 사회에는 거대한 구조 앞에서 치열하게 싸우는 개개인들이 있다. 이들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안전을 보장받는 삶을 위해, 혹은 타인의 죽음을 계속해서 기리기 위해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 무력한 제도는 늘 이들을 보호하지 못하고, 그 과정에서 숱한 소외와 죽음이 발생한다. 이러한 여러 사회적 폭력을 겪으며 사회는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을 겪고, 그때마다 우리는 준비되지 않은 이별을 반복한다.
덜컥 잃어버리고 빼앗겨 버린 후에는 빈 공간만이 덩그러니 남는다. 그러나 우리는 동시에 그 빈 곳에서 발생하는 상실에 저항하는 목소리들을 듣는다. 저항의 목소리는 형체 없이 비어버린 공간을 채운다. 폭력은 시대의 흐름 속에서 금세 과거가 되어 버리며, 빈 공간의 완전한 복구는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자리를 지키는 것,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는 것은 미래에 가해질 폭력에 대한 완강한 저항이며, 이 저항이 계속될 것이라는 약속이며, 저항을 이어 나갈 수 있는 희망이다.
그림 속 공간들은 사회적 폭력이 가해진 흔적을 더듬고 있다. 대규모 강제 철거가 일어났던 장위동, 오래된 노포가 있었던 골목, 구 노량진 수산시장이 있던 역 앞의 육교, 추모 공간이 있었던 옛 광장은 그림 속에서 빈 땅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이 장소들은 비어있는 동시에 다른 무언가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 천을 뒤집어쓴 유령들이 모여 노래를 부르고, 작은 불빛들이 움직이고, 꽃잎과 빈 종이가 수없이 흩날린다. 우리는 아마 이 공간들을 다시는 온전한 상태로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목소리를 채우는 유령들이 있는 한 그 공간은 완전히 빈 것이 아니다. 유령, 종이, 꽃잎, 반딧불이는 모두 일시적이며 연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것들이다. 크나큰 폭력 앞에서 저항의 목소리를 내기란, 그리고 그 목소리에 하나를 더 더하는 것이란 무의미하고 덧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이 덧없고 연약한 것들이야말로 변화를 일으키는 불씨이다. 반딧불이의 희미한 불빛이 눈이 부시게 밝은 불이 될 때까지, 작은 촛불이 모여 산을 집어삼키는 산불이 될 때까지, 작은 몸짓들은 희망을 가지고 빈 땅에 모여들 것이다.
기획: 박정원 김지수
사진촬영: 박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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