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아트센터
2019년 2월 16일 ~ 2020년 2월 20일
백남준아트센터(관장 서진석)는 2019년 2월 16일부터 2020년 2월 20일까지 백남준展 《백남준 미디어 ‘n’ 미데아》를 개최한다. “백남준 미디어 ’n‘ 미데아” 는 비디오 아트의 존재론을 설파하면서 만들어낸 백남준 식 조어 ‘비디오, 비데아, 그리고 비디올로지’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 《백남준 미디어 ‘n’ 미데아》전은 동시대 사회를 예민하게 포착했을 뿐 아니라 테크놀로지에 대한 예술적 개입으로 새로운 미래를 그렸던, 그렇기에 여전히 동시대적인 예술 “백남준 미디어”가 던지는 메시지를 탐구한다. 이를 통해 비디오로 새로운 예술의 지평을 연, 백남준의 미디어 실험이 도달하고자 했던 예술적 지향점을 전시하고자 한다.
“마샬 매클루언이 했던 말처럼, 우리는 변화하는 사회의 안테나이다. 하지만 안테나에서 그치지 않는다. 〔…〕 내가 하는 일은 제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지켜보면서 그 안에 손가락을 비집고 집어넣어 벽을 무너뜨릴 수 있는 작은 구멍을 찾는 것이다.” (백남준) Calvin Thomkins, “Video Visionary”, New Yorker, May 5, 1975, p. 79.
백남준아트센터의 주요 소장품으로 채워지는 이번 전시 《백남준 미디어 ‘n’ 미데아》는 “세계 모든 나라가 서로 케이블 TV로 연결될 때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을 미리 예견한 일종의 상상적인 비디오 경관(백남준)”인 백남준의 작업 <글로벌 그루브>(1973)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WGBH 방송국을 통해 방송되었던 <글로벌 그루브>에는 위성 방송 시스템, 인터넷 소통방식 이전에 비디오가 서로의 문화에 대한 쌍방향의 이해를 매개하는 매체가 될 수 있음을 예견한 그의 사유가 담겨 있다. 전 세계의 다양한 춤과 노래가 콜라주 되는 이 작품은 “비디오 공동시장”을 통해 전파되는 미래, 마치 오늘날의 유튜브를 예견한 듯한 그의 비전이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적 차원의 상호이해를 바탕으로 서로 연대하는 투명한 사회, 다시 말해 전쟁 없는 사회이다. 즉, 지구촌을 향한 꿈이다” 라는 비평가 이르멜린 리비어의 말처럼, 두 번의 세계 대전과 베트남 전쟁을 비롯한 냉전의 긴장감이 감돌던 20세기 후반의 정치사회적 상황 안에서 예술가 백남준은 미디어를 통한 ‘소통’으로 ‘세계평화’를 이루어 낼 미래의 광경을 형상화 한다.
전시는 ‘지구인’ 백남준이 전자 미디어로 그리는 거대한 비전과 조응하는 여러 단계의 텔레비전 실험과 예술적 탐구를 선보인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닉슨 TV>는 텔레비전을 쌍방향의 소통수단으로 이해하고 실험한 백남준의 미디어 분석을 보여준다. 텔레비전에 전류를 흐르게 해 이미지를 왜곡시키는 이 작업으로 인해 닉슨의 얼굴은 일그러지고 희화화된다. 다음으로는 1968년의 전시 《전자 예술Ⅱ》 기록 영상 속의 <케이지드 매클루언> 비디오를 볼 수 있다. 미디어 이론가 마샬 매클루언의 얼굴을 변주한 이 영상은 『미디어의 이해』라는 책으로 미디어에 대한 탁월한 분석을 한 이론가 매클루언과 백남준의 상보 관계를 상상할 수 있는 단초가 된다. 동시에 “미디어가 메시지”라는 매클루언의 개념과 연계하여 텔레비전을 일 방향의 매체가 아닌 작가의 개입으로 변주될 수 있는 쌍방향의 가능성을 찾은 백남준 미디어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백남준이 꿈꿨던 “미래의 비디오 풍경”을 상상하며 구성한 전시장 메인 홀은 거대한 거실 공간처럼 연출되었다. 이 공간에 놓인 대형의자에 앉으면 왼쪽으로는 음극선관이 유화를 대신해 만들어진 미디어 회화 <퐁텐블로>를, 양쪽으로는 실체가 없는 비선형적인 시간을 시각화하는 <스위스 시계>와 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정면에는 <글로벌 그루브>가 멀티비전에 상영되고 있고 양 옆으로 <찰리 채플린>과 <밥 호프>가 포진해 있다. 또한 구석의 방으로 들어가면 인류의 문명을 밝힌 최초의 미디어인 ‘빛’을 담고 있는 이 보인다. 마치 생활용 A.I. 와 접속 가능한 스크린으로 둘러싸인 현대 일상의 공간을 연상하게 하는 이 공간에서 우리는 빛, 필름, 전기, 라디오, 전파, 텔레비전 등의 미디어가 어떤 방식으로 우리 삶의 풍경을 바꿔왔는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전시장의 마지막에 놓인 백남준의 최초의 위성 실험 비디오 <도큐멘타 6 위성 텔레캐스트>와 <징기스칸의 복권>을 통해 전자 고속도로를 통한 세계적인 소통, 쌍방향의 소통이 가져올 ‘미래적인 풍경’에 대한 백남준의 비전을 엿볼 수 있다. 그 어느 때보다 기술 매체가 우리 삶의 지형과 일상을 바꾸고 있는 이 시대에 다시금 미디어가 현재와 미래의 삶에 어떠한 메시지를 던지는지를 ‘미디어 비저너리’ 백남준의 사유를 통해 돌아보는 전시가 되길 기대해본다.

TV 정원, 1974/2002, TVs, 살아있는 식물, 앰프, 스피커, 1채널 비디오, 컬러, 유성, 28분 30초, 가변크기
우거진 수풀 속에 텔레비전들이 꽃송이처럼 피어있는 정원이다. 화면에 나오는 것은 ‹글로벌 그루브›라는 비디오 작품으로 세계 각국, 다양한 분야의 음악과 춤이 백남준 특유의 편집으로 흥겹고 현란하게 이어진다. 이질적인 이미지들을 종합하는 연속적인 줄거리 없이 단순하고 직관적으로 보기를 권유하는 영상이다. 이 정원에서 TV 모니터들은 낯선 각도의 배치로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 관람자는 화면이 하늘을 향하거나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있는 텔레비전을 내려다보게 되며, 하나의 텔레비전 수상기만을 보기보다는 주변의 여러 대를 동시에 바라보게 된다. 미술관이라는 실내에 인공적으로 조성, 유지되는 자연 환경과, 자연과는 상반되는 것으로 여겨지는 테크놀로지를 대변하는 텔레비전이 하나의 유기체적 공간을 이루고 있다. 나뭇잎을 타고 흐르는 텔레비전의 전자적 영상이 다양한 리듬 속에서 생태계의 일부가 됨으로써 백남준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픽셀의 자극과 자연이 내뿜는 초록빛이 함께 어우러지도록 했다.

닉슨 TV, 1965/2002, TV 모니터 2대, 코일, 신호발생기, 앰프, 콘덴서, 타이머, 1채널 비디오, 컬러, 무성, 가변크기
‹닉슨 TV›는 백남준의 초기 실험 텔레비전 중 하나로, 신호발생기를 통해 만들어진 신호를 앰프를 통해 증폭시킨 다음 모니터 위에 설치된 코일로 전류를 흐르게 한다. 이 전류는 스위치를 통해 두 개의 모니터에 번갈아 가며 흐르게 되는데, 이때 흐르는 전류가 TV 브라운관의 전자 빔을 왜곡 시켜 화면에 등장하는 닉슨 대통령의 얼굴을 일그러뜨려 희화화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닉슨은 1960년 존 F. 케네디 대통령 후보와의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미디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낙선하였는데, 백남준은 미디어의 영향력에 주목하여 이 작품을 만들었다.

TV 시계, 1963–1977/1991, 24대의 조작된 TV, 가변크기
백남준의 초기 텔레비전 설치 작품 중 하나로서 총 24대의 모니터로 구성되어 있다. 24대의 모니터는 하루 24시간을 상징하며 각각의 모니터는 다른 기울기의 선을 보여주며 시간을 표현하고 있다. 이는 텔레비전 진공관의 수직 유도장치를 제거함으로써 가능해진 것으로 전자광의 광선 한 줄로 응축된 이미지는 시간을 시각화한다. 24대의 컬러 모니터로 구성된 이 작품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전체적으로 하루의 시간이 흘러가는 느낌을 고요한 명상과도 같은 분위기로 전달하고 있다.

밥 호프, 2001, CRT TV 2대, LCD 모니터 3대, 라디오 및 진공관 TV 케이스, 1채널 비디오, 컬러, 무성, 141 x 116 x 33 cm
밥 호프는 코미디언이자 배우, 가수, 댄서, 작가로 많은 인기를 누리며 라디오, 텔레비전, 영화, 연극 등 여러 분야에서 전방위로 활동하였다. 백남준은 호프를 비롯해 험프리 보가트, 데이비드 보위, 로렌 바콜, 마릴린 먼로 같은 유명 대중 예술인들을 소재로 다양한 작품을 만들었는데 이는 1970년대부터 대중 매체의 파급효과, 미디어의 이미지 소비, 고급 예술과 대중 예술의 경계 등의 문제에 백남준이 관심을 가졌던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1984년 뉴욕의 아티스트 단체인 ‘케이블 소호’에서 제작한 한 방송프로그램에서 호프는 기자회견장에 잠입한 아티스트 제이미 다비도비치로부터 비디오 아트와 백남준에 대해 기습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당시 호프는 비디오 아트가 무엇 인지, 백남준이 누구인지도 몰랐지만 실험적인 예술가들에 의해 전개될 미래의 텔레비전에 대해 기대를 표현하며 그 미래의 일부가 되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백남준의 ‹밥 호프›는 미국 방송 문화의 상징이었던 호프를 로봇으로 만들어 그의 과거이자 미래의 모습을 표현하였다.

피터 무어, <뉴욕의 필름메이커 시네마테크에서 열린 «뉴시네마 페스티벌 I»에 출품 된 백남준의 ‹필름을 위한 선›>, 1964, 흑백 사진, 40 x 59.5 cm
백남준은 1964년 영화제작자 시네마테크에서 열린 «뉴 시네마 페스티벌 I»에서 직접 필름이 돌아가는 영사기 앞에 서서 퍼포먼스를 했고 이 때의 모습을 피터 무어가 사진으로 남겼다. 같은 제목의 설치 작품은 빛에 노출되지 않은 빈 필름이 영사기에서 무한 루프로 돌아가는 영상으로, 영사기의 빛이 낡은 필름을 통과하면 스크린에 스크래치와 먼지 입자들이 화면에 등장하는 작품이다. 따라서 사람이 화면 앞에 서면 자신의 형태와 움직임에 따라 작품의 내용을 새롭게 구성하게 된다.

고속도로로 가는 열쇠(로제타 스톤), 1995, 음각 동판, 86 x 71 cm
백남준이 주창한 ‘전자 초고속도로’의 개념을 작가 자신에게 적용하여 만든 작품으로 나폴레옹 군대가 이집트 원정 당시 로제타 마을에서 발굴한 로제타석의 모양을 본떠 만들었다. 로제타석은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기원전 305년부터 기원전 30년까지 여러 차례 발표 했던 법령을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 고대 이집트 민중문자, 고대 그리스 문자 등 세 가지 언어로 새겨 놓은 돌이다. 이 작품의 상단부에는 비디오 드로잉이, 중간 부분에는 각국의 언어로 기술된 백남준의 예술 이력이, 하단부에는 백남준의 비디오 영상에서 발췌한 클립 이미지가 있다. 가운데 부분에서는 백남준이 음악에서 비디오 아트로 관심을 돌리게 된 계기와 어떻게 플럭서스 예술운동에 동참했는지, 그리고 자신과 영향을 주고받았던 예술가들과의 관계에 대해 한국어, 영어, 불어, 독일어, 일어로 기술하고 있는데 백남준 예술의 발전단계와 흐름을 축약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기획: 이채영(백남준아트센터 학예연구사)
주최 및 주관: 백남준아트센터, 경기문화재단
출처: 백남준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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