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문화공간여인숙
2016년 11월 7일 ~ 2016년 11월 16일
핑크_1, 40*17cm, 종이 위에 연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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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창작문화공간여인숙 레지던시 결과 보고전 지금 _ 여기 군산 :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변한것과,변하지않은것》이전하는것– 시선의 얼룩, 시간의 무게, 남겨진 사소한 것들
도시 공간에서 일어나는 백정기의 작업은 그 화법에 있어서 완 고하고 집요하다. 무엇보다도 그의 작업은 늘 아이러니로 가득 하다. 그런데 창작문화공간 여인숙에서 열린 결과보고전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에서는 그의 완고함과 집요함, 아이러니는 시간의 층위를 다루며 한층 시적인 것이 되고 있었다.
1. 지도에는 다리가 아팠거나 자전거가 고장 나는, 그런 시시콜콜 한 이야기가 날짜, 시간과 함께 빼곡하게 적혀있다. 나무 바퀴를 단 자전거나 모터사이클에 장착한 기록·출력 장치가 <rmp(rid- able multimedia player)>이며 도시를 떠돌며 지도 위에 남긴 기 록이 <Underline>이다. 도시 이미지 수집가일 수도, 표류와 전 용을 실험하는 상황주의자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 백정기의 행보는 종교적 수행과도 흡사하다.
지도제작술은 세계를 추상화하는 기술이다. 국제 표준의 측량기 술로써 기록한 지리적 형상 위에 정치·경제·행정·역사·통계 등에 관련한 정보를 삽입하는 것이다. 그런데 작가는 이 추상화된 세 계 위에 지극히 사적인 경험을 덧씌운다. 함께 촬영된 영상에는 길표면의요철,비바람같은작가의신체적경험이지문처럼찍 혀있는데, 그 자국은 너무도 선명해서 오히려 거리의 풍경을 가 린다. 작가는 대상-세계를 파악하려거나 그 만남을 즐기지도 않 는다. 프로젝트는 작가의 자신의 감각기관으로 수렴한다.
결국 <Underline>과 <rmp>는 지도 위에 자신을 기입하고, 자 신의 시선에 세계를, 세계에 자신의 시선을 기입하는 작업이며, 스스로를 확인하는 작업이다. 그렇게 보면 길 위에 놓인 작가의 신체는 세상을 경험하는 인간조건에 대한 은유가 된다. 스스로 를 상품으로서 드러낼 수밖에 없도록 구조된 현대사회에서 체 계의 코딩에 동화되지 않고 자신의 방식대로 자신을 세계에 외 연하기 위해 작가는 필사적이 된다. 작가의 시선이 지식을 위 한것이아니라그자체가경험과수행일경우,그리고그경험 과 수행이 집요하게 반복될수록, 고행에 가까워질수록, 더욱 많 은 증거와 증인을 가질수록 세계-내-존재는 무게를 갖는다. 백 정기는 그렇게 자신의 특수성과 세계의 보편성 사이의 위계를 뒤엎는다.
2.일본강점기에개통된장항선은몇년전철도개량사업을거 쳤다. 여객철도는 장항을 비켜가며 남쪽 지역으로 연장되었고, 장항지역을 선회하던 부분노선은 화물철도로 용도가 변경됐다. 장항역을 비롯한 일부 역은 간이역으로 격하됐고, 또 몇몇 역은 아예 폐역이 됐다. <장항선>, <바위돌꽃>은 여객철도의 종착역 이던 시절의 장항선을 그리는 작업이다.
장항역을방문한작가는그곳의과거를더듬기위해어떤구체 적인 대상을 재현하거나 서술하지는 않는다. 대신 과거에 있었 을 시선을 상상한다. <장항선>에서 카메라를 든 작가는 철로를 따라 앞을 향해 걸어간다. 기차의 시선을 따라가는 것이다. 영상에 는 현재 운행되는 장항선의 정차역 안내방송이 더빙되고, 이제 사 라진 역의 이름들은 음성 대신 자막으로 처리된다. 전차대는 종착역에서 열차를 회차시키기 위한 시설로, 현재 장항역 의전차대는새로조성된공원에둘러싸여기념으로존재할뿐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하지만 작가는 <바위돌꽃>에서 아직도 움 직이고 있는 장항역의 전차대를 상상한다. 작가는 자신의 시선을 전차대 위에 올려진 기관차의 시선에 일치시킨다. 한 자리에서 촬 영한 사진을 연결하여 만든 영상 속에서 상상의 기관차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마치 꿈결처럼 아직 어두운 새벽부터 동틀 무렵 까지 제자리를 맴돈다. 이런 시선의 재연은 일종의 고복의식처럼 느껴질 수도, 돌아갈 수 없는과거에대한아련한향수로다가올수도있겠지만,작가가담 담하게되살린시선이닿은곳의풍경과계절은진부할정도로일 상적이고 평범한 것이다. 이방인인 작가가 그 공간에서 불러온 이 미지는 현재의 시선으로 바라본 과거의 것이 아니라 과거의 시선으 로 바라본 지금이다. 그것은 폐허가 아니라 역사의 부침 안에서도 살아남는 무엇이다.
3. 아직 진행 중인 <핑크remake>는 몇 년 전 군산을 배경으로 제작 된 영화 <핑크>(2011)를 원전 텍스트로 삼았다. 먼저 작가는 영화 의 150여 씬을 구분하고 스토리보드 작업에 착수했다. 작가는 스토 리보드에서 등장인물을 삭제한 공간을 치밀하게 그리면서 인물들 의대사와행동은그림아래에흐릿한연필글씨로적어넣는다.그 리고 드로잉이 완성된 장소를 찾아가서 촬영하는데, 시간대, 앵글 을 원작에 최대한 근접시키고, 원작영화와 촬영분을 교차편집하면서는 미세한 색감까지 조절한다. 이렇게 제작되는 <핑크remake>는 씬마다 이질적인 시간들이 겹 쳐진다. 일제 강점기에 이루어진 근대화의 흔적들이 남아있는 군산 의 이국적인 풍경에, 영화가 촬영되면서 세팅이 더해졌고, 작가가 그곳을다시촬영할때에는더해진세팅이그대로주민들의실생 활에서 활용되거나 폐기됐다고 한다. 원작영화의 사운드는 그대로 재생되는 반면에 배우들의 모습은 마치 유령처럼 나타났다 사라지 면서화면속공간은눈에띄게혹은미세하게변한다.원작영화의 쓸쓸하고 우울한 색조는 시간이 중첩되며 애잔함을 덧입는다. 하 지만 배우가 사라진 자리에 현재진행중인 실제 삶의 흔적들이 불 쑥 침범할 때면 애잔한 색조는 흩어지고 선명한 무엇이 스쳐간다.
4.‘내가유난히무심한탓인지몰라도지금은사람사는곳은어디 나다같다는생각이더크다.’드로잉<다름없음>에대한작가노 트에서 발췌한 문장이다. 연필로 쌓아올리듯 그린 견고한 드로잉 과 ‘무심’하다거나 ‘어디나 다 같다’는 표현은 도무지 어울리지 않다. 그에게있어다름없다는말이진부함에대한실망을표현하는것 은 아닌 듯하다.
작가는오래된집들이밀집한군산의어느지역을그린이드로잉 에 대해 말하면서 자신은 역사가 아니라 단지 ‘너덜너덜한 딱지’를 그리려했다고 했다. 그것은 대상에 대한 욕망, 지식에 대한 욕망이 아니라자기자신의시선에대한욕망,초점을맞추는행위에대한 열망의 표현일 것이다. 시선이 맺히는 이미지의 단단한 표면에는 새겨지는 것은 시간의 지식이 아닌 시간의 무게이다. 글_ 서정민 (예술기획)

핑크_6, 40*17cm, 종이 위에 연필, 2016

핑크_9, 40*17cm, 종이 위에 연필, 2016
주관 : 문화공동체감
주최 : 전라북도, 전라북도문화관광재단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출처 : 창작문화공간여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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