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도스
2016년 8월 17일 ~ 2016년 8월 23일
심연 , 순지에 먹, 금분, 122×105cm,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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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onody of light -백지은 작가노트
샹들리에의 빛. 그 빛 너머에 대한 호기심.
의식을 할 수 있는 대상과 무의식으로 느껴지는 감각.
그 아스라한 경계 사이에 서있는 나의 존재.
너를 보면 그때의 내가 떠오르고, 그곳을 비추는 너는 지금의 나를 선택했다.
- 작업노트 中
인간의 경험은 공간의 지각에서부터 시작된다. 공간을 지각하는데 있어서 인간의 감각은 마치 촘촘한 채와 같아서, 같은 공간에서의 체험이라도 감각에 여과되어 인식하게 되는 사유는 개인의 고유한 경험을 만든다. 공간을 체험하는 일은 단지 물리적인 모습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사물의 물리적인 모습에서 시작했을지라도, 그 속에서 파생된 공간적 분위기(spatial atmosphere)에는 정신적인 무형(無形)의 요소가 녹아있고, 우리는 각자의 감각으로 내면으로의 사유(思惟)를 시도할 수 있다.
이처럼 작가의 ‘감각’으로 인지되는 공간에서의 ‘경험’은 회화(繪畫)에 구현 될 때 개인의 사유를 기반으로 자유로운 형상을 구성하게 되고, 이는 고유의 심상(心象)적 이미지라고 볼 수 있다. 본인이 바라본 빛의 공간은, 인간의 시각과 동작을 초월한 무한대의 공간으로 안내하고 그 사이에 만나는 자유로운 정신의 무한대성으로의 확장을 열어준다. 이 안에서 감각을 통해 공간이 인간에게 어떻게 흡수되어지고 받아들여지는지는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으로 표출되기 때문에, ‘무한한 가능성을 둔 감각’을 통한 ‘무한대의 경험’의 상호작용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샹들리에(chandelier)는 예전부터 본인에게 여러모로 관심을 끄는 대상이었다. 유년기 때 살던 집에 달려있던 샹들리에를 떠올려 보면, 본인에게 있어서 어린 시절을 상기시켜주는 향수의 매개체라는 개인적인 의미도 있지만, 집에 있던 샹들리에가 기억에 남는 더 큰 이유는 친구들이 집에 놀러왔을 때 우리 집의 샹들리에가 예쁘다고 말하며 부러워했던 기억 때문이다. 어린아이들도 느낄 만큼 샹들리에가 장식미를 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샹들리에를 볼 때면 그 빛이 이루어내는 황홀한 분위기에 취해 그곳에 서있는 것 자체가 샹들리에의 빛이 나를 예쁘게 비추어 주는 느낌도 들었고, 이러한 약간은 허영기 있는 묘한 심리감에 성인이 되었을 때도 어릴 때와 다름없이 샹들리에를 보는 것 자체가 기분이 좋았다. 이런 샹들리에의 빛이, 장식되어있는 장소에 따라 느낌이 다르게 다가오는 것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각이었다. 예술가로서 그림으로 사람들에게 전달해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샹들리에의 빛을 바라보면서 자연스레 샹들리에와 나를 동일시시키게 되었다. 감각을 통한 사유는 결국은 나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자아라는 존재에 대한 묵상과 명상, 그리고 감정이입. 그 어떠한 대상으로부터 나오는 감각의 사유도 결국은 나의 이야기로 귀결되며 주체인 ‘나’를 배재하고서는 이야기가 진행 될 수가 없다. 이는 곧 본인의 감각에 쌓여진 빛이 아로새긴 단상에 대한 기록으로서, 본인 사유와 연결된 화폭과의 접점으로 인식된다.
빛이 산란(散亂)하는 모습은 빛의 입자(粒子, particle)들이 집적되어 이루어낸 아름다움의 집합체이다. 이와 같은 사유는 장식적 빛에서부터 숭고의 빛으로의 감각변화로 그려진다. 작업을 하던 중 본인은 사유의 흐름에 따라 장식적 빛에 대한 감각과 경험이 숭고의 빛으로 향해감으로써 형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생각으로 자연스럽게 옮겨갔다. ‘형상(形象)’이라는 것은 내가 타인에게 사고의 틀을 제한해 주는 것과 마찬가지라서 나 스스로도 갇혀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근원적 감정으로 환원되어 감에 따라 형상이 자연스럽게 ‘무형(無形)’으로 추상화(抽象化)되기에 이르렀다. 작업을 할수록 점점 해체되어가는 샹들리에 형상에서 남게 되는 입자의 존재가 초반과는 다르게 다가왔다. 조형적으로 꾸며내는 크리스탈(crystal) 빛의 입자의 개념보다 근원적 빛 자체가 산란할 때의 입자로서, 빛을 이루는 세포라고 표현하면 그 의미가 유사할 것 같다. 빛의 입자들이 모여 추상적 화면을 구상하고 형이상학적 주제를 나타내는 것이 본인에게 굉장히 흥미롭게 다가왔다. 작품을 하면서도 점점 초월적 정신성 자체를 지향하는 주제로 느껴져서, 본인이 느꼈던 감각과 경험 표현에 더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sky)에 따르면, 모든 사물의 비밀스러운 영혼을 체험하는 것을 ‘내적인 시선’이라고 부른다. 인간의 영혼은 내적인 울림을 통해 사물의 영혼을 느낄 수 있고, 이 울림을 들을 수 있으면 사물의 본질이 현현(顯現)된다. 사물의 내적인 울림은 영혼적인 진동(vibration), 즉 심원을 건드리는 정서의 동요를 생산해 냄으로써 이 진동상태는 무엇이라고 규정할 수는 없지만, 인간에게 미치는 근본적인 감정에 따른 초감각적인 작용의 원인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초감각적인 작용은 본인의 빛에 대한 끊임없는 감각적 사유와도 연결된다.
먹색조(墨色調) 안에서 은은하게 나타나는 입자들은 조용하고도 감각적인 빛을 투영한 자아의 자각과 내면적 정신성을 은유적으로 그려낸다. 그 빛은, ‘한 점(點)은 내적인 울림’이라는 표현에서처럼 점과 유사한 입자 한 알 한 알로 집합되거나 해체되어 먹(墨)의 모노톤(monotone)안에서 내적인 멜로디(melody)를 울려낸다. 이렇게 이루어진 빛의 단선율(單旋律, monody)은 예로부터 조선이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고 불릴 때 느껴지는 언어적인 의미 자체의 감각처럼, 빛의 인식에서도 마치 고요하고 앤틱한 수묵 빛을 띠고 있을 것만 같은 동양의 미적 정서를 담는다. 그 빛이 한지에 부드럽고 습윤하게 스며든 먹과 함께 화폭 전체에 은은히 배어 움직이길 기대한다.
본 전시를 통해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시대 속에서 수묵화의 정적이고 부드러운 동양의 미적 감각을 깨우고, 이를 통해 빛의 단선율(The Monody of Light)을 경험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황홀한 명상, 순지에 먹, 금분,호분, 130.3×162.2cm, 2014

Luminous shards, 장지에 혼합재료, 53×65.5cm, 2016

The Illusion of light, 장지에 먹, 금분,은분 26.5x34cm, 2015
출처 - 갤러리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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