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 풀무질
2022년 11월 14일 ~ 2022년 12월 10일
'만들기'는 소유의 구속과 욕망의 상상 사이에서 유희하는 방식이다. <법정 스님의 다잉 메시지>라는 전시의 제목은 무소유(無所有)* 정신이 남긴 희미한 울림을 애도하며, 소유로 인한 번뇌의 극복 불가능성을 함의한다. 두 작가는 요청과 제작, 즉 일종의 커미션(commission)* 행위를 통해 소유욕의 불충족 상태를 다면화한다.
두 작가는 강세윤이 요청하고 임도연이 제작한다는 원칙에 합의했다. 강세윤은 물건 다섯 가지의 제작을 요청했다. 그것들은 의자, 꽃병, 장식장, 상, 카펫이다. 요청은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내러티브를 통해 이루어졌다. 이 내러티브에서 숨길 수 없는 패배감과 자기연민은 임도연의 제작 행위를 거치며 희석된다. 요추 받침대가 달린 의자가 갖고 싶다는 말에 정말로 요추 모양 의자가 만들어진다. “아니, 이거 말고 시디즈.*” 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요추 받침대*가 달리고 싱크로나이즈드 틸팅(synchronized-tilting)*이 되는 이상한 의자를 보다 보면 욕망의 대상이 과연 편한 의자였는지, 비싼 가구였는지, 또는 소유가 증명하는 개인의 특별성인지, 귀한 존재로 대접받는 일이었는지 헷갈리게 된다. 이것 중 무엇 하나 만족하지 않지만 제작된 결과물은 특유의 상상력으로 애먼 부분을 충족한다. 그렇게 임도연의 제작은 요청의 욕망을 충실히 실현하면서 동시에 빗나간다. 네가 가질 수 없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면서, 딱히 뭘 주는 것도 아니다.
강세윤의 요청은 영상에서 텍스트의 형태로 나타난다. 감상자는 스크린 밖이 아닌 안에 위치한다. 이미지 공간 안에서 여러 개의 화면을 본다. 시선은 흩어지고, 몰입은 방해된다. 텍스트만이 명확성을 유지한다. 영상은 요청문의 원형을 보존하는, 제작물에 대한 주석이다. 동시에 소유욕의 불충족이라는 존중받지 못하는 고통에 대한 농담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존중받을 수 있는 고통을 갖기 위해 예능 자막으로 민주화 운동 이야기를 들어야 하고, 존중받지 못하는 고통을 참기 위해 로맨틱 판타지 세계관에 몰입해야 해서 발생하는 이인증*을 감각시킨다.
두 작가의 요청-제작 과정은 감상자를 초대한다. 퍼포먼스 <터키 아이스크림* 받기>는 감상자에게 요청을 남길 것을 제안하고 두 작가는 전시가 진행되는 도중 요청을 기반한 제작을 진행한다. 터키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줬다가 빼앗기를 반복하는 판매자와 허공을 잡았다 놓았다 하는 구매자의 동작은 그 자체로 하나의 안무다. 두 작가는 이처럼 이도 저도 아닌 상태 속에서 감상자가 자신의 욕망과 결여의 형태를 재경험하기를 희망하며, 애먼 충족의 가능성을 실험하고자 한다.
*무소유 : 가진 것이 없이 모든 것이 존재하는 상태
1972년 『동아일보』에 실린 법정 스님의 수필로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소유욕이 가져다주는 비극을 전하는 작품
*커미션 : 주문, 의뢰, 발주 등을 뜻하는 영단어로서 개인의 필요로 다른 개인에게 창작 활동을 요청하는 개념
*시디즈 : 한국의 고급 사무용, 학생용 의자 브랜드
*요추 받침대 : 시디즈 의자에 부착된 허리 받침대
*싱크로나이즈드 틸팅 : 몸을 뒤로 젖힐 때 인체의 움직임에 따라 등판과 좌판이 각기 다른 각도로 움직이는 기능
*이인증 : 자기가 낯설게 느껴지거나 자기로부터 분리, 소외된 느낌을 경험하는 것으로 자기 자신을 지각하는 데에 이상이 생긴 상태
*터키 아이스크림 : 튀르키예의 전통 아이스크림인 돈두르마(dondurma)를 의미. 판매자가 아이스크림의 독특한 질감을 이용하여 방문객에게 일종의 공연을 보여주기 때문에 튀르키예 관광 상품으로도 인기가 있음.
참여 작가: 임도연, 강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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