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스페이스3
2016년 12월 2일 ~ 2016년 12월 14일
보이는 것 2부 : 이경희, 이지성, 한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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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
급속한 첨단기술의 발전을 통해 새로운 것들이 쏟아져 나오고, 기존의 것들은 그 효율성을 상실하며 새로운 것들로 빠르게 대체되고 버려지는 현대사회에서, 기술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현대 기술사회에서 우리의 인식체계에 의해 규정되는 사물의 가치는-인간의 인식활동에 있어 사물의 본질을 보는 것이 아닌-그 사물의 도구적 가치로 판단 되어진다. 따라서 사물은 효율성과 가치판단에 의해 오로지 도구 또는 부품으로서의 존재가 되며, 이렇게 사물화된 대상들은 산업발전의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대체되고 있다. 다시 말해, 현대 기술에 의해 사물은 그 기능이나 사물 이면의 본질에 상관없이, 쓸모 없음으로 인해 가치기준조차 없는 폐기물로 전락한다. 이 가치 절하된 사물들은 얼마 전까지도 사용되었거나 아직도 우리 주변에서 기능하고 있음에도, 새로운 것들로 인해 빠르게 그 효율성을 상실하며, 소용가치가 없는 것이 되어 버려지고, 허망하게 잊혀진다. 그리고 이것들은 시대에 뒤떨어지는 아나크로니즘적인 것, 즉, 현재나 미래의 것이 아닌, 과거의 것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이러한 시대착오적라고 여겨지는 것들은 분명 현재의 것이다. ‘현재의’ 것으로서 ‘현재 안’에 존재하지만, 지금-여기의 현재라는 시간 속에서 ‘지나간’이라는 의미를 안고 부유하는, 일종의 모순적인 존재들이 되어버린 것이다. 우리의 인식 체계 안에서 과거로 인식되는 아나크로니즘적인 것들은 과거와 동시에 현재의 것들이며, 현재의 것들은 과거와 미래를 포함한다. 따라서 아나크로니즘 역시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의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대 기술사회가 만들어내는 급변하는 풍경들은, 과거의 것들 그뿐만 아니라 현재의 것들조차 그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느낄 새 없이 빠르게 과거로 만든다. 근대 산업기술의 신화는 잊혀진지 오래고, 근대의 기계들은 우리 주변에서 기능하고 있지만 인식의 대상조차 되지 못할 뿐만이 아니라, 최근의 기계들 역시 더 이상 우리에게 열망의 대상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곧 과거가 될 현재의 디지털 기술은 떠나 보내고, 디지털 기술이 만들어 낼 또 다른 새로운 신화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이러한 급변하는 테크놀로지 시대에서 기술에 대한 물음을 갖는 것은, 유토피아가 될지 암울한 디스토피아가 될지 모르는 기술이 만들어내는 풍경에서 생성되고 소멸되는 존재들의 가치에 대한 의문을 던지는 것이다. 동시에 사물의 의미, 가시성, 가치들을 전환시킬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을 모색 함으로서, 존재자들의 가치를 전복 또는 확장시키고자 하는 열린 인식체계를 지향하고자 하는 것이며, 기술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우리 삶의 태도에 대한 질문이다.
이지성
보이는 것에 관한 소고
일상에서 발견하는 낯선 경험을 기록할 때 내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는 ‘실제’다. 알던 것과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하며 느끼는 허무함과 동시에 새로운 사실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단어다. 나의 작업노트에 이 단어가 많이 쓰이게 된 것은 ‘본다’는 행위를 의식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어느 날, 여느 때처럼 매일 봐오던 생활 속 풍경에 대해 나는 그것을 보고 있다고 생각할 뿐, ‘제대로 본’ 일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시초는 저 멀리 우뚝 솟은 남산타워였다. 남산타워를 보고 있지만, 나는 남산타워를 본 것이 아니라 남산타워를 안다는 사실을 확인했던 것뿐이다. 그래서 나는 말 그대로 남산타워를 자세히, 열심히 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기존 관념 속 이미지와 현장에서 발견한 모습이 서로 충돌하였고, 그것을 설명할 때에 나는 ‘실제로’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사용했다. 새로운 것을 알게 되었다는 흥분이 자아낸 현상이다. 실제로 남산타워 탑신부의 표면은 페인트로 여러 번 덧칠한 듯 울퉁불퉁하다. 또, 콘크리트 거푸집 흔적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이 흔적은 높이 90cm 간격마다 세로로 자국이 나 있고 약간 불규칙하다. 실제 둘레는… 이 과정에서 대상은 내가 ‘알던 것’과 ‘실제의 것’으로 분리되었고, 그사이에는 내가 ‘본 것’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직감적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은 내가 본 것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작한 작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대상을 보던 중 가장 큰 괴리를 가져온 그것의 크기와 질감이다. 따라서 실측을 하거나 고객센터를 통해 제원을 얻는 등의 수치적 정보와 표면을 근접 촬영한 사진을 제작에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실체화된 ‘내가 본 것’은 실제의 대상을 볼 때와 (당연하게도)감흥이 다르게 인다. 이 작업은 실제의 대상과 그 대상에 대한 관념(알던 것) 사이 어디쯤 자리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난 후에 같은 대상으로 다시 작업한다면 지금과 다른 모습이 되어 그사이 다른 어디쯤 자리할 것이다. 이 작업으로 내가 지향하는 바는 대상의 실제에 가까워지고자 하기보다 대상에 관한 관찰과 사유의 폭을 넓히는데 있다. 그리고 그것이 이루어지는 장소는 우선, 가까운 주변이다. 매일 통학을 위해 외출하면서 시야에 들어오던 <남산타워> 외에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남산타운아파트>, <까치집, 오금로 16>은 유년기부터 자라온 익숙한 주거 환경에 눈을 돌리자 새로운 층위의 대상으로 다가온 소재다. 이렇듯 작업의 착수는 그저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에 인식의 문을 열어 놓고 기다리는 데서 시작한다.
한소현
언젠간 행복해지겠죠
분명 그 곳으로 가면 행복할 것이라는 말에 그 길을 잘 따라왔다.
행복하게 살고 있어야 할 청춘이지만 왜 여전히 난 행복하지 않는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누구에게 물어야 할지 알 수 없다. – 작업노트 중
지우고 싶은 1년이 있다. 선택할 수 있는 행복이 도무지 보이지 않았던 가장 불행했던 1년. 사고 전반과 성격, 가치관을 바꿔 놓았고, 자연스러웠던 일상과 관계들을 마치 한번도 해 본 적 없는 것처럼 낯설게 만들어 버린 16살. 갑작스레 강남으로 전학 온 나는 그들과 섞일 수 없어 죽어있던 것과 마찬가지였는데 사람들은 나에게 성공했다고 그들의 잣대대로 해석하고는 했다.
우리 생의 궁극적인 목적, 그 끝엔 행복이 있다. <언젠간 행복해지겠죠> 연작은 트라우마로 남은 성장 과정, 일상에서 겪은 부조리, 불안, 불편함을 모티브 삼아 행복에 대해 역설하는 작업이다. 공공 혹은 개인이 공유하는 동시대의 시간성과 공간성의 맥락에 심리적인 풍경을 조성하여 부조리한 일상과 사회가 맞닿는 경계를, 그리고 지금 여기 재생되고 있는 삶의 여러 층위들을 응시하고 의식적으로 고찰하려는 시도이다. 본 전시의 작품은 <언젠간 행복해지겠죠> 연작 중 오브제 작업으로, 트라우마로 남았던 1년을 부정하는 의식으로 중학교 3학년 때 착용했던 교복을 긴 시간에 걸쳐 해체하고, 하나하나 매듭지어 연결하여 실타래로 엮어낸 작업이다.
강남 프로젝트 – 위대한 유산 Great Expectations
<강남 프로젝트>는 행복에 대해 역설해보고, 소외된 시선과 부조리를 표상하는 관념적 사각지대에 주목하던 이전 작업들과 연장선상에 있는 작업으로, 목적을 상실한 채 기이한 생존의 리듬으로 지속되고 있는 대치동 풍경에 대한 기록이다. 대치동 풍경이 외시하는 일상은 도무지 익숙해질 수 없는 기이하고도 낯선 풍경들로 생경함을 자아내는 듯 하나, 실은 그 곳에서 흔히 목격되는, 지극히 일상적인 풍경이라는 사실에 문득 아득해진다.
강남 대치동은 대한민국 최고의 교육열을 자랑한다. 청소년기부터 대치동에 거주해 온 바, 이 곳 대치동의 교육적 욕망이 과열되어 있는 만큼 그 안에서 행해지는 기형적 행태들 역시 너무도 쉽게 묵과됨을 목격한다. 분명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느끼면서도 우리 아이가 무한 경쟁의 사회를 살아가려면, 좋은 대학에 가려면, 좋은 직장에 취직하려면, 사회적 지위를 얻기 위해서라면, 누가 근본적으로 이 고리를 끊어내기 전까지는 멈출 수가 없는 것이다. 너도 하니까 나도 한다는 불안 심리와 해답을 알 수 없으니 당장은 어쩔 수 없다는 식의 정당화, 그리고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식의 무한 낙관주의는 결국 이 구조를 견고하게 만드는 카르텔을 형성하고, 사회는 재차 견고하게 경직된다. 정성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한 줄기의 믿음으로 대치동은 쉬지 않고 굴러간다. 교육의 차별화는 학벌로, 직업으로, 사회적 지위와 소득 수준으로, 더 나아가서는 배우자와 다음 세대의 문제로까지 이어지는 조건이기 때문에, 한 개인의 평생을 좌우하는 근본적 생존기반이 된다. 과거 권력, 신분, 지위와 같은 계급적 요소의 대물림으로 상징되는 대관 의식은 그 모습을 달리하여 여전히 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어디로 흘러가는지 누구의 욕망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 찰스 디킨스의 소설 <위대한 유산>은 일본어로 된 제목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생긴 오역으로, 원제는 <Great Expectations>. 본래는 ‘막대한 유산’ 혹은 ‘대단한 기대’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정확한 의미에 가깝다고 한다.
출처 - 갤러리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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