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공간루프
2026년 8월 14일 ~ 2026년 9월 12일
전시는 하나의 미세한 이질감에서 출발한다. 동아시아의 도시들은 어느새 사랑의 이미지들로 가득 차 있다. 광고와 드라마, 소셜미디어와 자기계발서는 끊임없이 사랑을 이야기하고, 로맨스의 서사를 반복한다. 사랑은 도시를 이루는 풍경이 되었고, 같은 문장을 되풀이한다. “사랑하세요! 고령화 사회니까, 가능하다면 조금 더 빨리!” 그 다급함 속에서 사랑은 따라야 할 절차이자 미리 쓰인 각본, 수행해야 할 기대가 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끊임없이 권유받는 이 사랑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그것은 대개 이성애 로맨스를 중심으로 구성되며, 가족과 공동체, 그리고 미래에 대한 상상을 조직하는 사회적 서사로 기능한다. 이러한 서사는 가부장 자본주의의 재생산 논리를 떠받치며, 여성에게 사랑하고 돌보는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그 질서를 지속시킨다. 그 결과 여성의 몸과 욕망, 친밀성은 사랑의 형태로 끊임없이 규율되고 평가된다.
《(불)투명한 마음》은 사랑을 기반으로 작동하는 사회적 규범이 여성의 몸과 욕망, 친밀성을 어떻게 형성하고 규율하는지를 ‘순정(純情)병원’이라는 가상의 진단 공간으로 무대화한다. 병원이 증상을 진단하듯, 이곳은 사랑을 둘러싼 사례들을 진단하고 분류하며 무엇이 올바른 사랑인지, 어떤 욕망이 자연스러운지를 판단한다. ‘순정’은 순수하고 올바른 사랑이라는 이상을 호출하며, 사랑의 이름으로 여성을 구성하고 평가해 온 규범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관람객은 진료의 형식을 띤 보이스오버를 따라가며, 순정병원을 경험하게 된다. 사랑을 둘러싼 권고와 기대는 진료 기록으로 번역되고, 각 작품은 하나의 사례로 읽히기 시작한다.
첫 번째 사례인 ⟨어항⟩(2023)은 여성을 둘러싼 현실을 먼저 보여준다. 작가가 아부다비에서 촬영한 이 작품은 불법 마사지 업소를 배경으로 한다. 고객에게 선택받기 위해 전시된 여성들은 관상용 물고기와 중첩되는데, 이 어항 속 물고기는 여성들의 사회적 위치를 드러낸다. 아름답게 감상되기 위해 존재하는 관상어처럼, 여성은 사회적 구조 안에서 보호의 대상이자 통제와 욕망의 대상으로 놓인다. 이러한 모순 위에 세워진 순정병원의 진단 시스템 역시 불안정한 토대에 기반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한편, 두 번째 사례는 두 개의 작업으로 구성된다. ⟨정물 (여기에는 볼 것이 없다)⟩(2026)의 다마고치는 전시장 곳곳에 마치 방치된 것처럼 놓인 채 관객의 동선 속에서 문득 모습을 드러낸다. 지속적인 관심과 보살핌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는 다마고치는 작품 속에서 부패해가는 살점을 연상시키는 유기적 형상에 감싸인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화면에 쿠로코(黒子)가 등장하면서, 방치된 것처럼 보였던 장면은 다르게 읽히기 시작한다. 일본 전통극에서 쿠로코는 무대의 소품과 장치를 움직이면서도 보이지 않는 존재로 남는 인물이다. 규범적 사랑 속에서 여성은 사랑받고 보호받아야 할 존재로 호명되는 동시에, 자신의 존재를 온전히 바쳐 보이지 않는 돌봄과 헌신을 수행하며 자신을 지우도록 요구 받아왔다. 그러나 작품 속 쿠로코는 더 이상 타인을 위해 자신을 지우지 않는다. 쿠로코는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며 자신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그의 몸짓은 더 이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수행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유희가 된다.
두번째 작품, ⟨나의 마음을 (언)록⟩(2025)는 오토메 게임(乙女ゲーム)에서 출발한다. 여성 플레이어가 남성 캐릭터와 사랑을 경험하는 연애 시뮬레이션 장르인 오토메 게임은 오늘날 중국의 일부 팬 커뮤니티 문화에서 ‘일일 남자친구’ 문화를 통해 현실로 확장된다. 한 여성은 게임 속 남성 캐릭터를 연기하고, 다른 여성은 그 존재를 통해 꿈꾸던 사랑을 경험한다. 앞선 사례가 사랑에 기대되는 관계와 역할을 비틀었다면, 이 작품에서는 서로의 수행을 통해 사랑의 관계와 역할을 새롭게 만들어낸다. 이들에게 사랑은 단순히 현실을 대체하는 환상이 아니라, 현실에서 쉽게 허용되지 않았던 욕망과 친밀성을 새롭게 경험하고 향유하는 방식이 된다.
세 번째 사례 ⟨초상화⟩(2026)은 사랑을 하나의 기원보다 시간 속에서 형성되는 관계의 과정으로 바라본다. 문화대혁명 속 사랑 없이 시작된 조부모의 결혼은 2025년 발렌타인데이부터 서로의 초상화를 그리는 느린 몸짓을 통해 현재로 이어진다. 일 년에 걸쳐 서로를 바라보는 시간은 사랑을 로맨틱한 시작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함께 살아온 삶을 통해 축적된 친밀감과 돌봄으로 드러낸다. 병원은 사랑을 진단하고 분류하려 하지만, 서로를 오래 바라보는 두 사람의 시선은 진단 체계가 끝내 포착하지 못하는 관계의 시간을 조용히 드러낸다. 이는 사랑이 고정된 형태를 갖는 것이 아니라, 각 시대의 사회적 조건에 따라 함께 살아온 삶 속에서 서로 다른 형태를 취해왔음을 보여준다.
마지막 사례 ⟨고리가 끊어지면, 매듭은 풀린다⟩(2024)은 이러한 질문을 공동체의 차원으로 확장한다. 작품은 재개발에도 불구하고 상하이의 오래된 화이극(淮劇)¹ 극장을 떠나지 않는 극단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이주민인 그들은 상하이에 정착했지만 끝내 도시의 주민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한다. 소외와 배제를 경험한 이들은 극장을 중심으로 함께 살아가며 서로를 돌보는 공동체를 만들어간다. 혈연이나 결혼이 아닌 돌봄을 통해 형성된 이 공동체에서 공연을 이어가는 일은 단순히 문화적 유산을 보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동체를 지속시키기 위한 실천이다. 이 작품은 돌봄이 국가가 인정하는 핵가족 제도의 바깥에서도 존재할수 있으며, 서로를 돌보고 함께 살아가는 느리고 지속적인 실천이 끈질긴 저항의 형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전시가 진행될수록 사례들은 병원이 부여한 범주를 점차 벗어나기 시작한다. 함께 시간을 살아낸 관계는 하나의 규범적 서사로 설명될 수 없고, 수행된 사랑을 가짜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결국 오류를 만들어내는 것은 사례들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삶을 하나의 언어로 설명하려는 진단 체계 그 자체이다. 《(불)투명한 마음》은 사랑의 이름으로 관계와 삶의 방식을 규정하고 판단해 온 규범적 언어를 들여다 보며, 그 바깥에서 오랫동안 존재해왔지만 좀처럼 이름 붙이기 어려웠던 관계와 공동체, 삶의 방식들을 드러낸다.
글: 김선 (독립 큐레이터)
¹ 화이극은 중국 장쑤성에서 시작된 전통적인 중국 지방극의 한 형태로, 노래와 연기, 음악을 결합한 공연 예술이다.
참여작가: 비비 주 Vivi Zhu
주최/주관: 대안공간 루프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시각창작주체
기획: 김선
출처: 대안공간 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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