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조선
2015년 11월 11일 ~ 2015년 12월 2일

소설 전보경
-작가의 운명에 대하여-
글쓴이, 대필자, 신현진
*
전보경의 스튜디오, 2012년 4월 23일 8시경.
‘나는 전보경이다. 나는 전보경인가? 나는 더 이상 전보경이 아닐 수도 있다. 며칠 전에는 어머니가 어디 00도령이라는 신내림을 받은지 얼마 안되는 용한 점술가에게서 이름을 바꾸면 좋다는 말을 듣고 ‘도연’과 ‘근영’이라는 이름을 들고오셨다. 그것도 하필이면 연예인 이름만 골라서. 이런 이름으로 바꾸면 사람들한테 미안해질 듯하다. 당신께서 여지껏 이 모양새로 길러 놓으시고선 전도연이 되라 하신다. 더 센 이름을 가져오셨더라면 차라리 나을걸’
이렇게 일기인지 낙서인지 모를 문장들을 끄적이던 보경은 고개를 들어 하아~ 하고 한숨을 길게 내쉰다.
‘임범묵 정도는 세다고 하겠다. 그러고 보니 이름을 바꾸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임근준, 이정우, 임범묵이 모두다 한사람의 이름이고 한만수, 반이정이 한사람이고 김홍중이 김원방이고 시립미술관 김홍희 관장은 규곡이라는 호를 즐겨 쓰곤했다. 다들 이론가네. 이들도 작명소에서 새 이름을 받고 운명이 폈을까? 이는 학문만으로는 자신의 운명을 헤쳐나가기에 힘이 부치다는 걸 의미할지도 모른다.’
눈 앞의 빈공간을 바라보며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있으려니 보경의 생각은 보경의 진로를 제비뽑기로 결정하자던 선배언니와의 만남으로 흘러간다.
“너 지난번 전시는 참 다르더라? 그 전시가 혹시 네게는 전환점이 되는거니? 형식주의로? 이전에는 이웃의 미학이라고 이웃을 드로잉 한 거라서 접근이 쉬웠는데 …”
“언니 그게요. 언니 말대로 그 작품이 저한텐 너무 쉬워서요. 작품이 나나 혹은 관객에게 깊이 생각하고 말고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면 의미가 있기는 한 것일지, 무엇보다도 그게 나를 제대로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이드니까 그걸 해야하나? 라는 고민으로 이어지더라구요. 그 의구심을 실험해 본 것이 지난번 전시였어요.”
“난 네가 이웃이야기를 한다길래 네 작품 경향이 경험세계를 다루는 유물론 편에 서있나 보다라고 생각했었어. 그런데 거 뭐라고 그랬드라? <그리고, 또는 그러므로>라구 그랬나? 언어체계랑 관련된 아주 형이상학적인 분위기라서 요즘 잘나가는 실험적인 작가들 형식을 따라가려고 그러는가부다 생각했었어.”
“그런거 아니에요. 안그래도 재개발지역 이웃을 건드리지 말라고 공격을 받는데 다른 식의 전시를 해도 이렇게 나를 몰라주면 곤란하잖아요.”
“그치만 그 두개가 너무 다른 성격이잖아~ 하나는 사회주의 작업이고 하나는 형식주의 작업이니.”
“쉽게 하자니 내가 속한 사회 계층이 다르다며 자격 운운하고 어렵게 하자니 형이상학의 상아탑에 갇혀 안주한다고 흉들을 보시네요.”
“아직 뜨지도 못한 무명인데 브랜드 먼저 만들려면 둘 중에 하나를 골라야지”
“기존 패러다임에서 그 두가지가 출발점이 각각 상반된다는 것은 알고 있어요. 그리고 작가로서 포지션을 결정해야하는 시점에 와있지요. 이제 그 나이가 되었네요. 하지만 왜 그중 하나만 될수 있어야 할까요? 둘 다 제 안에 있는 모습들인데요.”
“경험세계냐/관념세계냐, 아니 사회주의냐/형식주의냐는 3000년 미술사나 철학사를 통틀어서 해결 못한 건데 그걸 네가 어떻게 해결할라구 그래? 그나 저나 둘 중에 좀 더 끌리는 건 있고?”
“저의 성향으로 감을 잡으라는 거군요? 언니는 내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세요?”
“사람 속을 내가 어떻게 아냐? 네가 누구인지는 정신과 의사한테나 물어본다면 모를까”
그러고는 노트를 꺼내 한장을 부욱 찢어내서는 두 개로 더 찢어서 각각에 뭐라고 적는다. 하나에는 ‘사회주의’가 다른 하나에는 ‘형식주의’가 적혀있다.
“고를 수 없다면 뽑는 수가 있지. 자아, 내가 뒤에서 섞을께 그중에 하나를 뽑아. 뽑힌 거를 하다가 싫으면 적어도 이 길이 아니구나란 건 알게 돼잖아.”
그리곤 종이를 접더니 양손을 등 뒤로 돌리고서는 종이 쪽지를 뒤섞다가 앞으로 양 손을 내민다.
“자! 오른손? 왼손?”
“치이~ 왼손이요.”
후우우~ 이번에는 더 긴 숨을 내뱉고는 방안을 돌아본다.
이름을 바꾸자는 어머니도 그렇고, 나를 공격하던 작가도 그렇고, 선배 언니도 그렇고, 나를 모르겠다며 정체를 하나 결정하라는 이들로 득실대는 현재의 상황이 보경은 당황스럽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무엇을 기준으로 결정을 해야한단 말인가? 통계와 마케팅 이론? 천운? 아니면 감으로? 그가 눈을 이리저리 굴리는 모습은 방안을 둘러본다기 보다는 시선을 고정할 곳을 찾는 다는 것이 더 맞을 듯하다. 드디어 눈이 책장에 멎은 보경이 이렇게 중얼거린다.
“정신분석이라….”
**
마음 클리닉, 제법 햇살이 뜨거워진 2012년 5월 3일 오후 1시 55분.
“어이쿠 덥다.. 어이쿠 더워.”
권윤갑 원장이 바지 단을 허벅지까지 걷어 올리고 셔츠는 거의 배가 보이도록 풀어 헤치고는 부채질을 하며 미술 애호가들을 위한 잡지인 <>의 가십란에서 뭔가를 베껴 쓰고 있다. 이런 모습을 본 접수 직원이 궁금한 듯이 원장이 있는 상담실 쪽으로 걸어와 눈치를 살핀다.
“원장님, 또 그림 사시게요? 곧 전보경이라는 미술가 환자분이 오실텐데 … 옷매무새를 좀 제대로 고치시져.”
“최진호라는 작가가 뜬대. 박 원장이 산 작품이 이 사람 거던가? 젠장, 그거 거지같이 생겼던데 설명은 또 디립다 어렵기만하고. 저번에 화랑 주인이 사라고 할 때 살걸. 근데 작품이란 게 또 여간 비싸야 말이지. 미술가? 예술 하는 사람을 치료해 본 적은 없는데. 어이쿠...... 어이쿠!”
옷매무새를 바로하는 동안 권윤갑은 곧 상상에 빠진다. ‘미술가라…… 어이쿠…’그는 제일 먼저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 옷은 담배로 찌들대로 찌들은 반쯤은 미친 천재, 고뇌에 찬 예술가의 이미지를 떠 올린다. ‘여자라고 그랬지. 그렇다면 어쩌면 뇌쇄적인 미모에 주체할 수 없이 넘쳐나는 끼를 가진, 자신의 변태적 취향과 남성편력으로 죄책감에 시달리는 …… 게다가 도톰한 입술까지 너무나도 관능적인 매력의 소유자, 그런 여자일 지도 몰라. 아니야 지금은 방황하는 영혼이지만 가격이 열 배로 튀는 미래의 최진호 일지도 모르지 …… 몇 살일까?’ 권원장은 적어도 이 사람을 코너 끝까지 몰아서 무의식을 캐내고 그의 꿈을 해석해서 작가라는 정체의 가면을 벗겨버려야겠다고 다짐한다. 이렇게 이런 저런 기대에 달아오르는데 이때 직원이 그의 백일몽을 깬다.
“그런데 환자가 작가라고 미술 투자를 의논하진 않으실 거죠? 품격 떨어지게.”
“으핫핫, 아무렴 내가 그럴라구, 히히힛”
‘이 자식이 내가 오냐오냐 해주니까 자기가 그저 접수 직원인걸 까먹은 거지? 확 알게 해 줘버릴까?’라고 생각하는 데 이 때 문소리가 끼익~ 나면서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 한 명이 들어온다. 부끄러운 듯이 다소곳하게 “2시 예약인데요” 라고 만 읊조린다. 그러나 곧 눈을 돌려 대기실을 찬찬히 둘러보는 모습이 만만치 않을 같기도 하다.
“어서 오세요. 여기 소파에서 신상기록카드를 기입하면서 잠깐 기다리시면 선생님께서 곧 보실겁니다.”
“네”
직원이 태블릿을 환자에 건네며 이렇게 말한다.
“가능한 많이 적어 주시는 게 좋습니다.”
태블릿 화면에는 광고 문구가 이렇게 적혀있다.
저희 마음 클리닉은 일상에서 경험하는 갈등으로 혼란을 느끼는 성인, 아동, …
여러분이 성숙한 인격을 갖춘 자랑스런 사회의 일원으로 거듭나도록
활달한 성격구조 개선에 체계적인 도움을 제공하는 전문공간입니다.
밑에는‘넘기시오’라는 문구와 함께 화살표가 그려져 있다. 거기를 톡 두드리니 신상기록 양식이 나온다. 이름, 직업, 가족관계, 학력, 방문사유 등을 하나씩 입력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방문 사유 칸에 다다르자 이렇게 적는다. ‘정체성 불안정으로 인한 잠재적 정신분열.’ 커피 두 잔을 가지고 돌아온 직원은 태블릿을 받아 들고 진료실로 들어가 환자가 왔음을 알린다. 그리고는 테이블에 커피 두 잔을 내려 놓고 나와서 보경을 부른다.
***
보경이 상담실을 들어서자 원장은 그를 반갑게 맞이한다.
“그 쪽에 앉으시지요. 클리닉은 처음이십니까?”
보경은 잠깐 생각한다. 이전에 방문했던 결국에는 자기가 다 옳다고 우기던 치료사들의 얼굴들이 번쩍하고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데…
“네. 처음이에요.”
“어이쿠우 걱정 마십시오. 저나 여기 동료들 모두 2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고학력 전문가들입니다. 무엇보다도 저는 아빠 같은 그런 마음가짐으로 환자분들을 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마음을 편아안하게 가지시길 바랍니다.”
라고 말하며 보경 앞에 놓인 의자에 앉는다.
“네”
“어떻게 오셨습니까?”
“…”
“그럼, 우리 신상 기록부에 적은 내용부터 같이 볼까요? 초기면담은 보통 3-4회기 정도 걸립니다. 현재 겪는 어려움과 증상 및 그와 관련된 배경에 대한 정보를 분석자와 내담자가 함께 파악하고 계획을 세우는 단계죠. 기록을 보니 외동딸에, 공부를 많이 하셨고, 그리고 결혼 하신지 일년도 되지 않은 신혼이시군요! 축하 드립니다”
“네에”
보경이 잠시 답을 생각하는 동안 의사는 보경을 바라보면서 뭔가를 적는다. ‘말수가 적음.’ 그래도 나름 밝은 얼굴에 상냥해 보이기까지 한다. 조신한 양갓집 규수 그러니까 전형적인 ‘이대 출신’답게 상류 계층 여성의 부드러운 면모가 두드러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집중이 안되시고, 사람들이 본인을 오해해서 괴로우시다고요. 그리고 그 이유가 사람들이 보경씨를 미리 정해진 캐릭터로 분류해서 라구요. 그렇지요. 사람들은 고정관념에 사로 잡혀 상대를 이러 저러한 사람일 것이다라고 미리 결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도 방어기제에 하난데 어떤 특정 행동들을 요구하게까지 되면 당하는 사람은 힘들어지지요. 정체성의 문제는 보통 가정과 사회에서의 역할행동 사이에 차이가 있을 때 곧잘. 생기.... 어이쿠, 저런… 어이쿠… 방문사유에 ‘정체성 불안정으로 인한 잠재적 정신분열’이라고 진단을 내리셨군요. 환자분이 분열인지 아닌지는 분석가인 이 권윤갑, 바로 제가 결정을 내립니다. 히히히”
권윤갑의 어눌한 말투는 격이 없어보이지만 뼈가 있다.
“가족과는 문제가 없어요. 그 보다 저는 일 때문에 고민이 더 많습니다.”
일 얘기가 핵심에서는 벗어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조금 들지만 그렇더라도 직업이야기가 이 환자의 마음을 빨리 여는 길이겠다는 생각에 직업에 대해 더 물어 보기로 결정한다.
“예술가들은 뭐, 하고 싶은 일을 하니 직업 때문에 고민이 생기리라고는 예상 못했습니다.”
전보경이 뭐 이렇게 무식한 사람이 다 있나 싶어하는 표정을 만드니 의사가 말을 바꾼다. 그리곤 일지에 다음과 같은 메모를 적는다. ‘의심이 많음.’ 그리고는 그 밑에 ‘대상관계의 분열정도 파악 테스트 필요’ 라는 메모를 적는다.
“어이쿵 … 직업이 인생에서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건데 … 여간 고민이 아니시겠어요.”
“예”
“지금은 그럼 어떤 그림을 그리시나요?”
“저는 그림을 그리지는 않고요, 음, 그릴 때도 있는데요. 지금 당장은 그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림을 잠시 중단한 상황이십니까?”
“아뇨, 아마도 개념미술이라고 말씀 드리면 좋을 것도 같네요. 제 작업이 장르가 복합된 것이라 맥락에 따라서는 그림이 필요 없을 수도 있습니다.”
“아아~ 개념미술. 개념으로 미술을 하신다고요! 최진호작가 같은 겁니까? 그럼 어떤 개념을?”
“제가 요즘 고민되는 부분이 정체성이라 정체성이 무엇인가를 고민해보자는 작품을 하고 있습니다.”
“아하 그렇군요. 사람들이 보경씨의 정체를 지레 짐작해버린다는 불만이 영감을 주었군요. 고민을 생산적인 것으로 바꾸다니 참으로 건강한 태도이십니다.”
권윤갑이 알아 듣는 듯한 기미를 보이자 보경의 표정이 많이 밝아지면서 말문을 열기 시작한다.
“네, 저는 우물 안 개구리가 되는 것이 싫어서, 외로와서 이웃에게 다가가 보자는, 이웃과 이야기를 나누는 작업을 몇 번 했습니다. 게 중에는 재개발지역 주민도 포함되어 있었고요. 그런데 사람들이 저 보러 그런 작업을 할 자격이 없대요. 진정성이 없다면서…”
“어이쿠우. 남들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것은 참 힘든 일이죠.”
“제가 이웃을 생각하는 게 왜 안 되는 걸까요? 가난한 남자여야 이웃을 이야기할 자격이 있다는 것이 그 분들의 이유였으리라 생각되요. 아니면 재계발 지역의 피해 당사자만이 이야기할 자격을 갖는다는 건데 인간을 어떤 캐릭터로 가둬 놓고 정해진 말만하면서 살라고 한다면 세상에 변화란 안생겨나는 거잖아요. 저는 누구일까요? 아니, 제가 누구라고 다들 생각하는 걸까요? 제가 생각하기에 저는 그리 마르지 않았고 그리 뚱뚱하지 않으며, 그리 크지도 않고 그리 작지도 않은, 그리 부자도 아니고 그리 가난하지도 않은 그냥 보통의 인간. 그래서 자신이 매우 싫기도 한. 공부만 좀 많이 했을 뿐, 특출한 사람도 아니고 아주 보. 통. 의. 사람인데요. 그런데 왜 다들 나는 그. 런. 사람이 아니라고 하시니 점점더 주위 사람들 눈치를 보게 되었어요, 자신감도 없고, 잠시라도 집중하지 못해요, 아프고 …”
“그래도 작업으로 승화시키려는 태도를 봤을 때 제 치료를 잘 따르시면 빨리 회복되실 수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보경씨는 그 분들에게 어떻게 반응을 보이셨나요? 화를 내셨나요? 화를 낸다는 것이 대부분 문제를 악화시키기는 하지만 기술적으로 사용한다면 오히려 더 긍정적인 결과를 유도할 수도 있지요.”
“저는 화를 내서 직접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을 해보싶었습니다. 그래서 회사를 차렸어요~ 여기서 서로 다른 생각들을 가진 사람들을 고용하고 그 사람들이 각자의 개성을 살리는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는 그런 회사를 작품삼아 세우려고요.”
“회사요? 아! 그것이 보경씨의 개념이군요, 그리고 그걸 미술이라고 하니 개념미술이다 라는 말이군요. 어쨌거나 대응을 하기로 했다는 것은 참 잘하셨습니다.”
예술 이야기가 나오자 보경은 눈을 반짝이며 경계심도 낮추고 자신의 작업 이야기를 늘어 놓기 시작한다.
“예를 들면 제가 설립한 회사는 큐레이터, 출판 디자이너, 무용가, 변사, 연기자, 비평가, 홍보매니저, 설치 용역, 영상 촬영 편집자, 등 예술에 종사하는 다양한 방면의 사람들을 사원으로 고용하고 있어요. 물론 최소한의 공동의 목표는 있어요. 주제가 하나 설정되죠. 이번에는 그게 ‘저, 전보경’이에요. 예술 작품이란 게 작가들 각자의 주관적인 해석을 보여주는 거라 고용된 직원들이 보는 저의 모습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을 거잖아요. 표현된 결과물에 차이가 발생한다는 것은 결국 시점의 차이에 따라 저의 전혀 다른 면만 보았다는 오해가 드러나는 거죠.”
원장은 ‘한국 여성이면 모두가 바랄만한 스펙과 여건을 갖추었고 편안하게 살기만 하면 될 법도 한데 이 사람은 어디서 트라우마가 생긴 것일까? 그것이 부모에게서 비롯된 것인지, 직업 때문인지 제대로 알기에는 아직 이르다. … 회사를 뚝닥 차리는 걸보면 적극적인 성격인데’ 라고 생각하면서 노트에 ‘환자가 갈등에 대응하는 방식은 정면승부인 듯함’이라고 적고는 대뜸 이렇게 말한다.
“그런데 사실 회사가 작품 개념이 된다는 게 뭔지, 뭐가 만들어질지 도대체 상상이 안됩니다.”
“사업 아이템에 따라서 구성원이야 달라지겠지만 이번에는 여섯 가지 장르의 콜라보레이션-예술 노동자들을 고용했어요. 콜라보 자격으로 계약을 맺는 예술 노동자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작품을 만들 기회를 주도록 했지요.”
“아 잠깐! 콜라보레이션-예술 노동자라구요?”
“자기 스스로의 프로젝트를 벌여도 되는 회사니까요.”
“회사가 직원을 고용하는 방식이나 운영구조가 중요하다는 말씀 같은데. 아이쿠, 좀 많이 어렵군요.”
“콜라보-예술 노동자는 예술을 만드는 이들 사이의 관계, 예술 작품과 감상 사이의 관계법칙인 불일치라는 사회적 합의점을 찾게 되리라 믿어요.”
“뭐, 예술이란 게 전문가들만 아는 거라서……”
“그런 말씀들 많이 하시지요. 서로 딴생각을 갖는다는 게 요지에요.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 저의 회사는 일시적 공동체의 공동 프로ㄷ, 아 무엇보다도 공평한 프로덕션이라는 조건을 내세워요.”
“공동-공평한 프로덕션이라. 흥미롭군요. 제겐 금시초문의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는데요?”
“그러니까 영화처럼 감독이 모든 크레딧을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는 거에요. 저는 각자의 공헌한 바가 구별되어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워홀이나 다카시 식의 팩토리가 아니라 작업을 하면서 서로 툭탁거렸던 지점, 각자의 판단들과 그것이 어떻게 반영되었는지가 보여지도록 하려 구요.”
전보경이 말이 많아지는 만큼이나 자기가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이 나오기 시작하자 권윤갑한테는 반발심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 이유가 처음엔 자신의 정체성을 주제로 삼겠다더니 이젠 예술가 노동자라는 이야기를 꺼내는 전보경의 말이 앞뒤가 맞지 않아서라고 확신하면서 권윤갑에게서는 환자가 가진 논리에 허점을 찾아내고 말겠다는 승부욕이 발동하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의 반론에 전보경이 얼마만큼 저항하는가를 살필 수 있으니 그녀의 대상관계의 신뢰도를 시험하는 셈이라고 자위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권위를 되찾아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아이쿠, 콜라보레이션-예술 노동자다, 공동 프로덕션이다 이건 전보경이 아니라 예술가의 정체나 역할로 아이쿠, 이거 옆으로 새는 거 아닙니까?”
전보경은 흥분했던 숨을 고르면서 자기 자신을 추스르는가 싶더니 다시 처음의 표정과 몸가짐을 하고는 이렇게 말한다.
“전보경을 생각하면 쟤는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어 라는 거를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권윤갑은 다음 줄에 또다른 메모를 적는다. ‘자신을 드러내기를 꺼려함. 말에 좀더 동조를 해야겠음.’
“어이쿠, 그렇지요! 보경씨가 이러 저러한 경향의 작업을 해야 한다고 딴지를 거는 것도 사회가 예술가의 정체를 규정하는 행동이잖아요?”
보경의 얼굴이 다시 환해지기 시작한다.
“그럼요! 예술가의 정체성이 저의 정체성이죠. 예술가들은 각자가 천재라서 따로따로 고군분투를 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젠 그런 시대는 지나갔다고 생각해요. 예술가들이라는 집단이 일하는 방식을 기업화하거나 관객과의 관계설정을 바꾸기 위해선 공동 프로덕션도 실험해 볼 가치가 있어요.”
“공산주의, 의식화 뭐 그런 용어들이 연상되는 말씀을 하십니다. 의식화가 막시즘 용어잖아요? 뭐 자기가 속한 계급적 조건이 야기하는 실제를 인식하는 것쯤으로 기억하는데 보경씨의 개념이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군요. 제가 학교 다닐 때 운동 좀 했습니다. 그래서 자본론도 귀동냥으로 듣고 그랬죠. 제가 종합병원이 아니라 이 구석에서 친구끼리 클리닉을 내야 했던 이유도 그와 관련 있어요. 아이쿠 이건 딴 얘기고요. 공평한 구조적 변화라는 점에서요. 게다가 영화감독과 달리 주인공이 없는 공동프로덕션을 생각하신다면 보경씨의 예술도 천재가 없는 공산주의 비슷하게 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는데.”
“아니에요. 매우 자본주의적이죠. 영화관과 백화점의 형식을 들여 오는 것도 생각 중입니다. 작가도 작가지만 결국 미술관이나 갤러리도 그것의 정체성에 대해서 다시 한번 질문을 던져 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놀랍습니다. 스케일도 무척 인상적입니다. 작업도하고. 고민도 해결하고. 거기다가 돈까지 버니 이건 일석 이조, 삼조가 되는 대성공 같습니다. 그런데 왜 자신이 문제가 있다고 느끼시는지 더더욱 궁금해 집니다. 혹시 남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닐지요?”
“선생님같이 궁금해 하시는 반응을 얻는 것만으로도 성공이라고 생각해요.
“왜요? 회사도 차렸는데 성공해서 돈도 왕창 벌면 더 좋지 않습니까? 아! 이건 개념이니까 아무리 회사라 해도 팔 수는 있는 게 없군요.”
“아직 첫 결과물이 나오지 않아서 상품성을 가늠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아직 시장을 확보했다고도 할 수 없으니 이윤을 크게 바랄 수는 없을 거에요. …… 작가로서 얻을 수 있는 성공으로 일단은 만족해야 할지도 모르죠.”
“작가로 얻을 수 있는 성공이 돈이 아니라고요…. 아이쿠 돈 못 버는 공평 프로덕션인데도 취직을 하겠다고 하니 다른 관계자들도 돈이 궁하지 않은 사람들인가 보지요?”
“처음부터 이윤을 바랄 수는 없죠.”
“그럼 이 회사는 돈을 버는 회사가 아니라 무늬만 회사거나 돈 버는 제스처까지만 하는 셈이군요.”
아이쿠, 이거 내가 첫날부터 몰아대면 도망갈 텐데. 흥분하지 말아야지.
“제가 사회에 대안을 내놓을 것도 아니고…… 차이를 만드는 거죠"
“아까 오해를 한다는 사람들은 이웃들이 아니라 동료작가들인가요?”
“이웃들도 경계하기는 하세요.”
원장은 보경의 대답이 점점 짧아진다는 것을 알아챘지만 자신의 승부욕도 억누르기가 어렵다는 걸 안다. 이런 생각을 미처 끝내기도 전에 입에서는 이미 빈정대는 말투가 튀어나오고 있다.
“에에에~이, 그럼 차이를 만들거나 차이를 보여줘서 오해를 푼다고 해 봤자 소비자인 관객과 오해를 푸는 게 아니라 전문가 엘리트들 그것도 돈벌이에 신경 안 써도 되는 지배계급 출신 직원이랑 작가들 사이에서의 오해를 푸는 거군요. 공동 프로덕션이라는 차이점도 결국 전문가들끼리의 차이일 뿐이군요.”
“무슨 말씀이세요?”
“지금 하는 일들이나 보여주려는 대상들이 다 지배계급에 한정되어 있다고요오.”
아차. 질문형식으로 말을 했어야지! 라고 그는 후회하지만 상황을 무마할 수 있을지는 자신없다.
“문화를 이끌어가는 상부구조가 없다는 말씀이세요? 플라톤 이후부터 축적되어온 예술에 관한 연구와 그리고 더 오랜 기간 동안 감각적인 표현을 체득하면서 만들어낸 규범들을 하루 24시간 고민하는 사람들이 예술가잖아요. 그러니 아무래도 문화를 선도하는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아니이.. 그런 게 아니라. 왜냐하면 차이를 이야기 하자는 것은 다르게 평등하자는 이야기이고 배려를 하자는 이야기인데 하신 말씀에서 누가 누구한테 공평한가를 보자면 다 예술가들 끼리끼리라는 얘기죠. 진정성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도 이와 관련된 것 같은데. 평등한 위치와 자비를 베푸는 위치는 다르죠. 차이가 중요해서 회사까지 차렸는데 소비자완 무관하다면 보경씨의 정신 건강에 긍정적일까요?”
“선생님도…… 제가 진정성이 없다고 하시는 거지요?”
‘환자는 갈등상황에서 타협을 하기보다는 호전적인 반응을 보인다. 대상관계를 설정하는데 있어서 자존심이 우선하는 것은 현실상황을 무시한 채 추상적인 지식으로 현재를 통제하려는 욕망이다. 자신을 희생자로 생각할 수도 있음. 우회적이거나 맞장구치기 필요’라고 메모지에 적는다. 타협하는 습관과 현실에 적합하게 조정된 목표설정으로 자존감의 확립이 필요하다고 권윤갑은 머리를 굴리는 중이다. 그렇지만 어느 현실에 타협하는가에는 권윤갑이 생각하는 현실과 보경의 현실이 다르다는 것을 인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모순을 갖고 삽니다. 그런 모순을 맞닥뜨리게 하고 그런 자기모순을 승화하는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 우리의 만남의 목표 중에 하나입니다. 이 과정에서 어떤 것들은 포기하는 것도 해결책이 됩니다.”
“내가 아는 나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 건강하다라는 말씀이시라면 그것이 옳은 일일까요?”
‘어쭈.’
“현실이 생각과는 다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니까요. 선생님의 현실은 자아를 프로그램 할 수 있다고 믿으시는 것 같군요.”
“그럴까요? 자신의 방법론이 원하는 것이었나를 고민해 보시라는 말일 수 있지 않나요?”
“데리다를 읽어 보셨다면 아실 텐데 차이는 현대사회 인류가 가진 희망이에요.”
일단 후퇴.
“희망. 좋은 의견이십니다.”
“아이쿵, 그런가요?”
보경이 권윤갑의 말투를 흉내 낸다.
“다만 오늘은 시간이 벌써 다되었습니다. 보경씨가 아주 명민한 덕분에 진도가 많이 나갔습니다. 상담시간을 몇 번 더 가지면서 함께 판단해야 할 일이지만 정체성 문제에서 어디가 삐걱거리는가를 같이 찾아야 합니다. 다음에는 보경씨 가족 얘기를 할 수도 있겠죠. 우리 오늘 나눈 이야기를 한번 곱씹어 보기로 하면서 다음을 기약할까요?”
전보경이 주섬주섬 가방을 들고 상담실을 나서는데 권윤갑이 인사를 건넨다.
“저는 덕분에 개념미술에서 예술가가 뭔지 배우게 되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네, 뭘요. 안녕히 계세요”
“안녕히 가십시오”
보경은 잠시 다음 예약을 해야 할까를 생각하다가 괜한 헛짓이라 생각하면서 접수 직원에게 목례를 가볍게 한 뒤 밖으로 걸음을 재촉한다. 문이 닫히자 원장은 직원을 보고
“김수현씨, 이거 안되겠는 걸. 역시 예술가 환자는 받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자신의 모순을 받아들이기는커녕 의사를 이기려 드니 말이야.”
내 말발로는 감당이 안되겠어 라고 생각하면서 권윤갑은 다음과 같이 말을 잇는다.
“혹시나 저 사람 다음 예약하려 들어도 받지마. 심리상담 진료거부양식 거기 있지? 그거 미리 준비해.”
클리닉을 나온 보경은 마치 자신을 이해한다는 듯이 어이쿵만 남발하는 권윤갑도 다른 사기꾼 의사와 다름이 없다는 생각을 굳히는 중이다. 좀 똑똑하기라도 하면 말을 들어보기나 해줄 텐데. 나라는 사람은 왜이리 복잡해서 이해될 수도 없는 운명일까.
- 끝 -
출처 - 갤러리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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