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위주 류가헌
2015년 10월 20일 ~ 2015년 10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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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가 쓴 지리문자(Geoglyph)
흑백의 문양. 먹물을 듬뿍 찍은 붓으로 커다랗게 한 획 휘몰아친 것 같다가, 가는 세필로 수백 수 천 번의 선을 잇대어 그은 것도 같다. 또는 에밀레종에 새겨진 비천상의 날개옷 일부처럼 어떤 사물의 부분을 가깝게 클로즈업해서 찍은 사진 같기도 하다.
‘사진가에게는 요령이나 속임수, 또는 마술 같은 모든 수단들이 허용된다. 사진가에게는 일상적이고 원초적이며 보기 흉한 것들을 피해야 할 의무가 있고, 그런 것들을 대신해 촬영 대상을 강조하고 어색한 형태를 제거하고 회화적이지 않은 것들을 수정해야 한다”고 한 헨리 피치 로빈슨의 표현대로라면, 이 사진들은 사진가 김문수의 ’마술‘이다.
사진가에게 허용된 수단으로, 실재 하는 어떤 현실 혹은 물질을 하나의 문양, 또는 전혀 다른 비물질의 무엇으로 환치시킨 것이다.
인류가 비행기술을 발전시킨 이후에야 제대로 볼 수 있었던 나스카문양처럼, 이것들은 공중에서 내려다보아야만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저 대규모 현대농업의 부산물이자 트랙터가 지나간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고대에 그려진 지리문자(Geoglyph)처럼이나 신비하다.
사진가 김문수는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이 미국 워싱턴주 팔루스(Palous) 농업지역의 풍경에 매료되었고, 빛과 앵글 등 사진가가 마술처럼 부릴 수 있는 여러 수단들로 풍경을 재구성했다. 현실에서 ‘실제 보이는 것 너머의 것’을 사진으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 지를 고민한 것이다.
최종 표현방식으로 흑백을 선택했고, 라이카 모노크롬은 사진가의 이러한 의도를 충실히 따라주었다. 구릉과 트랙터의 바퀴자국들이 흑백의 선과 문양으로 변환되면서 일상적인 풍경이 특별하고 회화적인 풍경으로 되살아난 것이다.
<대지의 꿈>은, ‘여기’에 실존하는 우리에게 ‘저기’에 실재하는 풍경을 눈앞의 것으로 옮겨다 주는 사진의 순기능에 복무한다. 하지만 그 풍경은 ‘저기에 실재하는 풍경’이 아니다. <대지의 꿈>의 사진적 매력이 거기에 있다.
출처 - 사진위주 류가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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