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도스
2019년 10월 23일 ~ 2019년 11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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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함의 표정
갤러리 도스 큐레이터 김치현
서은애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살아오면서 스쳐온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만남의 종류에 대한 열거가 아닌 관계의 어려움 속에서 실패하고 잘못 전달되고 부스러진 조각들을 비춘다. 그리고 혼자가 아니기에 오롯이 자의로 조정 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돌이킨다. 자신의 속내를 전부 보여주기는 꺼려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당신들이 내 마음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장막 한 겹 너머의 생각을 실마리처럼 그려냈다. 작품에는 정적이 흐르지만 작은 외부의 자극 하나로 구조전체가 뒤흔들릴 것 같은 위태로움이 보인다. 사물이 그려진 매체에서 적나라하게 보이는 질감은 마치 황무지처럼 분위기를 적막하게 만드는 동시에 미묘한 불안이 느껴진다.
작품에 등장하는 익숙한 이미지들은 작가가 조성한 미지의 공간에서 다시 역할을 부여받는다. 실제로 존재하는 사물을 구체적으로 조합하고 재배열 했지만 그렇게 합쳐진 덩어리들은 현실에서 찾아볼 수 없는 상태로 그려진다. 이미지 곳곳에서 흘러내리는 체액과 상처를 감은 붕대에서 번지고 흐르는 핏방울은 담담한 표정을 보여준다. 이는 작가가 관계에 있어서 스스로를 치유하고 견뎌내려 한 노력과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의지와 별개로 완전히 치유되고 막을 수 없었던 작은 틈새에 대한 고해이기도 하다. 관계에서 오는 매우 구체적인 경험과 상호작용으로 인해 새겨진 아쉬움과 후회, 안타까운 감정은 그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연과 기억으로서 남게 된다.
작가는 본인의 이야기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격정적이고 드라마틱한 화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스스로 제 3자가 되어 바라본 자신의 남겨진 뒷모습과 늘어진 그림자를 어떠한 미사여구나 포장 없이 박제한다. 작가가 선택한 사물들의 공통점은 용도에서 오는 경험과 시간에 의해 낡고 벗겨지고 허름해진 모습이다. 뜯겨지고 부러졌었지만 다시 봉합되었기에 제 역할을 아직까지는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사람들은 그것을 그저 오래된 잔해의 일부처럼 바라보게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고요한 장면은 보는 이로 하여금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잠시 숨을 느리게 쉬는 상태로 작품이 만들어내는 공간 속 분위기의 일부로서 차분히 관망하게 한다.
관계의 관계를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개인들에게 작가는 굳이 털어놓지 않고 마음의 아래층에 먼지가 쌓이도록 묻어두었던 짤막한 탄식과 후회들을 차분한 목소리로 보여준다. 작가를 투영한 채 쓸쓸하고 우두커니 존재하는 사물은 분명히 화면 위에 그려졌지만 화면이 지니고 있던 성질들에 의해 가려져 보이기도 하며 오히려 작품에 생명력을 환기시킨다. 어쩌면 적나라하고 잔인할 수 있지만 작가가 보여주는 방식은 느리고 부드럽다. 명확한 구조를 지니고 있지만 시선을 붙잡는 부분은 두루뭉술하고 희뿌옇게 그려져 있기에 자칫하면 거부감이 들 수 있는 주제에 대해 편안하고 깊숙이 빠져들게 된다.
출처: 갤러리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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