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한옥
2015년 10월 23일 ~ 2015년 11월 2일
식물.혼합재료.종이에 채색_42 x 41 x 13cm_2015-설치부분컷

식물.혼합재료.종이에 채색_42 x 41 x 13cm_2015-설치부분컷
선물 받은 소박한 꽃무더기가 책상 위의 자그마한 화병에서 서서히 시들어갔다.
처음에는 열심히 물도 갈아주었건만 어느 순간부터는 일상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고
식물들은 물기 없는 마른 화병에서 제 몸의 마지막 수분까지 쥐어짜내 한 조각 푸르름을
유지하다 서서히 말라가기 시작했다.
한 때는 더없이 화려했을 색깔들이 이제는 흐릿한 흔적으로만 남았다.
삶도 이러하지 않을까.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시절도 있었다.
주변의 말들은 무조건 부정하며 거부하고 싶었던 반항의 시기도 있었다.
노력만 하면 무언가를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막연한 의욕이 넘쳐흘렀던 때도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 때는 인생이 거대한 비밀을 품은 복잡한 미로같이 느껴졌었다.
그러나 이제는 알겠다. 여기엔 애초부터 아무런 비밀도 숨겨져 있지 않았음을
출구가 있을 것 같았던 길들도 마치 돌고 도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끝이 없음을
그저 그 자리에 멈춤으로서 쉼을 얻을 수 있을 뿐임을
이 모든 순간들 몰아치듯 지나가고 생의 뒷자락 언저리에 덩그마니 놓이고 보니
어느새 부질없음이 무엇인지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였을지도 모른다.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의 흔적을 마치 빛바랜 문신처럼
온 몸에 새긴 채 손대면 바스라질 듯 위태롭게 말라있는 화병 속 식물들에게 뭐라 설명하기 힘든 묘한 동질감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
그 날 이후부터 나는 수시로 차를 몰고 교외로 나갔고 목적 없이 배회하기 시작했다.
딱히 새로울 것도 없는 평범한 들판을 하릴없이 걷다보면 빠른 속도로 지나칠 땐 보이지 않았던 잡초와 식물들이 눈에 들어와 박혔고 그것들을 하나 둘씩 주워 올려 바구니에 담다보면
일상생활 속에서는 쉬 경험하지 못했던 적막한 평온감이 온 몸으로 스멀스멀 번져오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자연에서 수집한 마른 식물들을 가지고 또 하나의 작은 심상풍경을 만들었고
나는 스스럼없이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 안에서 너른 평원 위의 작은 길을 끊임없이
걷기도 했고 꽃나무 아래에서 스산한 밤바람을 맞기도 했으며 배를 타고 강물 따라 출렁대며 정처없이 흘러가기도 했다.
세상에 살아가기 쉬운 인생이 어디 있으랴
길 위의 나그네 – 하염없이 걷는 이여
그대를 보며 나는 되뇌이네
이제는 아무 것도 가슴 속에 품게 되지 않기를
더 이상 그 무엇도 그대를 뜨겁게 데워 올리지 말아주기를
바로 이 순간 내딛는 그 발걸음 문득 멈추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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