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뉴월 이주헌
2018년 9월 7일 ~ 2018년 9월 30일
신전이 구부러져 있다
성유삼 작가의 ‘구부러진 신전’전에는 파르테논 신전 조각의 도상들이 전시되어 있다. 대영박물관이 소장한 파르테논 신전 박공(Pediment)에서 나온 말머리, 토르소, 그리고 도리아식 기둥이 폴리우레탄폼, 즉 스펀지로 재현되어 있다. 기원전 5세기에 만들어진 파르테논의 유산은 클래식, 다시 말해 아름다움의 ‘기준’으로 역할하는 정전(Canon)으로서 서양미술사에서 우뚝하다. 하지만 의아하게도 전시된 다섯 작품 중 한국인에게 낯익은 진회색 스펀지로 만들어진 조각품이 한 켠에 서 있다. 마찬가지로 스펀지로 만들어진 돌하르방이 스펀지 파르테논 이미지들과 함께 전시장을 이채롭게 만든다. 제주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돌하르방을 스펀지로 조각해 파르테논의 도상들과 함께 전시한 이유는 무엇일까?
작가에 의하면 스펀지는 생산된 후 실온, 조명에 노출되면 빠르게 색이 누렇게 변하고 쉽게 부스러진다고 한다. 효율과 쓸모를 위해 만들어진 화합물인 스펀지는 대리석과는 달리 짧은 수명을 가지고 그 역할을 다한 후에는 곧장 사라지거나 폐기된다. 결국 작가는 파르테논의 영원할 것 같은 조각을 스펀지로 재창작하면서 결국 스러져 없어질 스펀지 조각을 통해 예술과 고전의 의미를 질문하고 있다. 대리석이 품었던 영원한 미의 이상은 이제 싸구려 스펀지의 모습으로 현대의 이곳 관객에게 제시되는 것이다. 여기서 정전에 관한 문화연구와 각종 포스트 이론의 문법을 읽어내기에는 불충분하다. 서구 문명의 대표 이미지로 소환된 신전은 구불구불 휘어진 채 해석의 꼬리표를 거부하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때 클래식, 고전의 대명사였던 고대 그리스의 유물은 서구 문명의 대표 이미지로 소환되어 우리나라의 토속 섬 신앙의 상징물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현무암이 지천에 널린 제주도에는 대리석 대신 현무암 조각들이 만들어져 그곳에서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생각과 성정을 담았다. 그리스와 이태리에서는 당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대리석이 제주의 현무암처럼 조각되었고 한반도 지천에 널린 화강암은 불상으로 탑으로 건축물로 만들어졌다. 문화는 우열을 가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시대를 살던 사람들의 삶과 생활양식, 사상, 신념을 보여주는 실마리임은 문화상대주의의 요체다. 작가는 이것이 유독 예술과 정전에서 예외적인 우리의 상황을 겨누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도 많은 이들이 서양에서 발현된 역사와 사상만을 정전으로 삼고 있다. 여전히 우리 역사와 미감을 연구하며 의식적 무의식적 위계 아래 빌려온 서구의 방법론으로 문화와 역사를 바라본다.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제작이 요구되는 작가들은 이론적 사유와는 다른 방식으로 이 현실을 날카롭게 도드라지게 만든다. 과연 성유삼 작가는 스펀지 돌하르방과 파르테논의 조각 이미지를 등치시키는 방법으로 우리의 문화와 예술이 처한 현실의 긴급성과 다층적인 국면을 드러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 서준호 오뉴월 대표
출처: 스페이스 오뉴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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