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궁길갤러리
2021년 11월 9일 ~ 2021년 11월 15일
유보된 정지: 유보된 표정으로의 초상
박창서 (파리1대학 예술학 박사)
성지연의 사진은 평범한 듯 익숙한 인물들이 작가의 사진적 태도가 개입된 연출을 통해 모호한 존재들로 낯설게 포착된다. 사진 속의 인물들은 고유한 정체성과 관련한 상황과 은유, 행위들은 제거된 채로 사진의 프레임 밖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다. 외부로 향한 인물들의 무심한 듯 공허한 시선은 고요한 정적의 시간을 한없이 연장해 버린다. 관객을 응시하지 않는 인물들의 비켜난 시선들은 그래서 정체성이나 상징과 관련한 컨텍스트로 읽히기를 거부한다. 지루한 긴장감과 경직된 편안함 속의 인물들이 연출해내는 무언의 정적 속에서 역설적이게도 존재의 본래 모습은 무표정하게 드러난다. 다시 말해, 행위의 구체적 목적성은 직접적으로 읽히지 않고 말할 수 없는 상태로 남겨져 있으며 모델들의 섬세한 동작들과 응시하는 시선들을 통해 네러티브를 정지시킨다. 이 모호한 정적과 비켜난 시선들로 인해 인물과 오브제의 정체성과 지시성들은 쉽게 읽히기를 거부하듯 유보된다. 어떤 상황과 행위가 발생하기 바로 직전의 일시 정지된 듯한 이미지가 연출해내는 무언의 정적 속에서 역설적이게도 존재의 본래 모습은 무표정을 향하며 표정들을 통해 읽을 수 있는 많은 은유와 의미들을 유보시킨다. (중간생략)
성지연 작가는 형식적으로 인물 사진의 전형을 따르고 있지만, 여권 사진이나 프로필 사진 같은 증명사진의 목적성과는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증명사진으로 대표되는 인물 사진들이 일반적으로 진위를 가리거나 사회적 시선들이 의식적으로 반영되어 인물을 존재적으로 증명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통해 기존의 증명사진과는 다른 방식의 인물 초상 이미지를 탐구하고 있다. 성지연 작가는 사진이라는 매체가 본질적으로 연출된 이미지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고 명확하게 드러낸다. 이번 사진 작업에서는 이전 작업에서 주로 사용한 중성적인 회색 배경을 벗어나 다양한 색채를 배경으로 사용하고 있다. 작가는 배경 색채와 인물들의 의상 그리고 손이나 얼굴의 피부 톤에 좀 더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촬영장에 초대받은 모델이 느끼는 어색함이나 낯섦 혹은 이질감이 서서히 누그러지고 편안해지는 과정에서 불현듯 발현되는 색채의 미세한 변화들에 집중한다. 사진의 배경 색을 비롯한 색채 선택 또한 작업 현장에서 감각적으로 선택한다고 한다. 전통적으로 초상화나 인물 사진에서 표정은 작품의 주제와 의도를 표현하기 위한 주된 장치로 사용되었지만, 성지연의 초상 사진에서 표정은 무표정이라는 일종의 유보된 상태를 지향하고 있는 듯하다. 신체적 의미에서 근육이나 신경의 정지로서 무표정이 아닌 표정 그 자체를 향하는 무표정이다. 생명이 약동하는 살아있는 존재가 신체가 정지된 것과 같이 완벽한 무표정을 지을 수는 없다. 그래서 무표정은 어쩌면 죽음에 대한 은유를 내포하고 있다. 표정의 역설로서의 무표정은 살아있는 존재가 지을 수 없는 표정일 수 있지만, 작가는 표정을 무표정으로 유보시키는 것이다. 이 유보된 표정을 통해 작가는 사회적 맥락이 투영되고 있는 표정과 결별하며 존재 그 자체로서의 인물 사진을 드러내려 하고 있다. 당당히 카메라를 응시하지 않고 프레임 바깥을 향하고 있는 인물의 어긋한 시선이 그래서 불안해 보이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성지연의 사진은 무위한 행위와 공허한 시선 방향 그리고 세심하게 선택된 오브제의 디테일을 통해 모든 존재의 표정과 소리를 모호한 상태로 멈추게 한다. 작가는 이 모호한 시선과 행위의 멈춤 그리고 유보된 표정을 통해 인물 초상 이미지를 죽음의 상태로 박제하는 것이 아니라 섬세하고 감각적 차원으로 유보시킨다.
작가 소개
성지연 (1976년)은 한국에서 불어불문학(학사), 프랑스 파리 8대학에서 사진예술학(석사)을 공부하였다. 2006년 주불 한국 문화원에서 젊은 작가상을 받았고, 2016년 다음 작가상을 수상하였다. 10여차례의 개인전과 중국, 스위스, 독일, 프랑스, 미국 그리고 한국에서 45회 이상의 그룹전에 참여했으며, 국립현대미술관-미술은행, 서울시립미술관, 한미사진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코리아나미술관, 시안미술관, 경기문화재단-미술은행, 프랑스 쏘시에테 제네랄 은행, 프랑스 오뜨 노르망디 현대미술센터 등에 작품들이 소장되어 있다. 성지연의 사진 작업은 조용하지만 힘이 있다. 섬세한 연출로 구성된 그녀의 작업은 보통의 행위와 일상적 오브제를 통해 평범함 속의 낯섦이 드러나는 지점에 대해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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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남창동 행궁로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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