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공간 배다리
2018년 2월 1일 ~ 2018년 2월 10일
고정남_바람의 봄#00-1, Archival Pigment Print_76.2x60.96cm_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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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고된 사건들
이영욱
사건은 필연적으로 있었다가 없어진 것들이다. 지금 여기 없으면서도 의미로 되살아나는 존재. 사진이 딱 그와 같다. 모든 사진이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진들은 사건이랄 것도 없는 떠도는 유령 같다. 그것들은 장면을 제시하면서 사태를 슬쩍 보여준다. 무언가 일이 발생한 현장을 보듯 우두커니 멈춰야 한다.
아직 무엇이라 말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진 시선, 사진을 본다는 현상은 직면한 사태를 바라보는 이상한 시선의 멈춤을 경험하는 ”응고된 사건“이다. 그러니깐 사태파악이 되고 난 뒤에 특정한 의미로 규정될 때 발생하는 것이다. 그것은 과거에 발생한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소환한 이미 예견된 것들이다.
오철민의 사진은 시공간이 뒤틀린 장면을 보여준다. 마치 꿈에서 본 듯한 인상을 얇게 저며 내어 겹겹이 부쳐 놓은 듯, 그러고 보니 사진은 평면이었음을 잊고 있었다. 꿈에서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잠에서 깨고 나서 알았다면, 그 꿈속에 사건들은 도대체 무엇이었을 까? 꿈이 유효한 것은 아마도 현실에서 무언가 발생할 것을 미리 예시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로또도 사고, 개꿈이라고 치부하기도 한다. 그런데 사진은? 현실을 얇게 배겨낸 이미지가 아닌가! 꿈에서 본 듯 사진도 이 세계를 감추면서 거짓말로 지시한다. 거기에 속지 않을 때 비로소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권보미의 작업은 어떤 사건들을 만들고 기록한다. 현실 속에서 연출되고 설치된 사물을 통해 연상되는 이미지는 상징적으로 읽혀진다. 사용된 재료와 형태, 색, 현장은 그녀의 작업을 읽는 중요한 모티브다. 이를테면 생리 혈 같은 붉은 색은 생명의 잉태와 죽음을 동시에 부여한다. 겨울 나뭇가지에 거꾸로 매달린 광목천에 쌓인 붉은 것들이 밑으로 배어나오고 푸른 나뭇잎바리들이 뚫고 나왔다. 자연의 영원회귀의 섭리처럼 모든 것은 처음과 끝이 없다. 죽었으나 태어나고 다시 반복되는 현상을 동결하는 사진이미지는 덧없다. 이때 사건은 잠시 응고되는 ‘젤’같은 것이다.
고정남의 사진은 다분히 시(詩)적이다. ”말이 안 되는 말“ 이게 ’시‘다. 하나의 의미로 고정되지 못하는 시적언어는 이미지적이다. 사진도 분명한 의미로 전달되는 것들은 이미지가 아니라 언어다. 그런 점에서 시와 사진은 이미지의 속성을 공유한다. 사태를 드러내지 못하고 하나의 고정된 의미들의 사건은 시와 사진 속에 없다. 그것은 시와 사진 밖에서 발생하는 관계적 의미맥락이 만든 거짓이미지다. 존재론적으로 그것은 말들이 만든 생각들일 뿐 이 세계를 충만하게 지시하지 못한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가 제시하는 사진들은 말들이 없다.
이영욱의 사진은 사건처럼 보이는 사진들을 배치했다. 물론 모든 사진들은 사건을 만나야 의미가 결정되고 그 차이를 가질 때 분명해 진다. 그러는 순간 어떤 말 못할 것들은 뒤로 숨어버린다. 그는 숨겨진 이야기를 말도 안 되게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관객의 의식 속에서 합성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잠재적인 것들을 기대하면서 시각적으로 유혹한다. 그것이 꼭 한 장의 사진이 조형적으로 잘 다듬어지지 않을 지라도, 사진과 사진 사이에 발생하는 시각장의 역학적 관계의 힘들이 끌어당기고 밀어내면서 마치 사건현장을 추리하도록 유도한다.
여기 참여하는 작가들은 임시방편적으로 모여서 사진이라는 매체의 속성을 매개로 고민하고 작업한 결과를 내보인다. 처음부터 사진 그 자체를 고민 한 것은 아니 지겠지만, 여하튼 사진매체를 작업도구로 사용하는 자들에게 필연적으로 따라다니는 것은 사진이미지가 보여주는 장면이 어떤 사태를 유발하는지를 경험적으로 안다. 어떤 메시지들을 만들어내는지, 또 조형적 형태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 도대체 이 작업의 의미는 무엇인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다 보면 사진의 이미지는 참 어이없게도 말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 할 것이고, 장면을 사태로만 보여주는 한계에 직면하게 된다. 사건 없는 사태들의 연속 그러면 이 전시는 사건인가 사태인가? 질문이 참 초라하다. 사건 없는 사태 ”응고된 사건들“로 보여 지기를.
출처 : 사진공간 배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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