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공간눈
2016년 7월 1일 ~ 2016년 7월 28일
치유의 기류7 하드보드지, 털실 등 가변설치 2015
세상과의 화해를 위한 소풍, 어느 ‘좋은 날’
“나의 과거가 무덤들을 파헤쳤다. 그러자 산 채로 묻힌 많은 마음의 고통들이 깨어나는 것이 아닌가. 저들은 다만 壽衣 속에 몸을 숨긴 채 숙면을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중에서
유년 시절의 꿈을 꾸는 것일까? 손민광의 캔버스는 원색에 가까운 화사함과 동화 이미지로 가득하다. 그 동화의 주인공은 자동차다. 꼬마자동차 ‘붕붕’을 연상케 하는 알록달록한 자동차는 밝은 코발트빛 하늘, 초록의 들판, 푸른 강 혹은 바다를 배경으로 뻗은 색면의 로드 위를 달릴 태세다. 파란색 바다 위 흰색의 점들이 마치 햇살에 반사되는 은빛 물결을 연상케 하지만, 강렬한 채색은 이것이 인위적 풍경임을 오히려 강조한다. 이러한 풍경을 한층 더 탈자연화시키고 인공적으로 만드는 것은 한편으로는 진부하지만 여전히 마력을 발휘하는 동화적 판타지다. 동화적 아우라는 작가 손민광이 꿈꾸는 ‘좋은 날’의 배경이 된다.
초록의 잔디, 파랗고 새하얀 구름과 그 구름 사이를 잇는 무지개, 풍차와 예쁜 성, 장난감 같은 작은 집들, 둥근 원을 그리며 색색의 빛이 하늘에 퍼져나가는 마을의 몽환적인 축제, 자동차 모양의 구름, 나무숲과 작은 집으로 이루어진 섬 등. 이것들은 동화에 으레 등장하는 미장센들로, 판타지를 전개시키는 소도구들이다. 작가는 이 ‘동화 같은’ 풍경 안에 작가 자신의 혹은 우리 모두의 ‘또 다른 자아’를 출현시킨다. 동심의 상태로 돌아가고픈 어른의 ‘내면의 얼굴’ 즉 유아적 페르소나가 그것이다. 여기서 그 페르소나는 어린아이 같은 귀여운 모습의 자동차다. 그런데 이 자동차는 주로 전경에 등장하여 전체 풍경을 바라보는 유일한 관찰자 즉 구경꾼의 시선일 뿐 아니라, 풍경의 한 부분으로서 전체 화면과 연결되는 풍경의 한 요소이기도 하다. 그로 인해 풍경 내부에 있긴 하지만 이 자동차와 전개되는 풍경 사이에는 일정한 심리적 ‘거리’가 발생한다. 이는 일종의 ‘액자’ 구조의 화법이다. 즉 그는 풍경 속에 있으면서, 풍경 내부를 관찰하는 자의 시선을 던지고 있으며, 그것은 다시 그림을 바라보는 관람자의 시각을 끌어들인다. 때문에 자동차가 멀리 시선을 던지는 곳에 관람자의 시각도 모아진다.
작가는 무엇보다도 ‘좋은 날’을 말하고 싶어한다. 방금 만화 속에서 도망쳐 나온 것 같은 알록달록한 자동차는 생명을 가진 동물처럼 꼬리를 살짝 쳐들고 행복한 상상을 하듯 풍경을 바라본다. 그런데, 이 동화나라에서 꼬마 자동차의 시야에 보이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풍경 속에서, 사람이나 살아있는 어떤 것을 발견하는 대신, 끝없이 펼쳐진 길, 바다 혹은 강, 산과 구름과 집들, 무지개와 초록의 들판을 본다. 조금 더 세밀히 들여다보면, 구름 안에도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구름들 안에도 구름이 있는 하늘과 마을과 나무와 집들이 있는데, 이 구름나라를 잇는 무지개는 각각의 세계를 연결하는 통로역할을 한다. 아마도 우리의 자동차친구는 이러한 세계를 멀리서 바라볼 뿐, 아직 거기에 도달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는 단지 그곳으로 가는 중에 있는지 모른다. 그곳은 우리가 꿈꾸는 에덴, 유토피아, 이데아의 이름으로만 존재하기에 어쩌면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갈망의 대상으로 관념화된 장소일 것이다.
작가는 그럼에도 이 비현실적인 장소를 여행하는 ‘좋은 날’을 꿈꾼다. 즉 완벽하게 가상적인 세계이자 동화 속 세상으로의 소풍을 동경하는 것이다. 밝은 원색에 가까운 이 세계는 그러나 그 과장된 수사법으로 말미암아 정반대의 현실을 바라보게 한다. 대학시절 우연히 작가에게 일어났던 감전사고, 사랑하는 친구의 죽음까지 연거푸 이어진 불행한 사건은 이 섬세한 예술가를 우울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들었다. 불의의 사고로부터 커진 잠재된 불안, 상처, 외로움, 단절의 경험은 일상에서 반복재생 되는 트라우마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비단 작가 자신만의 유일한 체험은 아닐 것이다. 신자유주의 이후, 더욱 만인의 경쟁으로 내몰린 우리 사회의 왜곡된 문화와 물질가치의 숭배는 모두를 생명 없는 사물과 같은 것으로 진작 내몰지 않았던가. 불현듯 솟구치는 트라우마의 고통은 차라리 그 아픔 때문에 살아있음을 기억하게 한다. 그러나 이젠 생명의 생명다움을 위해 정신적 외상의 극복이 필요하다. 다행스럽게도 작가는 습관처럼 반복되어 온 그 기억으로부터 탈주하려고 시도한다. 불행한 기억은 불행한 삶을 유지시킬 뿐이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그는 ‘치유’의 그림을 시작했다. 그런 맥락에서 작가에게 ‘좋은 날’은 나쁜 기억들을 전복시키는 초현실주의적 장치인 ‘전치’의 메타포로 작동한다. ‘좋은 날’이 비록 망상에 불과하더라도, 혹은 진부한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으로 치부될지라도, 한편으로는 작가 자신을 위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에게 상처를 준 세상에게 해맑은 얼굴로 웃는, 곧 악의 없는 복수를 행한다. 그리하여 작가는 과거의 ‘우울한 기억’의 실로 짠 수의를 벗고, 그 ‘좋은 날’을 즐기기 위해 꼬마 자동차의 알록달록한 옷으로 갈아입는다. ‘좋은 날’ ‘함께’ 소풍가는 것, 그것은 일종의 ‘연대의식’을 갖게 한다. 타인과 함께 공유하는 ‘좋은 날’은 작가에게 세상과의 벽을 조금씩 허물 수 있는 힘을 갖게 해 줄 것이다. 그러한 소풍을 꿈꾸면서, 작가는 다시 현실로 돌아와 새로운 기분으로 세계와 마주해야 할 것이다. 소풍을 통해 자신의 기억을 치유함으로써, 불가능할 것 같았던 세계와의 화해가능성을 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작가의 ‘좋은 날’이 혼자만의 것이 아니길 바란다. 그것이 많은 사람들의 ‘좋은 날’이 될 때, 작가의 독백이 아닌, 비로소 진정한 세계와의 대화가 시작될 것이라고 믿는다. / 미술평론 유현주

치유의 기류5 하드보드지 가변설치 2014

치유의 기류6 하드보드지 가변설치 2014

좋은날 45.5X53cm 캔버스에 아크릴 채색 2015

좋은날 45.5X53cm 캔버스에 아크릴 채색 2015
작가와의 만남
2016. 7. 2 (토) pm 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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