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앤텔
2018년 10월 27일 ~ 2018년 11월 14일
SHOW
그는 조용히 자신의 수집품들을 꺼내 놓았다.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로 자신을 드러내고 사람들을 반겼다. 그리고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는 그저 '밈(Meme)'의 일부일 따름입니다. 여기에는 어떠한 정치적 요구나 미적 수용도 없습니다. 제 미술은 사회적 전이와 전염의 '매개(Vermittlung)'가 되고 싶을 뿐, 주체적 성격을 가진 아름다움의 탐구로 여겨저선 안 될 말입니다.
그러므로 밈의 원자를 지닌 저로서는 이번 전시에 여러분을 초대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던 것입니다.제 방법이, 이 기회를 빌려 여러분 중 이미 누군가 미술인간이라는 점을 깨닫길 바라는 바입니다. 더불어 저는 초대, 그리고 전달이라는 최소한의 정치적 방식으로 예술가로서 자유로이 살고자 하는 욕구가 여러분의 '생명에의 의지(Wille zum Leben)'(쇼펜하우어)와 다르지 않음을 밝힙니다.즉, 제 미술의 무게가 이 사적 아카이브 공간을 부유하는 먼지의 중력과 같을 거란 말입니다." / 강나무 미술수필가
TELL
보통의 미술가
- 여느 하소연
오늘도 어김없이 부산 행 KTX 첫 차를 타고 대구의 공장으로 출근합니다. 비단 가업을 이어받기 위해서- 가 아니라, 솔직히 그 그림자로부터 벗어나고 싶지만, 미술공간을 운영하게 돼 버린 이상, 저는 그럴 수 없습니다. 누구나 그렇듯, 지킬 것이 생기면 반드시 무얼 해서라도 챙겨야 합니다. 그게 무엇이던 간에, 그걸 아마 사람들은 먹고 사는 문제라고들 할 겁니다. ‘나는 내 미술을, 내 공간을 지켜야 한다.’ 이것이 지금 제겐 생존의 문젭니다. 그래서 이 새벽 주말 간 표백제에 세척된 영혼을 짊어지고 서울을 떠납니다. 격주로 근무하지만, 도착하면 사 일 이상은 당장이라도 문어 촉수가 튀어나올 것 같은 저 책상 위 모니터를 켜고 끄길 반복해야 합니다. 스위치에 손을 대는 순간부터 여간 고역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서울과 대구를 오가는 건 퍽 고달픈 삶의 연속입니다. 고속열차 출근길도 이골이 날 지경입니다. 저는 일단 여러분께 하소연을 해야 합니다. 그 사정이란, 일단 제게 맡겨진 회사 내 업무가 결코 소임이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재 입출고 관리에 장비 구매 견적 검토, 직접 납품하고, 제품 안내책자 디자인과 영, 일어 통번역과 출장까지, 여러분은 상상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누가 봐도 이 정도면 중소기업의 일개 사원이 견딜 수 있는 몫 그 이상입니다. 차라리 단순노무만 한다면 다른 업무스트레스라도 없으니 좋으련만, 타협의 대가로 그저 일주일 중 사 일을 버리고 삼 일을 얻는 것에 만족해야 합니다.
이 모든 일들의 총책임자를 아버지라 할 순 없습니다. 단지 회사 일을 배우라는 암묵적이고 집요한 요청이 있었을 뿐입니다. 잠시 고민하긴 했지만- 저는 혈연으로서 주어질 사명을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단의 기저엔 늦지 않은 나이에 발현된 가족애와 사회적 책무에 대한 결연한 다짐 같은 게 있었습니다만, 엄밀히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당찮게, 늘 자기중심적 소동극의 주인공으로 자란 저라는 아이도 어느덧 집안의 두 번째 남자로 무럭무럭 성장하고 만 것입니다. 사람은 나면 뭐라도 하며 먹고 자라고 성체로서 짧은 전성기를 누린 후 노쇠하며 죽음을 기다리기 마련입니다. 말인 즉, 저는 두 번째 위치에서 피할 수 없이 그 위로 오를 터인데, 그 사이 집안의 일인자가 전성기를 지난 것도 모른 채, 지금처럼 제 멋에 살다간 지켜야 할 가족을 향한- 어쩔 수 없는 죄책감에 시달릴 게 뻔했습니다. 바람대로 활동적 미술인간이 되고자 하는 제 양심마저 지키지 못할 거라는 불안이 엄습했다, 이 말입니다.
- 공포와 두려움을 감시할 수 있는 인간
사실 아버진 제게 맡겨진 일들에 썩 내켜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계십니다. 못내 따른 일이니 즐거울 수도 없을 뿐더러, 몸에 탈이 나는 것도 당연합니다. 예술과 함께 살고자 버틴 탓에 얻은 질병까지 누굴 원망할 순 없는 노릇입니다만, 덕분에 제 모양새는 정말 끔찍해졌습니다. 허리 디스크와 목의 담 증세를 시달리면서도 몸이 부서지기 직전까지 일에 몰아붙이는- 마치 그레고르(변신, 카프카)라도 된 듯합니다. 나무형이 제게 런던에 있을 때부터 줄곧 유리-몸이라고 놀리더니, 그 말을 더 이상 부정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레고르는 흉측한 해충이 돼지만, ‘제 몸이 유리몸뚱이라니! 아, 생각해보니 그 몸은 보기엔 아름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단언컨대 회사일은 아름답지 않습니다.’
저는 다만 제 아름다울 주말만을 생각하기로 합니다. 하니 얼마든지 저 빌어먹을 정도로 인체가학적인 근무환경도 견딜 수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제 지독한 엄살의 이유는 이깟 어울리지 않는 일- 누군가의 권력과 명령에 따라야한다는 굴종의 핑계로 원하는 것에 마음껏 집중할 수 있는 여력마저 빼앗긴다는 투정이 아니라, 어쩌면 지금의 모습 탓에 유일한 안식이던 놀이터로부터 영영 멀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공포가 퍽 싫습니다. ‘미술을 할 수 없다니요.’ 그러니 견딜 수 없는 것도 참아내기에 익숙해져야만 합니다. 그렇게 사무실의 날들을 꾸역꾸역 삼켜내야 예쁜 주말을 가질 수 있는 저는- 그제야 가까스로 그 공간의 공동주인이자 자유로운 미술가가 되는 것입니다.
- 억지인간
저는 말하기 힘들 정도로 억지스럽습니다. 자유를 구하려 주말에도 일을 하니까요. 공간의 시설과 장비를 점검하고, 다음 전시를 위한 작가미팅을 하고, 운영자금을 조달하려 정부지원금 탈 궁리에 관련 부처의 웹을 부지런히 기웃거립니다. 그런 다음 저와 마치, 지구 정반대 편에 서 있을 법한 아버지와 저를 제외하고- 라도 다른 가족구성원들을 위해 장남으로서 그들의 일원임을 증명해 보여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정 쪼갤 수 없는 원자를 쪼개듯 어찌 시간을 쪼개선 지금의 작업과 미래의 자신을 고민합니다. 동시에 연애활동까지 하니, ‘이것은 정녕 저 위대한 철학가 하이데거와 과학자 아인슈타인도 설명해내기 어려운 현상이 아닐까요?’ 요는 ‘현존재’(Dasein, 하이데거)인 척 모든 걸 무리하여 기어코 해내고 마는 제가- 정작 자신으로부터는 정서적으로나 물리적으로 멀어진 참 한심한 인간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저란 사람은 절대로 예술행위를 포기하거나 멈출 수 없습니다. 언뜻 외부론 강직한 집안의 장손으로 착실히 훈련 중인 가짜의 저를, 스스로 진짜 돌볼 수 있는 안식은 미술과 음악이 유일합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결코 접할 수 없는 판타지 속에서 현실의 그 남자를 성당의 아버지로 대체하는 환상을 창조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성당에 취미를 붙이면, 비로써 분리된 저는 하나둘, 판타지를 현실의 행위로 옮길 수 있습니다. 상상된 그 반영을 묘사하기 위해 거창하게 제 정체성이란 아들이 아버지의 서사를 부정하고 이러쿵저러쿵 하는- 뻔한 토도 달지 않을 작정입니다. 그냥 신체적 사춘기가 지났어도 여전히 아버지를 즐기지 않습니다. 단지 그렇습니다. 진정 독립적이어야 할 저로부터 오로지 자신만 어르기를 바랄 뿐, 다른 건 별 관심도 없습니다. 솔직히 모두 가족에게조차도 허락할 수 없는 독자적 영역을 원치 않습니까? 핑계 같지만, 저도 남들처럼 유일한 사물과 장소를 갖으려 어린 시절 방황을 일삼았던 겁니다. 또 여러분은 그런 바람이 한 번도 없었는지요. 현실가족이 너무 혐오스러워서, 또 인간사회가 지독히 잔인하고 비열해서 예술로 달음박질 친 그런 경험 말이지요. 돌이켜 보건대 저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그래서 평생 그랬던 것입니다.
달음박질이라고 했지만, 아마도 기꺼이 뛰어 들었다라고 봐도 괜찮을 겁니다. 어릴 적, 저란 아이는 장난감과 놀고 만화책을 읽는 항상- 성실하고 착한 아들이어야 했지요. 그렇게 메소드 연기를 하고 나면 보상으로 그토록 바라던 볼트론과 만화책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던 제게만 주어질 것들이- 다행히 이런 ‘이기적 유전자’(리차드 도킨스)에게도 따뜻하고 헌신적인 모체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지요. 머리가 크고 나선 차츰 독립의 의지가 강해지니, 것 마저 응당 제 벌이로 해내기 이르렀습니다. 심지어 그 바쁜 와중에 억지웃음까지도 익혔습니다. ‘그래, 유리 창 너머로 웃어주자.’ 이런 마음이었다, 랄까요. 사실 ‘사회적’이라는 게 무슨 뜻인지 여전히 모르지만, 드디어 제 모습은 투명한 미소로 웃고 있는 저 유리 수납장 같습니다. 마치 밖에서도 안이 훤히 보이는- 삶을 버틴 결과입니다. 이 얼마나 예술가로서 구하고자 하는 생(生)을 향한 생(生)의 정연한 태도란 말입니까?
- 정연한 회고전(성장통 이어가기)
저는 그 체계 위에 수집한 기록물들을 정연히 진열합니다. 스코틀랜드에서 예술학생으로 지내며 제 미술의 이기와 이타심에 대해 고민하던 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무엇이던 인간은 한 가지 정도는 모으더군요. 그게 돈이던 기억이던. 오늘날에는 수집이란 행위가 사회적으로 재생산, 전이와 전염 또는 오염이라는 연련 과정을 재연(re-enactment)을 통해서 미적 재현(representation)이 가능한 의미도 가지지요. 그것을 미술로 기록하던 저란 존재 역시 모아지거나 수집된 밈(Meme)의 개체임을, 겉보기에 어느 평범한 소년들과 닮았을 제 일상의 취미가 인터넷 문화를 통해 순환하는 밈다움으로 그 생명력을 지닌다는 사실을 알려드립니다. 그 존재로의 밈에게는 적절한 때 사이버게임중독이란 정신적 치료가 이행되어야 하고, 오직 밈의 수집품만이 가치를 지닌 사회적 요소라는 점을 고리타분한 인간들도 이제 알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열병식으로도 비춰질 법한 이번 행사가 제게는 매우 의미 있는 삶의 재출발이자 변곡점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를 회고전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이미 말했지만, 이 전시의 정체성이란 ‘좋아하고 아끼는 것을 모으는 힘’을 미술의 목적으로 두고 제 스스로의 미술에 초대된 여러분께 보통의 예술가로 인정받고자 함에 있습니다. ‘타자’가 아닌 타인의 평가로부터 존중받기를 원하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저는 생명력을 잃지 않겠습니다. 알려진 바와 같이 ‘동시대’ 미의 경험은 근본적으로 나르시시즘(Narcissism)적 입니다. 제 미적 경험은 분명히 ‘공적 측면성이 아니라 나르시시즘적인 중심성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는 철학가 한병철의 지적처럼, 이러한 애착이 저로서의 미술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명백히 해두자 합니다. 또 지금껏 해내고 있으니, 이것은 철저히 삶과 미술이 일맥상통하는 고양된 삶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저는 평범한 취미를, 평범한 제 미술을 사랑합니다. 저라는 미미한 역사에게 게임, 판타지 소설, 망가와 장난감 수집은 끝나지 않을 성장통의 기록이자 ‘아름다움의 구원’(Die Errettung des Schönen, 한병철) 바로 그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 역사를 드러내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도 이 까닭입니다.
끝으로 이 공간에 초대된 여러분이 저와 함께 미술놀이를 즐기길 희망합니다. 제 성장통의 과정을 확인하고 놀이의 구원을 통해 ‘이어가기’ 중인 제게 미적 영감을 주십시오. 여러분과 저는 예술과 삶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 하고 있거나, 할 수 있습니다. / 강나무 미술수필가
주석
1. 변신(Die Verwandlung, 1916) 프란츠 카프카의 단편소설 중 하나이다. 주인공 그레고르가 가족의 비인간적 공포에 시달리다 결국 억압된 소망을 표현하지 못하고 자신의 가족으로부터 최후를 맞이한다.
2. '거기(Da) 있음(sein)'이라는 일차적인 의미이나 본질은 실존의 가능성이다. 이를 실존성 즉‘세계-내-세계(Das in-der-Welt-sein des Dasein)'에 더불어(공동의) 처해 있음(상태성)의 ’이해‘라는 실존 범위를 가진다.
3. 밈(Meme)의 개념은 리차드 도킨스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 1976)에서 처음 등장한다, 한 사람 혹 집단의 자기복제의 방식으로 지성(사상, 믿음)이 전달될 때 유전적 모방이 가능한 사회적 단위를 총칭한다.
4. 나르시시즘(Narcissism) 신화에서 그 어원을 따왔으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용어로 유명하다. 오직 자기 자신이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5. 아름다움의 구원(Die Errettung des Schönen, 2016) 저자에 따르면 타자를 회피하지 않고 곁에 머무르려는 태도가 타자에 대한 존중 즉 아름다운 공존과 대상에 대한 윤리적 공정성을 구현한다고 했는데, 이를 이루는 요소가 자유와 예술의 자기목적성이라는 헤켈의 주장으로부터 근거했다.

출처: 쇼앤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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