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음산방
2023년 7월 25일 ~ 2023년 8월 6일
처음 송미령과 작업을 하기로 생각해본 건 그와 나의 사이에 특별한 계기나 스토리가 있어서는 아니다. 그동안 누군 가와 함께하는 전시도 결국 나 스스로 처음부터 끝까지 고민해야만 하는 일로 여겨왔다. 이번만큼은 함께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싶었다. 그리하여 나는 당장은 혼자 출발선에 설 수 없던, 그러나 작은 출발만 주어진다면 누구보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끊이지 않을 사람을 떠올렸다. 부르짖을 이야기가 있던 사람, 미령이었다.
작업을 지속하다 자연스레 창작과 멀어진 사람들을 꼽으라면 그 수가 너무 많기에 개인의 이야기로 다룰 바엔 사회적 현상으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다지만, 나는 그녀가 멀어진 것처럼 보이는 상황이 단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말할 수가 없다. 오히려 그녀는 내 눈에 언제든 무언가 할 준비가 되어 보였다. 작업을 하려면 공간도 작업실도, 주변인들의 배려 혹은 희생도 필요하기에 그런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돌아오기]가 무척 힘이 든달까. 그렇지만 어디로 돌아 온다는 말인가? 퇴출당한 명왕성(plutoed)1)을 떠올려본다.
송미령은 인간관계 혹은 집단 속에서 겪는 스트레스를 작업으로 다루어왔다. 지속적인 상처에 좀처럼 무뎌지지 않았던 작가는 오히려 상처를 줄 수 있거나 다소 위험해 보이는 유리-혹은 비슷한 물성의 재료-를 깨는 행위를 지속, 그리 고 그 후 유리에 불을 가해 결합시키며 새로운 형태를 만들고자 시도했다. 상처와 파괴 이후 회복의 가능성을 이야기한 고 스스로 해소해 보고자 한 것이다. 비록 결과물이 이전과 같지 않을지라도 말이다. 관계에 기민하게 반응하던 작가는 이제 ‘나의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오는 부담감, 피로감,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본인에게 당연시된다는 무력감과 고독 가운데 서 있다. 이번 <깨어진 나의 침묵>에서는 다루기 까다로우며 방심하면 너무도 쉽게 상처를 내는 유자철선(有刺 鐵線, barbed wire)을 통해 무엇인가를 지키려고 하는 동시에 계속해서 자잘한 상처를 입게 되는 과정을 표현하고자 했다. 계속에서 내상을 입는 자신의 따뜻한 성정과는 반대로 늘 차가운 재료를 선택하게 된다고 한다면서. 그러나 작업을 자세히 보면 상처-로 보이는 날카로운 부분-에 무언가 돋는 형상이 있거나 다시 덮인 행위를 반복하고 있음을 알 수 있 다. 원망스럽게도, 더 큰 회복은 찢어질 듯한 고통 위에 내려앉는 것이다.
송미령은 지난 3년간 ‘일들’을 겪어왔다. 어떤 일을 겪지 않는 사람은 없다. 겪고 흡수하거나 떠나보내거나 잊거나 머물 더 있거나 붙잡고 있거나 눈물짓거나 할 뿐이다. 그중 미령은 큰 기쁨도 있었지만 죽을 뻔하거나 힘겹거나 아프거나 고 통스럽거나 내려놓지 못했고 그 모든 일들을 수행과 같은 침묵으로 보내왔다. 사람이 수행적일 때는 어둠이 깊어지고 그 어둠의 고요에서 고독한 자신을 발견할 때다. 그녀는 3년간 하늘이 밝을 때나 어두울 때나 이러한 침묵과 내면의 어 둠을 짙게 경험하였다. 스스로 그 어둠 속에 잠겨있거나 창조하지 못한 채 머물러있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녀가 침묵 속에서 기도를 할 때, 그 내용은 얼마나 처절한가. 너무 괴로우면 절로 기도하게 된다. 그에 대한 응답으로 침묵을 깰 기회가 찾아왔다고 믿는다.
폭풍우는 불안정한 상태에서 시작하나 에너지를 모으며 밀고 나아간다. 시작과 끝은 명확하지 않지만 어느새 생겨난 바람과 물이 어떠한 조건을 따라 형성과 소멸을 주고받듯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2) 이미 자신의 몸을 통해 두 번의 창조를 경험하고 고독감이 지독했던 만큼 깊이를 가지게 된 작가가 이제 오랜 침묵을 깨고 문을 열어놓을 준비를 마쳤다. 언제 고갈될지 모르나 끊임없이 반복되어온 상반된 것들이-상처와 회복- 결국 나아가게 하는 에너지가 되어주었던 것처럼, 이 전시가 자신만의 재료로 만들어내는 창작 순환 주기의 시작이 되길 바라며.
글 변혜은
1) 명왕성되다, 2006년 8월 24일 국제천문연맹의 새로운 행성 기준이 마련되면서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명왕성은 왜소행성 134340으로 분류되어 태양계 행성 지위가 박탈되었다. [위키백과, 명왕성] 필자가 작가를 명왕성에 대입한 것은 단지 주변으로 밀려났다거나, 누군가가 중심이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것과 상관없이 그냥 자신의 자리에 있었을 뿐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2) 키나 레스키, 『창의성은 폭풍우처럼』, 에피파니, 2017, 26쪽
작가소개
송미령은 남서울대학교 유리조형전공 학부와 국민대학교 입체미술전공 석사를 졸업했다. 인간관계 혹은 집단 속에서 경험한 상처와 회복의 경험을 날카롭고 깨지기 쉬운 오브제와 유리를 결합하여 표현하는 작업을 진행해왔다. 주요 전시로 <베일의 중간>(아트스페이스 엣, 2019), <아트스페이스 플라스크 릴레이 개인전>(플라스크, 2016), <종이미술관 초대전>(종이미술관, 2015) 등이 있다.
변혜은은 가천대학교 조소 학부와 국민대학교 입체미술전공 석사를 졸업했다. 현재 시점에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과거의 경험했던 장면, 상징과 연결하여 전시장에 구현하는 방법에 관심이 있다. 주요 전시로 <Limited Portal>(옹노, 2022), <두꺼운 문>(중간지점, 2021), <염리동 도큐멘타 프로젝트>(염리동 빈집, 2019)이 있다.
작가: 송미령
기획: 변혜은
출처: 무음산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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