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토리2
2025년 8월 23일 ~ 2025년 9월 5일
《슈가슈가뤂》은 설탕이라는 물질에 대한 예술적 연구 프로젝트입니다. 설탕을 둘러싼 복잡한 문제들이 있습니다. 설탕에는 노예무역, 식민주의, 근대화, 자본주의 같은 정치경제적인 말들과 혈당, 비만, 저속노화, 대체당 같은 생의학적인 말들이 동시에 연결됩니다. 서로 다른 담론에 속한 것들이 설탕을 둘러싸고 상호작용합니다. 설탕을 매개로 한 물질과 담론 사이를 넘나드는 일종의 순환 체계(loop)가 있는 것이죠. 설탕은 과학과 사회, 신체와 물질, 문화와 자본, 미시적인 것과 거시적인 것이 어떻게 얽혀 있는지 드러내는 연결 고리를 우리에게 제공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설탕은 열대에서 자라는 사탕수수를 정제하여 만들어졌습니다. 열대 지방의 플랜테이션 농장에서 아프리카 노예들의 노동으로 만들어진 산물이 유럽에서 소비되는 착취적인 삼각 무역의 표본이죠. 식물에서 추출한 자당을 설탕으로 정제하는 기술은 근대화 전반과 얽혀 있기도 합니다. 열대 식민지를 가지지 못한 유럽 국가들이 온대 작물인 사탕무에서 설탕을 정제하는 기술을 발달시키면서 제국 사이의 역학 관계 변화를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한국 근대사에서도 설탕은 중요한 위상을 차지합니다. 단적으로 국가의 지원을 받아 성장한 제일제당이 오늘날 한국 자본주의와 첨단 산업의 정점에 있는 삼성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을 떠올릴 필요가 있습니다.
설탕은 먹기 위한 물질인 만큼 인류의 식문화를 바꾸어 놓기도 했습니다. 설탕의 달콤함은 생물학적으로, 영양학적으로 또 문화적으로 선호되었습니다. 근대화 과정에서 인간이 섭취하는 전체 열량의 많은 부분을 설탕이 차지하게 되지요. 통치의 관점에서 설탕은 노동력을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재생산하는 수단이기도 했습니다. 노동자와 군인의 식사에 설탕 기반 식품이 점점 더 많아진 것은 단순한 기호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설탕은 비만과 당뇨 등 질병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며 과거와는 전혀 다른 취급을 받습니다. 대체당과 합성 감미료가 인기를 끌고, 신체에 기기를 부착해 개인의 혈당을 데이터화 하는 일도 점점 일상이 되는 중입니다. 같은 물질이라도 어떤 말들에 둘러싸이냐에 따라서 그 존재는 완전히 다른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설탕은 인간의 물질적 구성에 큰 영향을 주었던 만큼, 설탕을 둘러싼 네트워크의 변화는 인간 또한 변화시키고 있죠. 《슈가슈가뤂》의 두 예술가는 이렇게 복잡한 설탕이라는 물질의 네트워크를 각기 다른 예술적 방법론으로 추적합니다.
김민영의 〈Sugar Engine〉은 작가의 몸에서 실시간으로 측정되는 혈당 데이터와 금융 주가 데이터를 연동한 자동 트레이딩 알고리즘입니다. 연속혈당측정기가 포착하는 혈당 스파이크는 트레이딩 알고리즘의 신호가 되어 매수와 매도의 타이밍을 결정합니다. 여기에서 내밀한 생리 현상은 시장의 언어로 번역되고, 사적인 신체 활동은 투자 전략으로 기능하게 됩니다. 이 기묘한 연동은 더 나은 수익률, 더 안정적인 혈당, 더 효율적인 신체를 향한 기술의 진보 자체를 무력하게 만드는 달콤함의 힘을 탐색합니다. 〈Sugar Engine〉에서 발생한 수익률은 〈S&P(Sugar and Poor's)〉의 당도로 변환되어 관객에게 제공됩니다. 생체 정보와 연결된 자본의 산물이 당분이 되어 또 다른 신체의 혈류로 흡수될 때, 그들은 새로운 데이터 생산자가 되어 순환을 발생시킵니다.
이지성의 〈Stransition〉은 솜사탕 기계, 달고나 기계, 탕후루 기계, 삼겹살 배관 등 여러 장치를 브리콜라주하여 설탕의 화학적 순환을 만들어 냅니다. 여러 가지 레디메이드 기계들을 재조합한 이 작품은 자동화 공정의 컨베이어 벨트처럼 정밀하고 기계화된 효율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설탕을 섬유질로 만들고, 액체로 용해하고, 고밀도로 응축한 뒤 다시 입자화 시키는 과정은 아무 것도 생산하지 않고, 단지 순환을 매개할 뿐입니다. 아슬아슬하게 연결된 장치와 장치 사이로 퍼져나오는 달콤한 냄새는 그 자체로 몸과 마음의 반응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여기 이상한 변환 장치는 설탕에 부여된 과도한 담론적 의미를 일시적으로 유보하고, 순수하게 물질로서의 설탕과 신체가 맺는 관계를 재조명하는 것을 시도합니다.
두 작가가 만들어내는 각각의 순환은 물질과 신체 사이, 물질과 물질 사이, 물질과 세계 사이, 혹은 두 작업 사이의 다층적인 네트워크를 가시화합니다. 설탕이라는 하나의 물질을 파고들어 자본, 기술, 문화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나아가 그것이 우리의 신체를 어떻게 다시 구성하고 있는지, 우리의 몸과 물질 세계의 관계를 보다 확장된 맥락에서 느껴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참여 작가: 김민영, 이지성
기획: 권태현
그래픽 디자인: 정사록
후원: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출처: 팩토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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