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림박물관 신사
2026년 9월 1일 ~ 2026년 12월 12일
본 전시는 동양의 전통적 시간관을 바탕으로, 근대 이전 사람들이 시간과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삶을 영위해 왔는지를 탐구한다. 전통 사회에서 시간은 단순히 수치로 측정되는 양적 개념이 아니라, 우주·자연·인간의 삶을 하나로 잇는 근본적인 질서였다. 전시는 시간에 대한 사유, 관측, 일상 속 실천을 세 축으로 삼아 전통적 시간 의식을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이번 전시는 현대작가 안규철(1955-), 강이연(1982-), 이완(1979-) 3명의 작가와 함께 한다.
제 1전시실 - 순환循環, 되돌아오는 시간
우리는 흔히 시간을 과거에서 미래를 향해 흘러가는 직선적인 흐름으로 여긴다. 그러나 동양의 고유한 사유 속에서 시간은 단순히 흘러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되돌아오며 만물을 길러내는 ‘순환의 질서’로 이해되었다. 시간은 멈추어 있는 찰나의 ‘때[時]’와, 그 순간들을 이어주는 ‘사이[間]’가 서로 맞물리며 이루어내는 살아 있는 흐름이었다. 낮이 지나 밤이 오고, 봄의 생동 뒤에 겨울의 고요가 찾아오듯, 시간은 우주의 섭리 아래 쉼 없이 순환하며 자연과 인간을 함께 품어낸다. 이러한 시간관(時間觀) 속에서 삶은 단절과 소멸로 끝나지 않으며, 상실 또한 다시 돌아오기 위한 과정으로 이해되었다. 끝없이 회전하며 만물을 품어내는 거대한 수레바퀴와도 같은 시간의 질서는, 훗날 불교(佛敎)의 윤회적(輪廻的) 세계관과 만나며 더욱 깊고 장대한 우주의 질서로 확장되어 갔다. 이 공간에서 관람객은 보이지 않는 시간의 흐름이 어떻게 자연과 인간, 우주를 지탱하는 근원적 힘이 되었는지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안규철 작가의 <머무는 시간 Ⅰ>, <머무는 시간 Ⅱ>, <식물의 시간 Ⅱ>는 시간의 흐름과 순환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작가는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빗물이 곧바로 강과 바다로 돌아기지 않고 땅에 스며들어 머무는 덕분에 이 세계가 존재한다는 생각을 떠올렸다고 말한다. 이는 흐름과 머무름이 함께 어우러져, ' 때[時]'와 '사이[間]'가 하나의 시간을 이루는 과정을 보여준다.
제2전시실 - 관상觀象, 새겨진 시간
시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붙잡을 수도, 멈출 수도 없는 흐름 속에서 인간은 늘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자 했고, 그 답을 하늘에서 찾았다. 해가 뜨고 지는 궤적, 달이 차고 기우는 모습, 계절마다 달라지는 별자리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 시간을 드러내는 가장 확실한 징표였다. 옛사람들에게 하늘은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우주의 질서와 시간이 새겨진 거대한 지도였다. 사람들은 천체(天體)의 운행(運行)을 관찰하고 기록하며 농사의 시기를 정하고 절기(節氣)를 마련했으며, 삶의 질서를 세워 나갔다. 하늘의 무늬를 읽는다는 것은 곧 보이지 않는 시간의 흐름을 인간의 감각과 언어로 이해하는 일이었다. 해시계 위를 스쳐 가는 그림자와 천문도에 새겨진 별의 자취는 모두 흐르는 시간을 붙잡고자 했던 노력의 흔적이다. 이 공간에서 관람객은 추상적인 시간이 어떻게 구체적인 ’시각(時刻)’으로 드러나고, 인간의 삶과 질서를 이루는 기준이 되었는지를 만나게 될 것이다.
강이연 작가의 은 '무한한', '끝업는'이라는 뜻의 제목처럼 작품은 인간과 자연, 생명과 사물이 서로 얽혀 이어지는 순환적 관계를 조명한다. 산업혁명 이후 증가하는 이산화탄소의 농도 데이터를 측정하여 영상에 적용시켰으며, 이는 시간이 흐를수록 가속화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보이지 않는 시간의 질서를 해와 달, 별의 움직임을 통해 측정했던 전통 천문의 사유를 데이터와 빛을 통해 현대적으로 감상할 수 있다.
제3전시실 - 세월歲月, 스며든 시간
시간은 단순히 시계가 가리키는 숫자나 효율을 위해서 나누어진 단위가 아니었다. 전통 사회에서 시간은 자연의 흐름에 맞추어 살아가기 위한 삶의 기준이자 오래된 지혜였다. 사람들은 순환하는 시간의 질서를 거스르기보다 그 흐름에 자신을 맞추며, 마땅히 행해야 할 ‘때’를 아는 것을 중요한 삶의 태도로 여겼다. 인간의 시간은 자연과 인간이 서로 맞물려 살아가는 조화의 시간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하늘의 움직임과 계절의 변화를 살피며 절기(節氣)를 마련하고, 역법(曆法)과 시간체계를 통해 시간의 흐름을 헤아리고 삶의 질서를 세워 나갔다. 선비의 삶과 농부의 일, 해마다 되풀이되는 세시풍속은 모두 시간과 함께 살아온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처럼 시간은 자연과 인간을 이어주는 보이지 않는 질서였으며, 일상의 곳곳에 스며들어 삶의 결을 이루었다. 이 공간에서는 삶의 통과의례와 세시풍속에 스며든 시간의 흔적들을 되돌아본다. 그것들은 시간의 흐름 속에 삶의 의미를 새겨 넣고자 했던 오래된 지혜의 기록이다. 시간은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어지만 각자의 경험과 기억 속에서 서로 다른 모습으로 쌓여간다. 어떤 시간은 오래도록 머물고, 어떤 시간은 한순간 스쳐 지나간다. 이곳에서 관람객은 삶 속에 켜켜이 쌓여온 저마다의 고유한 시간을 마주하게 된다.
이완 작가의<고유시>는 같은 형태의 시계이지만 서로 다른 속도로 움직이며,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어진 것처럼 보이는 시간이 실제로는 사람마다 다르게 경험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시간은 절대적으로 균질한 기준이 아니라, 사람마다 다른 노동과 생활의 리듬 속에서 고유하게 형성되는 것을 보여준다.
출처: 호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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