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움아트스페이스
2017년 5월 5일 ~ 2017년 5월 31일
작가 신종식의 근래 작업 경향은 눅눅한 공간에서 빠져나와 해맑고 산뜻한 공간으로 향한다. 회한에 젖은 듯 고뇌하는 인간상, 울적한 과거로 뒷걸음질이 아니라 살아 숨쉬는 생명을 향한 발돋움, 햇빛을 머금은 풍경이 찬란한 빛깔의 물결을 타고 화면 위에서 넘실거린다. 신종식의 표현은 아득한 신화의 세계에서 따사로운 햇살이 쏟아지는 현실로 돌아오고 있으며 화면 분위기가 콧노래를 부르는 듯 흥겹다.
마티스의 작품처럼 삶의 긍정성과 쾌활성으로 물들인 그의 회화는 축복의 공간이자 꿈을 유통하는 공간이다.(작가는 파리 유학시절 지중해 비엔날레에서 영예의 ‘마티스 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컬리리스트의 면모를 짐작해 볼 수 있다.)
화면은 무엇보다 ‘색의 향연(饗宴)’으로 술렁인다. 순도 높은 색채로 어느 때보다 풍부한 회화를 탄생케 했고, 색을 향한 애정이 곳곳에 묻어난다. 여전히 달팽이나 물고기, 잎사귀, 사다리, 새 이미지를 기용하고는 있으나 종전에 보이던 암모나이트, 소라껍질, 생선뼈, 원주 이미지들은 자취를 감추었다. 근래에 나타나는 이미지들은 화면에 생동감을 촉진하는 구실을 한다.
작가 말대로 그 이미지는 동화의 세계에서나 나옴직한 이야기처럼 나름대로 줄거리가 있다. 가령 어느 시골 달팽이가 어느 날 불쑥 봇짐을 짊어지고 세상으로 나와 드넓은 바다와 산을 여행하기도 하고, 성(城)이나 도시의 빌딩 주위를 서성거리기도 하며, 사다리를 타고 하늘 높이 올라간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꿈꾸는 자의 기행(紀行)’이 아로새겨져 있는 셈이다. 과거에 그런 여행을 신화의 형식을 빌려 전달했다면, 근래에는 유쾌한 정경(情景)들의 인상을 묘출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동양화의 산점투시(散點透視)처럼 이미지를 군데군데 포치해 놓았기 때문에, 작품에서 기둥줄거리를 단번에 알아챌수는 없다. 우리가 마주치는 것은 시원한 바다와 그 언저리 풍경, 황금빛 오렌지나무, 수정처럼 보이는 사각기둥과 잎사귀 무늬들이다. 그러므로 신종식이 전달하려는 것은 이미지를 통해서가 아니라 색채와 그 색채를 발현하는 구조로더 자세히 알아볼 수 있을지 모른다.
만일 작가의 작품에서 어떤 ‘충일성(充溢性)’을 찾아볼 수 있다면, 활발한 표정의 색면에서 가능하다. 여러 모양으로 분할한 색면은 모두 순색으로 뒤덮여 있다. 더 밝아질 수 없고, 더 이상 채도를 높일 수도 없는 빛깔이다. 그러나 강렬하지 않고 질료의 성질이 야성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적절한 대비로 색채의 본성을 적절히 통제하고 전체적으로 균형과 조화를 꾀했기 때문이다.
작가는 파렛트 없이 물감통에서 직접 물감을 찍어 사용한다. 물감의 혼합이 없으니 당연히 색채의 채도가 높아지고 명료성도 덩달아 올라간다. 순수한 상태의 감수성이 적극적인 색채표현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와 함께 작가는 세부를 대법하게 축약하고, 그 대신 순색으로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정념(情念)의 문을 두드리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색채와 리듬의 맥동이 화면에 가득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필자뿐만이 아닐 것이다. 그림속 여행이 일종의 ‘유희’ 분위기와 ‘축제’ 분위기로 바뀌고, 덩달아 들뜬 기대심리를 촉발케하는 것은 신종식의 특별한 색채감각에서 비롯한다.
좀 더 자세히 화면을 들여다보자. 가까이서 보면 용의주도하게 제작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같은 평면이라도 심도 차에 유의한 흔적이 드러난다. 설명을 하면 바탕에서부터 그림 표면까지 여러 단계를 두어 두께감을 이끌어냈다는 말이다. 맨 천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부분, 수채화처럼 묽은 톤으로 처리한 부분, 그 위에 마스킹 처리를 하고 종이를 두드려 그 표정을 살리고, 다시 색을 덧칠하고 이미지를 올렸다. 이렇듯 매 작품마다 섬세한 정지작업이 깔려 있다. 보기는 쉽지만 그리기는 수월치 않은 작품이다.
색면과 색면 사이는 작가가 특별히 신경을 쓰는 부분이다. 그의 작품은 색대비가 유난히 세기 때문에 색과 색이 엇물리는 중간지대를 처리하기 어렵다. 엉성한 이음새는 자칫 작품을 어색하게 만들 수가 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어음부분에 공간을 만들어 비워놓아서 선이 유연히 흐를 수 있도록 만드는 수법이다. 이와 함께 중간 색조로 경계를 해결하는 등 작가는 여러 각도에서 그 방안을 모색했다. 사소한 부분에도 각별히 정성을 기울인 흔적을 볼 수 있다.
퍼즐처럼 분할한 자유로운 모양새의 색면도 볼거리를 제공한다. 거기에는 서로 다른 표정이 깃들어 있다. 언뜻 보면 반점으로 된 것, 획선, 기호모양, 파도무늬 등 여러 갈래로 나뉘어진다. 각각 표정도 다르지만 거기에 가해진 몸짓도 다르다. 긁고 찢고 두드린 흔적이 있는가 하면 흘리고 겹치고 문지르며 그런 흔적까지 다양하다.
성질이 서로 다른 것들이 한곳에 모여 있다는 것이 이채롭다. 서로 다른 것들을 추스르고 모으며 얼개짓는 것은 모두 작가가 맡은 일이다. 여기에 작품 뒤에 가려진 작가의 의도를 엿볼 수 있지 않을까. 갈기갈기 찢겨 흩어진 것을 공간 안에 통합해서 작가가 꿈꾸는 세계의 ‘기특한’ 보조자로 삼고 있는 것이다. 애초에 그럴 의도가 없었다면 부분들의 통합을 이뤄내지 못했을 것이다. 얼마든지 무너져 뿔뿔이 흩어질 수도 있는 것들이 용케도 ‘통합의 장(場)’으로 이끌어냈다.
그림에서 흥미로운 부분 하나를 더 주목하면, 그것은 신기한 오렌지나무다. 황금빛을 띤 오렌지나무는 이 보다 황홀해보일 수가 없다. 스스로 빛을 머금은 듯 찬란하다. 그런데 이 식물이미지는 위에서 보면 광채를 띠지만 밑에서 보면 무광채이다. 펄 안료를 입혀 보는 위치에 따라 다르게 보이게끔 만들었다. 식물의 아름다움을 한껏 발휘하게 만든 작가의 생명존중 사상을 읽어볼 수 있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이 그렇지만 그림 속의 오렌지 나무는 특별히 생명의 충만함을 만끽하고 있다.
한편 신종식이 근래에 시도하는 릴리프작품들은 위에서 언급한 이미지를 부조형식으로 올려 세운 것이다. 회화작품에 비해 색채의 찬란함은 덜 하지만 새가 노래하고, 물고기가 춤추며, 식물이 지나가는 바람에게 반갑게 미소를 보낸다. 저 멀리 보이는 구름과 하늘이 이 모든 것들을 사랑스럽게 품고 있는 형국이다.
이것은 입체 작품에서도 엿볼 수 있다. 사각 파이프에 여러 빛깔의 옷을 입힌 작품은 한층 적극적으로 자유로운 세계를 노래하고 있다. 가장 적극적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있다. 달팽이가 기어가고, 공중에서는 새가 날며, 광휘의 태양이 있는가 하면, 사다리와 물고기 이미지가 들어있다. 여러 이미지들이 어울려 자유와 꿈을 형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갖가지 원색들이 넘실거리고 재미있는 꼴이 서로 서 있으면서도 서로 기대어 균형을 잃지 않는 상호의존성을 엿볼 수 있다. 작품을 보고 있자면 작가가 꿈꾸는 세계에 빠져들어간다. 잠깐 동안의 일탈이 유쾌하게 느껴질만도 하다.
종합하면, 그의 작품에는 ‘꿈꾸는 자’의 자유가 실려 있다. 모처럼 우리 곁에 다가온 ‘자유의 훈풍(薰風)’은 반갑기만 하다. ‘더 멀리’, ‘더 높이’ 올라가 누리게 될 저 짜릿한 자유는 과연 어떤 기분일까? 문든 그런 생각에 잠긴다.
OPENING : 2017.05.12 PM05:00
출처 : 세움아트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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