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가변크기
2019년 3월 14일 ~ 2019년 3월 30일
재연 너머의 구현
맥락이나 시간이 삭제된 일상
신지혜의 개인전 ≪seize on≫에서 우리는 작업 속의 특정한 대상보다는 그 전체적인 구도에 주목하게 된다. 제목과 작업 사이의 관계가 자명해야만 할 필요는 없지만, 각각의 제목과 작업을 맞붙여보아도 사진 안의 내용을 짐작하기 어렵다. 예컨대 <발레슈즈>에서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발레, 토슈즈, 혹은 신발 그 무엇과도 관계가 없는 조형물이다. 이 분홍색의 조형물은 발레슈즈를 연상하게 하기는 하지만 신발의 기능을 전혀 할 수 없으며 신발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작업의 구도가 주는 이미지 때문에 발레슈즈를 자연스럽게 연상하게 된다.
신지혜가 사진을 기반으로 작업해왔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seize on≫ 속 작업들에 사진이라는 이름을 붙인 후에 다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익숙하고도 당연해 보이는 질문이 떠오른다. 신지혜의 ‘사진’은 과연 무엇을 찍은 것일까? 이를테면 <발레슈즈>는 발레슈즈를 찍은 사진일까? 이번 전시에서 신지혜는 인스타그램에 업로드된 타인의 일상 사진을 작업의 소재로 삼았다. 그러나 <발레슈즈>, <말없이 셋>, <무릎 위에>와 같은 작업들은 우리에게 일상적이라기보다는 추상적으로 다가온다. 이 작업들에서 원본이 가진 누군가의 게시글이라는 맥락이나 일상이라는 개념에 전제된 시간의 흐름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 여기에는 단순히 인스타그램 속 사진의 재연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seize on≫에서 우리가 보는, 혹은 보아야만 하는 것은 무엇일까?
평면, 입체, 그리고 다시 평면: 줌과 크롭에 의한 사진적 행위
기실 이번 전시에서 <발레슈즈>는 가장 직관적인 제목을 가진 편이다. <말없이 셋>, <네 마리의 캔버스 새>, <마주 보며>를 비롯한 다른 작업들은 제목과 작업이 가리키는 바를 쉽게 상상하기 어렵다. 조금 더 단서를 얻기 위해 작가의 작업 과정으로 눈을 돌리면, 신지혜가 자신의 작업을 설명하는 “사진적 행위”라는 말에 주목하게 된다. 사진 촬영이나 사진 찍기 대신 사진적 행위라는 용어를 선택했듯이, 작가는 주로 “줌(zoom)”과 “크롭(crop)”을 이용해서 피사체를 화면 안에 담는 여러 가지 방법을 실험해왔다. 줌을 통해 대상이 되는 인물의 크기를 화소가 깨질 정도로 확대하거나(<지하철 작업> 시리즈), 인스타그램에서 발견한 원본 사진을 크롭하고 그 일부분만을 남기기도 했다(<보고 싶은 것만 본 것의 도상> 시리즈). 때로는 그 줌과 크롭의 결과가 사진이 아닌 입체 조형물이 될 때도 있었다(<시선의 조형물> 시리즈).
이번 개인전 ≪seize on≫에서 신지혜는 현실 대신에 인스타그램을 동시대의 풍경으로 받아들이고, 사진(인스타그램 이미지)에서 사진을 찍고자 한다. 신지혜의 사진적 행위를 통해 원본 이미지는 평면에서 입체로, 그리고 다시 입체에서 평면으로 변환된다. 그리고 사진적 행위를 위한 도구가 되는 줌과 크롭 역시 여전히 등장한다. 신지혜는 카메라를 ‘줌’ 하듯 인스타그램 속 이미지에서 자신의 인상을 추출한다. 사진이라는 평면 속에서 구도를 꺼내 현실에 발 딛고 있는 입체 조형물로 구현하는 것이다. 이때 원래의 사진 안에 존재하고 있었을 연속성, 이를테면 원본 대상이 놓였을 시간과 공간 혹은 다른 대상과의 관계는 모두 ‘크롭’된다. 그 후, 작가는 입체 조형물을 다시 카메라 렌즈로 포착해서 평면으로 출력해낸다.
해시태그나 재연 너머의 것
이번 전시에 신지혜가 포착하려고 했던 대상은 인터넷상에,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인스타그램 속에 있었다. 우리는 자연히 신지혜에게 그 이미지들이 도달할 수 있었던 경로를 생각하게 된다. 현실적으로 사용자는 인스타그램 속의 모든 이미지를 볼 수 없고, 각자가 팔로잉한 계정이나 검색한 해시태그에 따라 제한된 영역만을 보게 된다. 그렇다면, 작가가 ≪seize on≫에서 포착하고자 했던 것 역시 대상의 이름, 곧 하나의 해시태그로 치환될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고 대답한다면, 작가의 작업은 인스타그램 속 사진과 그 소재에 대한 단순한 반복, 즉 ‘재연’에만 머무르게 된다. 그러나 <발레슈즈> 속에는 발레슈즈가 아니라 발레슈즈를 연상하게 하는 조형물이 있다. 신지혜가 입체 설치로,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사진으로 완성한 그 결과물은 인스타그램의 해시태그(가령 #발레슈즈나 #발레)만으로는 해명될 수 없다. <네 마리의 캔버스 새>의 경우, 원본에서 캔버스였을 사물은 그 가장자리 혹은 뼈대만 남기고 지워져 새와 창문처럼 보인다. 작가는 원본 이미지에서 캔버스라는 소재를 차용하고자 했다기보다는, 사물의 이름과 같은 하나의 해시태그로는 간추려질 수 없는 소재 너머의 것에 이끌린 것처럼 보인다. 이때 신지혜가 “온전히 내 것이 되기를” 바랐던 것은 발레슈즈나 캔버스가 아니고, 작가의 작업은 원본 소재에 대한 재연으로 요약될 수 없다. 신지혜가 이전 작업에서 “오로지 모호한 감각”에 기대어 피사체를 화면에 가두어왔다면, ≪seize on≫에서 신지혜는 이 감각의 정체를 적극적으로 규명하려는 것 같다. 신지혜의 작업에 시각적으로 구현된 이 모호한 감각의 존재를 의식할 때, 우리는 신지혜가 “그토록 들여다보고자 했던 것”에 한층 가까워질 것이다.
글: 조은채
출처: 공간 가변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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