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음산방
2024년 6월 12일 ~ 2024년 6월 23일
나의 소원은 기억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것1
기억은 언제나처럼 우리를 당혹스럽게 한다. 불씨를 맞은 종이처럼, 말라버린 꽃잎처럼 원래의 그것과는 멀어지며 바스러진다. 슬프게도, 기억은 영원하지도 않고 분명하지도 않다. 그러니까 기억이란 금방이라도 닿을 듯 가까우면서도 영원히 도달할 수 없을 것처럼 멀리 있다.2 퍼즐 맞추듯이 조각을 꿰매어 엇비슷한 걸 찾아낸다고 할지라도 시간의 낙차를 피할 수 없고, 그저 오류의 도로에 우리를 내던지는 위험천만한 방식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 애도조차 불가능한 고통의 사건은 은폐되거나, 고통이 너무도 강력하여 기쁨의 파이를 잡아먹기도 한다.
타자가 들어온다. 나에게. 무자비하게 침범하여 기억의 강으로 고여 든다. 대상을 기억하기에 앞서 우리는 감각한다. 어쩌면 그 감각이 만들어낸 왜곡의 인상 자체가 더 중요할지도 모르겠다. 진실이나 진리 같은 단단한 단어로는 설명되지 않는 기억이라는 기이한 정보 앞에서, 신혜승과 이정민은 신체에 박힌 감각을 매개하여 그것의 오류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에 바탕을 둔 신혜승의 작업은 그에 대한 시, 메모, 사진, 일기 등의 기록으로 일차적 파편화를 거친다. 그 후 이 조각들로 쌓아 올린 물질 덩어리는 “진실을 추적하는” 행위이자, 대상을 잊지 않기 위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그러나 결코 그 진실에 도달할 수 없음을 인지하는 작가는, 그것의 이질감에 초점을 두고 이미 사라진 대상을 애도한다.
작가가 기억하는 할아버지와 기록으로 접하는 할아버지 사이. 대상에 대한 기억 속에서 모호함만이 남게 된다. 새벽 5시만 되면 기도를 드렸던 작가의 할아버지는 많은 양의 기도일기를 남겼다. 촛불을 켜고 기도하던 모습을 기억하는 작가는 할아버지의 죽음 이후 남겨진 기록을 보게 된다. 이러한 기억을 바탕으로 양초, 레진 등 고체인 동시에 액체인 가변적 물질을 선택해 사물에 막을 더한다. 반투명한 물질 안에 가둔 일기장은 그 자체로 문학성을 띠며 사라진 대상의 기억을 다소 직접적으로 전달한다. 그러나 기록은 정보로 발신되기보다 작가의 기억과 관객의 기억 모두를 비켜 나가는 이미지로 작동한다. 삼합 순지 위에 먹지를 대고 필사한 일기는 반투명한 이물질, 즉 양초로 뒤덮여 다시 한번 물질적 변환을 거친다. 이렇듯 작가는 두터운 기억의 층위를 작업에 담아낸다.
지각 정보를 조각내고 다시 층을 쌓는 방식은 이정민의 작업에서도 나타난다. 이정민은 조각난 자신의 지각을 회화적 행위를 통해 분해하며 즉각 생태계를 연상하게 하는 화면을 만들어낸다. 분해는 자연이 순환하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단계다. 이정민의 회화는 그러한 북적이는 분해 현장을 직접 목도하는 것만 같은 이미지를 지닌다.
< 대설주의보 >(2024)는 특히나 그러한 파편성이 두드러진다. 레이어의 투명성을 거부한 채, 물질 위에 물질을 뒤덮으면서 그린 화면은 기억의 불일치성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왜냐하면 유화라는 재료는 단시간에 마르지 않고, 층을 허물고 쌓아 올릴 때마다 섞여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러한 층위의 싸움 속에서 회화는 적극적으로 발화하기 시작한다. 한편, < 고사리를 캐러 갔던 숲 >과 같이 연필 압의 흔적을 그대로 둔 채 다시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하는 드로잉에는 작가의 몸짓이 남아 있다. 이정민의 회화는 "이미지를 허물고 세우기”를 반복하는 행위를 통해 오히려 기억에 사로잡히지 않고 “대상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걸 드러낸다.
기억에 대한 두 작가의 변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신혜승은 덧씌워지는 두꺼운 막으로 그것을 표현한다면, 이정민은 덮어쓰고 지워내는 과정 안에서 발생하는 작용에 더욱 가까이 자리한다. 이처럼 신혜승과 이정민의 이인전 <끌어올리다>에서는 기억의 오류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하여 물성의 변주로 그 관심을 확장한다.
글 최인영
1. 황병승, 『헬싱키』 변용.
2. 220p. 『이민자들』, W.G.제발트, 이제영 옮김, 창비
작가소개
신혜승(b.1993)은 영국, GSA에서 Sculpture and Environmental art전공 BA를 졸업했다. 설치와 영상을 주 매체로 사용하며 작가는 실존적인 불안을 견디는 데에 나아가 개인의 근원을 찾는 시도를 꾸준히 한다. 최근에는 불안정한 삶을 살아가며 뿌리를 찾기위한 시도로 매일 기록을 한 할아버지의 기도일기를 통해 기록에 대한 가치와 그의 태도에서 오는 수행성을 이해함과 동시에 이를 통해 뿌리를 찾고자 한다. 주요 전시로는 < 보팅, Boating > (공간 운솔, 2022), < 땅.땅.땅 > (애프터선데이클럽, 2021), < Man은 어디서 왔는가 > (영주멘션, 2021), < i’ll have to clam down a bit or else I’ll burst with happiness> (Edinburgh National Gallery, pig rock bothy, 2019) 등이 있다.
이정민 (b.1985)은 홍익대학교 회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GSA에서 MFA 과정을 마쳤다. 최근에는 사람의 시지각이 움직임이나 이미지를 어떻게 감각하는 가에 관심을 가지고 이 과정에서 생겨나는 감각의 오류들에 주목한다. 이러한 감각의 오류들을 평면에 그리고 지우고 부수고를 반복하며 이미지를 만들고 해체하는 과정에 관심이 있다. 주요 전시로는 <Burst of Color>( JnM Gallery, 2023), <흐려지는 것들>(Pirang Gallery, 2021) 등이 있다.
출처: 무음산방
* 아트바바에 등록된 모든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
운영시간
월요일 휴관
화요일 휴관
수요일 13:00 - 19:00
목요일 13:00 - 19:00
금요일 13:00 - 19:00
토요일 13:00 - 19:00
일요일 13:00 - 19:00
휴관: 월요일, 화요일
모든 프로그램은 주최측의 사정으로 변경될 수 있으니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